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종 여행 떠나는 카페
곤도 후미에 지음, 윤선해 옮김 / 황소자리(Taurus) / 202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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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세상에서 가장 좋아하는 곳은 집 소파다."

'종종 여행 떠나는 카페'라는 소설의 첫 문장은 소설의 제목과는 상반되어 보이지만 나는 충분히 공감할 수 있는 문장이기에 왠지 책장 넘기는 것이 어렵지 않을 것 같았다. 그래서 잠들기 전 가볍게 집어 들었는데 한꼭지만 더 읽어볼까,를 반복하다가 새벽까지 책을 읽고 말았다. 한 직장에서 오랜 세월 근무하면서 부서에서 가장 나이가 많은 독신 여성이 되어버리고, 오늘과 다르지 않은 내일, 반복되는 업무... 에이코의 일상에 대한 묘사가 어찌나 생생하게 다가오는지. 

그런 에이코가 어느 날 우연히 카페 루즈를 발견하게 된다. 더구나 그 카페 사장은 오래전에 짧은 시간이긴 했지만 함께 근무하던 마도카. 그녀가 회사를 그만두기 전에 자신의 카페를 해보고 싶다는 이야기에 할 수 없을 것이라며 반대를 했던 에이코는 카페의 주인 된 마도카의 모습이 당황스럽기도 하고 놀랍기도 하다. 카페 루즈의 컨셉은 여행자 카페. 마도카가 여행지에서 먹어 본 차와 디저트를 재현해 메뉴를 구성하고 있다는 것이 특별한 컨셉이라 느껴지지는 않지만 카페 루즈와 마도카, 에이코의 이야기를 통해 '종종 여행 떠나는 카페'는 이미 특별할수밖에 없는 곳이 되어버렸다.


이 소설은 옴니버스처럼 하나의 메뉴에 하나의 에피소드가 펼쳐지면서 마도카와 얽혀있는 미스터리가 소설의 후반부를 궁금하게 하는 재미가 있는 소설이다. 여행과 관련한 환상문학일까 싶었지만 오히려 일상에 가까운 느낌인데다 많은 부분에서 공감할 수 있어서 더 흥미로웠는지도. 

아니, 무엇보다 우연의 일치인 것인지 우주의 기운이 있었던 것인지 책을 읽기 전에 차를 준비했는데 이 비슷한 내용이 책의 한 에피소드에 담겨있다. 달달한 커피를 마셔볼까 싶어서 찾다가 밀크티라떼가 보여 성급히 봉지를 찢고 물을 끓이는 동안 연휴의 연속이라 좀 더 진하게 마셔도 될 것 같아서 카페라떼를 뜯었다. 순간 그 전에 뜯은 것이 밀크티여서 같은 커피종류가 아니라는 것에 나의 성급함을 한탄하며 맛을 포기할까 어쩔까 하다가 어쩔 수 없이 그냥 두가지를 섞어버렸다. 그런데 이것이 내 입에 그리 맛있게 느껴질줄이야. 우연히 얻어걸린 맛에 감탄하며 다시 책을 읽어나가기 시작했는데 정말 놀랍게도 커피와 홍차가 섞인 차의 이야기가 나온다. 커피와 홍차 블렌드에 밀크를 섞은 원앙차, 이야기가 그것이다. 책을 먼저 읽었다면 그냥 따라해본것이 되었을텐데 내가 이미 시도를 해 본 것이라 그런지 소설의 이야기가 더 마음에 남는다. 커피와 홍차 블렌딩이라면 안마셔봤을지도 모른다는, 이 둘의 블렌딩이 원앙차라고 한다니.

"해보지 않으면 정말로 좋아하는 것인지 아닌지 알 수 없는 일들이 세상에는 너무도 많다"(166)


사기결혼, 재혼가정, 바람난 남편의 이야기이거나 강압적인 상사와 가혹적인 직장의 첫 연수, 문화를 이해하지 못한 섣부른 판단으로 오해를 하는 것이라거나 하는 이야기가 요리의 과정이나 이름의 의미와 맞게 구성되어있어 왠지 루즈 카페를 중심으로 이루어지는 단편 드라마를 보는 것 같기도 하다. 그리고 마지막에 슬그머니 드러나는 에이코와 마도카의 인연의 시작은 좀 손끝이 오무려지는 느낌이 들기도 하지만 그렇다고 어울리지 않는 것도 아니어서 나름 끝맺음도 좋은 느낌이었다.


우리의 일상과 삶의 모습이 세계 여러나라의 음식과 디저트, 차에 비유되어 맞물리면서 이야기가 진행되는 것에 빠져들게 되는데 소설에서 묘사되는 음식들이 모두 맛있어 보여서 이야기를 듣는 재미와 여러 음식을 글로 맛보는 것도 좋았는데 책을 읽을수록 우리 동네에는 카페 루즈 같은 곳이 안생기려나 하는 마음이 들기 시작한다. 


사실 책을 읽으며 오래전에 갓 나온 식빵을 사왔다며 시간되면 빨리 오라는 연락에 사무실 바로 앞이라 뛰어가던 카페가 생각났다. 우리가 도착할즈음 바로 빵을 구워 버터를 살짝 올려놓으면 잔열에 버터가 스며드는 것이 보이고, 우리를 위해 자르지 않은 식빵을 들고 와 구웠다며 만족한 웃음을 짓던 카페 사장님은 지금 무엇을 하고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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