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의 기억
티나 바예스 지음, 김정하 옮김 / 삐삐북스 / 2024년 8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그러자 버드나무는 상상 속에서 되살아났다. 빌라베르의 구석진 곳에서 잔잔한 바람에도 춤추는, 나뭇잎이 무성한 버드나무가 되었다. 바닥은 손가락 같은 노란 나뭇잎으로 뒤덮여 있었다"(215)


버드나무에 대해 내가 알고 있는 사실은 벼락을 맞아 반이 타버리고 남아있는 나무는 베어지고 그루터기로 남아 있는 것 마저 뿌리째 뽑히고 버드나무가 있던 자리는 콘크리트 바닥으로 변해버렸다는 것이다. 하지만 내가 기억하게 될 버드나무는 잔잔한 바람에도 춤추는, 손가락 같은 나뭇잎이 무성한 버드나무가 될 것이다. '나무의 기억'은 그런 것이다. 


책을 읽는 내내 잔의 시선으로 바라보고 있는 할아버지 잔의 이야기, 빌라베르의 시계공으로 살았던 할아버지와 할머니가 바르셀로나의 잔네 집으로 와 함께 살게 되면서 할아버지의 버드나무 이야기가 어떤 의미인지를 알게 되면서 이 이야기의 끝이 없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빠르게 책장을 넘기다가도 이야기의 끝이 너무 아쉬울 것 같아 일부러 책장 넘기기를 멈추고 잠시 '나무의 기억'에 대해 생각해보기도 했다. 


책을 읽다가 잠시 성당에 다녀온 사이에 욕실용 슬리퍼가 사라지고 없어졌다. 집에 혼자 계시던 어머니가 평온한 것을 보니 도둑이 든 것 같지는 않고 - 그래, 평온하지 않은 분위기였다해도 도둑이 하필 욕실 슬리퍼를 신고 나갈리도 없을텐데 라는 생각을 하면서도 답답해하고 있었는데 마루 쇼파에 얌전히 앉아계신 어머니의 발에 단아하게 신겨져있는 노란색 슬리퍼가 보이는 순간 ... 뭐라고 표현할 수 없는 여러 감정이 스쳐지나갔다. 아니, 물론 습관적인 나의 첫 반응은 왜 그 슬리퍼를 신고 앉아있냐고 버럭하는 것이었지만. 슬리퍼를 제자리에 갖다놓고 발바닥이 아픈 어머니 전용 실내 슬리퍼를 신겨놓고 청소를 했다. 아흔이 넘은 연세에도 암산으로 덧셈을 하시고 중요하게 기억해야 할 일이 있으면 어머니에게 알려 내게 얘기해주라고 알림을 맡길만큼 총명한 어머니는, 우리도 깜빡깜빡 잊어버리는 것을 당신이 잊었다고 이런 일이 있을때마다 손에 힘이 없어 반찬통을 꺼내다 떨어뜨릴때마다 서글픔에 눈물을 흘리신다. 

그래도 나는 괜찮다,라고 하지 않는다. 그저 다만 좀 더 조심하시라는 말만 한다. 왠지 괜찮다,라고 하면 안될것같아서다. 그저 조금 더 정신줄 잡고 신경쓰시라 외친다. 할 수 있다는듯이, 예전같지는 않겠지만 뒷방 늙은이는 아니라는 걸 아셔야한다는 듯이. 


잔 역시 조안 할아버지가 버드나무를 기억하듯 매일매일 거울을 바라보며 할아버지 자신과 잔을 잊지 않기를 바란다. 저녁식사 시간이 한참 남았는데도 식탁 차림 담당인 할아버지가 스푼 찾는 걸 헷갈려하지 않게 세번째 서랍을 살짝 열어놓는다든가 숙제를 저녁식탁이 아닌 다른 보조식탁에서 하거나 방금 식기세척기에서 꺼냈다는 듯 스푼 세트를 식탁위에 둔다거나 하는 일상생활은 조금씩 바뀌어가지만 달라진 것이 없는 듯 평온함을 유지하고 있지만 그 시간이 또 무한한 것은 아니라는 걸 우리는 알고 있다. 


"실제 삶에서는 감동을 주는 문장이 담긴 작별의 편지는 없었다. 그래도 할아버지는 살아계신다. 여전히. 할아버지는 아무 편지도 남기지 않았다. 왜냐하면 이미 몇 달 전부터 조금씩 나에게 작별인사를 했기 때문이다"(220)


책을 다 읽고 다시 첫장으로 돌아갔다. 작가의 말이 있었다는 걸, 책을 다 읽고 나니 그 의미가 더 깊이있게 다가온다. 

"열광적인 애국자들에게 전쟁과 협상과 우리의 비석과 그들의 조각상을 준비하라고 하고 우리는 내 할아버지에 대한 이야기를 하도록 하자. 할아버지 이야기가 가장 중요하니까"

우리의 현재와 과거, 미래와 과거의 업적이 중요한 것은 아니다. 우리의 삶에 있어 중요한 것을 이야기하고 있다보면 우리는 전쟁을 할 이유도, 승리를 기리는 조각상의 영광 따위는 전혀 중요하지 않게 된다. 


"나무가 죽을 때 그루터기는 젊음을 되찾고" 나무의 기억은 우리의 부활을 기념하듯 계속 이어져 가고 있는 것이 아닐까.















댓글(0) 먼댓글(0) 좋아요(8)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