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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이즈 인 런던 - 혼자 떠나기 좋은 런던 빈티지 여행
곽내경 지음 / 예담 / 2008년 1월
평점 :
품절
겉멋을 추구할 나이는 지났다고 생각했는데 이 책을 읽는 동안 나는 왠지 겉멋이 들어도 좋으니 런던에서 딱 1년만 살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뉴욕에 관한 수많은 책을 읽으면서는 '여행'을 가고 싶은 도시라고만 손꼽고 있었는데, 왜 런던은 여행지가 아닌 생활지로 삼고 싶다는 생각이 드는 것인가.
스스로 생각하기에도 불가능해보이지만, 그래도 꿈꿔보는 것에는 나의 능력에 대한 제약이 없을테니 지금 이순간만큼은 마음껏 런던에서의 생활을 즐겁게 상상해봐야겠다. 적어도 이 책을 읽고 있는 시간동안, 그리고 그 즐거움이 완전히 사그라지지 않은 지금 이 순간만큼은.
물론 쇼핑에 별 관심이 없고, 패셔너블한 것에도 관심없고 빈티지를 사랑하는 것도 아니고... 아니, 사실 이렇게 '쇼핑'이라거나 '패셔너블'이라거나 하는 말을 쓰는 것조차 내게는 익숙한 것이 아니고 실제로 이 책의 후반부로 가면서 간단 명료하게 소개되고 있는 가게들에는 거의 관심없이 사진만 구경하다시피 하면서 지나쳤다. 그런데도 왜 이 책을 읽고 '여행'도 아닌 생활자가 되고 싶어 한 것일까? 런던에서 생활한 그녀의 이야기에 어떤 매력이 있었길래?
지금까지 읽었던 대부분의 책에서는 '여행자'의 느낌과 감상이든 '생활자'의 느낌과 감상이든 그들의 이야기를 읽는 내 입장에서는 '여행'으로서의 느낌일뿐이었다. 언젠가는 나도 그곳에 가고 싶다,에서 시작하여 내가 그곳으로 여행을 가게 된다면..이라는 먼 미래의 계획까지 온통 '여행'으로서 잠깐 머무를 곳이라는 생각이 강했다는 뜻이다. 데이즈 인 런던, 역시 여행자들에게 런던의 곳곳을 소개한다는 것에서는 별로 다를 것이 없다. 하지만 나는 왜 갑자기 다른 느낌으로 이 책을 읽게 된 것일까. 아무리 생각해봐도 잘 모르겠다.
책의 첫머리에서부터 내 마음을 확 잡아버린 갤러리에 대한 소개때문에 붕 뜬 마음에 겉멋이 잔뜩 들어버려서일까?
런던의 구석구석을 찾아다니면서 뮤지엄과 갤러리뿐 아니라 펍과 까페, 패션샵까지 주제별로 런던에 대한 거의 모든 곳을 소개한 이 책은 런던 여행의 길잡이이면서 동시에 런던 생활의 지침서처럼 느껴진다.
런던에서 딱 1년만 생활해봤으면 좋겠다는 생각은 한낱 꿈에 불과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그러면 어떤가. 나는 오늘 꿈에 부풀은 상상의 나래를 펼치며 잠시라도 상상 속의 즐거운 시간을 보낸것도 좋았는데. 그래서 나는 데이즈 인 런던이 맘에 들어버렸다. 수많은 사진과 군더더기 없는 짧고 간단한 설명들, 저자의 솔직하고 담백한 짧은 글들이 이 책을 '보는' 즐거움을 더 해 준 것 역시 이 책을 좋아하게 하는 이유 중 하나가 되기도 했고.
이미 박훈규의 글로 뱅크시에 대해 알고 있었기때문에 이 책에서 또 한번 만나보게 된 뱅크시의 작품들이 반가워서 더 좋아하게 되었는지도 모르겠고. 또한 그래서 나도 그들의 뒤를 이어 뱅크시의 그라피티를 찾아 런던의 구석을 헤매보고 싶은 꿈을 갖는 것이 좋았는지도 모른다.
이런 내가 겉멋에 푹 젖어들어 런던을 동경하고 있는 것이라 해도 어쩔 수 없지 않은가. 내가 그 생활을 꿈꾸고 싶다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