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에서 영화를 만나다
이철승 지음 / 쿠오레 / 2007년 11월
평점 :
품절


'온 더 로드'라는 책이 인기를 끌고, 길을 떠나고자 열망하는 사람들이 늘어가고 있다는 걸 실감했었다. 얼마 전에는 '그 길에서 나를 만나다'라는 책도 읽었다. 그리고 드디어 '길에서 영화를 만나'버렸다. 왠지 이 세상의 모든 만남은 '길'에 있는 것 같다. 자, 이제 나는 그 길을 따라 걷기만 하면 되는 것일까? '길은 내 앞에 놓여있다'라는 시를 읊조리며?
아, 물론 그 '길'이 품고 있는 의미는 다 다르겠지만말이다.

길에서 영화를 만나다,는 얼핏 읽어보면 영화 속 그 장면을 찾아 현실세계의 여행을 떠나는 기행문처럼 보인다. 하지만 저자가 단지 영화를 좋아하는 여행작가가 아니기때문에 이 책은 '영화 속 명장면'으로만 끝나지는 않는다.
은근슬쩍 영화속의 실제 장소를 찾아 여행을 떠나는 이야기속에서 자신이 좋아하는 영화이야기를 늘어놓기도 하고 또 그 영화가 담고 있는 세계관까지 눙치며 슬그머니 밀어놓기도 한다. 내 주관적인 느낌일뿐인지도 모르지만, 적당히 매니아적인 영화의 선택과 또 적당히 대중적인 영화의 선택이 이 책을 끝까지 재미있게 읽을 수 있게 하는 요인이 되기도 한다.
사실 영화광이 아닌 나로서는 데이비드 린치 감독의 이름을 아주 먼 옛날(?) 영화잡지에서나 볼 수 있었고 그의 영화를 봤던 누군가가 '영화가 뭐 이러냐'라는 말을 내뱉았던 것만 기억하고 있으니 이 책의 시작이 데이비드 린치 감독의 멀홀랜드 드라이브 이야기라는 것에는 조금 당혹스럽기도 했다.
하지만 저자가 실제로 멀홀랜드 드라이브를 하면서 느낀, 그 설명할 수 없는 묘한 느낌이 스멀거리며 올라온다는 불투명한 이야기와 데이비드 린치의 영화들이 모든 영화적 해석을 관객에게 맡겨버리는 불명확함이 맞물리면서 '길에서 영화를 만난다는 의미'가 무엇을 품고 있는지 어렴풋이 감을 잡으며 저자와 함께 길을 떠날 수 있었다. - 아니, 사실 저자의 의도는 이것이 아닌지도 모른다. 하지만 어떠랴. 때로 의도하지 않은 관객의 해석이 유효할 수 있듯 의도하지 않은 의미를 찾는 독자도 있는 것 아니겠는가.

그렇게 떠난 길에서 이제 한가지는 명확해진다. 이 책은 '영화 속 명장면'이 아니라는 것.
백명의 관객이 있다면 백개의 해석이 있기를 바란다는 데이비드 린치의 말을 너무 마음에 담아버린 탓일까. 우리 모두에게는 영화를 보는 관점만이 아니라 각자의 삶의 길이 다 다르다는 생각으로 영화를 통한 여러 삶의 모습과 길을 바라보게 된다는 생각으로 천천히 길을 떠난 것이다.
영화이야기라는 껍질을 벗겨보면 그 속에는 현실을 살아가는 삶의 모습이 그대로 담겨있다는 것을 그의 이야기를 듣다보면 깨닫게 된다. 어쩌면 이것이 그가 말하고자 하는 '소통'이고 자신의 삶의 모습일지도 모르겠다. 시간이 흐르면 그가 이야기한 그곳이 어느 특정한 지역이었다는 것도, 어떤 특정한 영화의 이야기였다는 것도 잊어버리기를 바라는 마음은 익숙하지 않은 것을 통해 익숙함을 찾아내고, 익숙한것에서 익숙하지 않은 방식으로 바라보는 것을 시도하려 했다는 이야기와 통해있다.

이제 나는 다시 나만의 느낌으로 길을 걸어봐야하겠다. 같은 영화를 보며 다른 느낌을 갖듯, 같은 길을 따라 걸으면서 다른 삶을 찾을 수 있음을 깨달았으니.

'우리의 현실을 감싸고 있는 표면의 아래에 감추어진 모든 진실은 훗날이 되어서야만 밝혀질 것이다'(스캐너 다클리,에서. 1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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