느린 삶의 수공예는 꼭 중산층의 성격을 지닌 것만은 아니다. 여기서 말하는 수공예는 노동자계급뿐 아니라 전前자본주의적 삶과노동 방식과 관련된 육체노동 방식을 취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수공예가 과거에 대한 향수에 지배받는 형태로 보이지 않도록, 수공예가 새로운 퀴어 문화와 장애 문화에 속한다는 점, 이런 문화들이 (동물 연구와 더불어 머리가 아니라 "몸"에 존재하는 상이한 방식들을 창안해내고 있다는점에 반드시 주목해야 한다. 덧없이 지나가는 느낌만은 아닌 하나의 어엿한 실천으로서, 수공예는 그 자체를 넘어서는 정치적 변화의 특정 형식과 동의어도 아니고, 정치적 변화를 위한 첫 단계도 아니며 정치적 변화의 재료 또한 아니다. 수공예는 다른 것을 변화시키는 수단이 아니라 이미 자기 변화의 한 형식이다. 그렇다 해도 수공예는 조직화된 정치적 행동을 비롯해 세계에서 다른 종류의 일을 수행하는데 필요한 영적 투사의 자아를 구축하는 방안이 될 수 있기는 하다. 307-30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