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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들의 유쾌한 질주
사단법인 한국여성민우회 지음 / 민연 / 2007년 9월
평점 :
나는 아마 이 책을 선물 받지 않았다면 차마 읽을 생각을 하지 못했을수도 있다. 솔직히 말하자면 그렇다. 왠지모를 선입견이 이 책의 내용 역시 그저그런 내용이 아닐까, 라는 생각을 내 머리속에 집어넣고 있기때문이다.
그런데.. 정말 어쩌면 이 모든 이야기가 나와 나를 둘러싼 모든 이들의 이야기와 똑같은지! 우리가 둘러앉아 굳이 '페미니스트'라고 하지 않아도 수다떨다가 나옴직한 이야기들이 한보따리이다.
한가지 더 솔직히 고백하자면, 나는 아주 오래전에 친구 몇명과 서울 나들이를 하고 여성민우회를 찾아갔던 기억이 있다. 학교 총여학생회 부회장이었던 친구를 따라 이리저리 헤매다가 찾아들어간 그곳에서 맘씨 좋아보이는 분께서 이것저것 자료도 꺼내 보여주시고 제주도에 있는 여민회는 제주도만의 독자적인 활동단체라는 것도 설명해주시고... 나는 사실 친구 옆에 앉아서 여성신문만 들춰보고 있었기때문에 지금 기억에 남는 것은 차를 잘못내려 한정거장을 걸어가는데 서울땅이 정말 넓구나,라는 것 뿐이었다.
학교의 총여학생회 회장을 하던 선배가 권해주는 여러 책을 읽어보기는 했지만 깊은 고민은 없었던 그 옛날에, 선배 자신도 아무런 생각이 없었지만 공부를 하면 할수록 여성학에 대한 관심과 고민이 심화되어 가고 있다던 선배는 어린 우리들을 붙잡고 자신이 느끼는 여러 이야기를 해줬었다. 그때의 다른 말은 모두 잊었어도 인간해방, 노동해방...의 궁극적인 달성은 아마도 여성해방의 관점에서 나오지 않을까, 한다는 말이었다. 내가 설명을 잘 하지 못해서 그렇지 그때 선배의 말은 뭔가 마음에 깊이 꽂히는 말이었는데...
그러니까... 조금 비약적인 이야기가 되는지도 모르겠지만, 언젠가 '여성사제'에 대한 글 한토막이 생각난다. 천주교에서는 여성사제에 대한 이야기가 조금씩 흘러나오기 시작했고, 아직까지는 여전히 이단시 되고 있는 문제지만 현실적으로 사제수의 감소와 여성신자의 증가에 대한 대안이 없는 것은 사실이다. 수천명의 수녀가 있어도 사제 하나 없으면 천주교에서 가장 중요시하는 미사성제가 이루어지지 않는 것이다. 이것이 실상 사제의 권위를 더 세워주는 예가 될지는 모르겠지만, 종교의 전례라는 것이 세월의 흐름에 따라 시대적으로 조금씩 변화했다는 것을 생각해보면 단지 사제의 권위에 대한 문제만은 아닐것이다. 가부장적인 생각들은 우리나라만이 아니라 인류의 역사에서 수천년동안 확고한 쌓고 있었기에 그것을 허물어뜨리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닌것이다.
아, 지금.. 책에 대한 리뷰는 하지 않고 지극히 개인적인 종교이야기만 늘어놓고 있는것인가.
아무튼 책을 읽으면서 나는 다른 사람의 이야기가 아닌 우리 이야기라는 공감에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책을 낼름 다 읽어버렸다. 책속에서 어느 누군가가 남자들은 모이면 남 얘기만 떠들어대지만 여자들은 자신의 이야기를 한다고 했다. 그것의 단적인 예가 바로 이 책인거 아닐까? 개별적으로 아주 조금씩 차이가 있기는 하지만, 내가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내 주위의 모두에게서 들었던 이야기들이 바로 책에 그대로 씌여있기 때문에 심한 공감대를 형성하면서 '어쩌면 이렇게 사는게 똑같냐'라는 생각을 하게 되는 것이다.
거창하게 여성운동 어쩌구..가 아니라 이 세상을 대한민국땅에서 살아가는 이 시대의 여성으로서 (간혹 남성으로서) 느끼는 이야기들에 대한 공감을 느끼고 싶다면 이 책을 읽어보라 권하고 싶다. 이건 멀리 떨어진 별나라의 외계인 이야기가 아니라 바로 나 자신, 우리들의 이야기이다. 그래서 홀랑 읽혀버리는 재미있는 이야기이다. 내 말 믿고 한번 읽어보시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