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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과 그림자의 책 ㅣ 뫼비우스 서재
마이클 그루버 지음, 박미영 옮김 / 노블마인 / 2008년 1월
평점 :
절판
... 스코틀랜드 여왕 메리와 어떻게 아무도 그녀가 실제로 한 일을 밝혀낼 수 없었는지에 대해 이야기했다. 그녀는 정말로 남편 단리 경을 죽이려 음모를 꾸몄을까? 무엇에 홀려 보스웰 같은 미치광이와 결혼했을까? 엘리자베스의 암살을 모의한 그 발각된 편지를 그녀가 썼을까? 왜그녀는 평생 머저 생각부터 해보지 않았을까?
나는 모른다고 말했다. 내게는 전부 명작극장이었다. 허나, 자기들이 가질 자격이 없는 무언가를 원하는 사람들에 의해 국가의운명이 휘둘린 것이 그것이 처음은 아니었을 터였다.(499)
그래도 명색이 추리소설이라고 하는 책인데 재미없게 줄거리를 얘기할 수는 없겠고. 그렇다면 도대체 이 책에 대해 뭘 써야하지? 브레이스거들의 편지가 과거의 허구를 이끌어가고, 현재에서는 미쉬킨과 크로세티가 이야기를 이끌어간다. 이런 구조는 요즘의 소설에서 그리 특별한 것도 아닐것이다. 하지만 몇몇 소설이 문학적 접근이라기보다는 영화라는 영상을 염두에 둔 듯 씌여지곤 하는 것을 생각해보면 바람과 그림자의 책은 그래도 문학작품이라는 느낌을 가질 수 있다. 뭐, 문학적 접근을 하는 문학작품이라는 것이 뭔 말이냐고 묻는다면 딱히 설명할 수 있는 말은 없지만.
위에 인용한 책의 문장은 어쩌면 그냥 뜬금없는 이야기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셰익스피어의 미발표 원고를 찾아내는 과정을 엮어낸 이 소설책의 즐거움은 내게 있어서 전부 '명작극장'같은 느낌이다. 그래서인지 책을 읽다가 발견한 저 문장이 그리 반가울수가 없던것이다.
누가 뭐라해도 나는 이 책이 '명작극장'만큼 재미있다. 진부하고 오래되고 빤한 이야기들이 넘쳐나는 명작극장이지만, 그 나름대로 반짝거리며 자신의 진가를 보여주고 있는것처럼 느껴지는 것이다. 그래, 한가지 덧붙여 이야기하자면 셰익스피어아닌가! 비록 그의 희곡 원작을 영문으로 읽어본적도 없지만 셰익스피어는 내게 문학의 로망이다. 그래서 바람과 그림자의 책이 셰익스피어의 미발표원고에 대한 이야기라는 것만으로도 내게는 충분히 흥미로운 것이다.
이야기의 흐름을 따라 읽다보면 조금은 빤해보이는 결말이 눈에 보이는 듯 하지만, 그래도 나름대로 늘어지지 않는 사건의 전개와 사이사이에 그 흥미를 더해주는 브레이스거들의 편지글이 담겨있어 분량이 꽤 많은 책이지만 금새 읽힌다.
** 크게 중요하지 않을지 모르겠으나, 몇몇 책들에 비하면 정말 맘에 드는 책 편집에 대한 이야기를 덧붙이자면.
다른 책에 비해 글자가 좀 작고 빽빽해보여 처음 읽을 땐 어색했으나, 거의 600여쪽에 달하는 책을 한 권으로 출판하려고 애쓴 것 같아 오히려 더 좋아져버렸다. 요즘 글자를 크게하고 줄간격을 늘여서 두권으로 출판하는 책이 얼마나 많은가, 생각해보면 더욱더 좋아진다. 작은것 같지만 커다란 미덕이 느껴지는 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