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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누헤 1
미카 왈타리 지음, 이순희 옮김 / 동녘 / 2007년 8월
평점 :
품절
내 주위에 있는 사람들은 두어달만 지나면 내가 날마다 책을 읽고 있다는 걸 알게 된다. 그들 중에 가끔은 책을 추천해달라거나, 또 그보다 자주 내가 어떤 책을 읽는지 관심을 갖는다.
시누헤를 읽기 위해 가방에서 꺼내놨을 때도 누군가 힐끔 쳐다보면서 '시누헤'가 뭔가요? 라고 물어왔다. 겨우 십여쪽을 읽었을 때가 단순하게 '사람이름인거 같아요'라고만 대답했는데... 지금 책을 다 읽고 나서 나는 나에게 물음 하나를 던져본다.
'정말 시누헤가 무엇을 뜻하는지 알어?'
이 책을 읽은 느낌은 시누헤가 내게 주는 의미에 대한 답을 찾는 것으로 정리가 될꺼라고 생각하지만, 정작 그 대답을 쉽게 할수가 없어 자꾸 책을 뒤적거리고 또 뒤적거리게 된다.
아니, 나는 지금 책의 줄거리나 정형화된 시누헤를 말해서는 안된다는 생각이 더 강해서 책을 들춰보다가 잠시 멈추고 파노라마처럼 펼쳐졌던 역사이야기 속의 시누헤를 바라보고 있다.
시누헤는 인간의 역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전쟁과 사랑, 종교의식의 실체, 개인의 욕망, 선의... 이 모든것을 그 안에 담아 표현하고 있다. 그러니 내가 어떻게 시누헤가 뜻하는 의미를 찾아 답할수있겠는가.
사실 시누헤가 갖는 역사적 의미는 잘 모르겠다. 다만 팩션의 형태를 띄고 있는 소설이지만 당시 이집트의 역사에만 집중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지금의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도 많은 것을 시사하는 사상과 철학의 메시지를 담고 있다는 것을 느낄뿐이다.
인간이란 개인의 부와 욕망에서 완전히 벗어날 수 없지만, 어떤 사상을 갖고 어떻게 살아가느냐에 따라 자기 조절과 통제가 가능하다고 생각해왔던 것이 구체적으로 시누헤의 삶에 녹아들어 있는 것을 발견했을 때 뭔가 '시누헤'의 이름이 다가오기 시작했다.
"카비리족 사람들은 차라리 사막에서 가난하게 살다가 굴속에서 굶어죽는 편이 풍족하고 기름진 시리아로 쳐들어가 태양에 그을린 살갗에 기름을 바르고 훔친 곡식으로 배를 채우는 것보다 낫다는 사실을 피와 눈물을 쏟으며 깨달아야 했다. 나는 전쟁의 참모습을 보았다. 그것은 억압과 살인이었다"(1권, 201)
"나의 복수는 내 심장을 갉아먹었을 뿐 그녀에게 아무런 해도 입히지 못했다. 그리하여 나는 복수는 만족을 가져다주지 못한다는 것을 절실히 깨달았다. 복수의 달콤함은 짧고, 복수를 하려던 사람에게 되돌아가 불길이 되어 그의 심장을 갉아먹는 법이다"(2권 59)
"내가 바라는 것은 모든 것이 예전으로 되돌아가서 가난한 자들이 노력한 만큼 충분한 대가를 받고, 법이 올바로 진행되는 것입니다. 내가 바라는것은 모든 사람들이 자신이 선택한 신앙 속에서 평화롭게 자신의 직업에 종사할 수 있게 놓아두는 것입니다."(2권, 112)
내가 내 글로 정리 할 수 없는 시누헤의 수많은 의미 중 몇가지를 끄집어 내 본다. 전쟁의 참혹함에 대해, 복수의 허망함에 대해, 내가 믿고 있는 신의 의미에 대해.
시누헤는 역사를 살아온 우리 모두의 모습이고, 또한 지금도 역사를 이뤄나가는 우리 모두의 모습이라는 생각을 해 본다. 그렇다면 우리가 어떤 삶의 모습으로 역사를 만들어나가야 하는지 그 답이 나오지 않겠는가.
소설의 재미로만 이 책을 읽는동안 사실 조금 지루하거나 뜻밖의 결말에 당황해하기도 했었다. 하지만 이 책 시누헤는 팩션소설 시누헤가 아니라 '시누헤' 자체로 읽어야 하는 글이라고 말하고 싶다.
옛날 설화속의 시누헤는 우연히 파라오의 막사에서 흘러나오는 무시무시한 비밀을 엿듣게 되는 바람에 이방의 땅으로 달아나 숱한 모험을 겪게 되는 인물이다. 설화속의 시누헤처럼 이 이야기속의 시누헤는 숱한 모험을 겪게 되지만 그 안에 담겨있는 뜻은 무한히 깊다.
책을 덮다 말고 나는 시누헤가 중얼거리는 말을 다시 되새김질해본다. 나는 지금도 시누헤가 내게 어떤 의미를 주는지 머리에 쥐나도록 생각해본다. (하긴 그렇다. 내 몸으로, 나의 삶으로 체화시켜내지 못하고 나는 여전히 머리만 쥐어짜고 있는 것이다)
"물고기들은 내 형제야. 녀석들은 쓸데없는 말을 지껄이지 않거든. 사막의 늑대들도 내 형제고, 황야의 사자들도 내 형제야. 하지만 인간은 내 형제가 아니야. 인간은 자기가 무슨 일을 하는지 아니까 말이야"
내 심장은 나를 비웃었다.
"인간이 자기가 무슨 일을 하는지 안다고? 너야 그걸 알겠지. 너는 지식을 가진 사람이니까. 그러니까 나는 너를 죽는 날까지 괴롭힐거야. 하지만 다른 사람들은 자기가 무슨 일을 하는지 몰라"(2권, 35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