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좋은 생각이 아니라고 한 이유는, 그래봤자 좋은 결과 같은게 나오지 않을 것 같아서야. 넌 스스로한테 상처를 주고 싶어서 여기온 것 같거든, 애너벨. 사람들이 슬플 때면 가끔 자해하는 것처럼 말이지. 우주선에 들어가면, 시동이 걸릴 때의 느낌이나 벽과 바닥이 떨리며 몸속 깊숙이 전해질 그 진동이 어떨지 알게 될 거야. 하지만 앞으로 그럴 일은 없겠지. 그래서 나올 때는 들어갔을 때보다 화만 더 나고 슬퍼지게 될 거야." - P74
문명이란 실은 얼마나 위태로운지 내가 처음으로 깨닫게 해준 순간이었다. ‘침묵‘이란 것 역시, 알고 보면 그저 단순하고도 지극히 평범한 무능함에서 비롯된 재앙이거나 치명적인 실수는 아닐까.
우리는 낙관주의를 맹목적으로 따랐다. 저 별들 사이로 첫발을 내딛는 확장의 상징이었다. 화성 다음엔 어디로 갈까? 목성의 위성들? 토성의 위성들? 독일의 사례처럼, 세대 우주선을 발사해서 위성은 죄다 지나치고 광활하게 펼쳐진 저 별들 사이로 날아가면 어떨까? 이 모든 것은 가능성을 넘어, 마땅히 이루어질 순리처럼 여겨졌다. 누구도 이렇게 끝나리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아무도 신이 무심하게 아무것도 하지 않으리라는 건 예상하지 못했다.
조 라일리가 지구로 돌아가지 않겠다고 한 이유가 무엇인지 짐작하고 있었다. 총독이 내세운 명분 또한 분명했다.
하지만 난 진짜 이유도 알고 있었다.
너무나 무서워서였다. 82-83 - P8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