캐비닛 - 제12회 문학동네소설상 수상작
김언수 지음 / 문학동네 / 2006년 12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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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좋아하는 숫자는 13이다. 틴에이저의 시작이어서...라기보다는 아주 단순하게 학창시절 내 번호였기 때문에 그냥 생각없이 자주 쓰다보니 좋아져버린 숫자다.
이처럼 단순한 내가 아무런 생각없이 이 책을 읽기 시작했다.
캐비닛,이라고? 무엇을 상상하든 그 이하.... 귀싸대기....이런 단어들만이 내게 강하게 감겨들었고 상상력에도 게으른 나는 말 그대로 아무 생각없이 책을 펴고 읽기 시작한 것이다.

처음 책을 읽기 시작할 때,  13호 캐비닛 안에 들어있는 사례들이 기발하고 재밌고 신기하게만 느껴져서 정신없이 읽었다. 그러다 문득 내 마음 어딘가에서 꾹꾹 내려앉아있던 감정이 스멀스멀 올라오더니 결국은 내 심장이 머리속을 헤집기 시작하고 내 머리속의 생각은 다시 감정을 쿡쿡 쑤셔대기 시작하는 것이다.
사무실 한 구석에 처박힌 오래된 녹슨 캐비닛이 삐걱 소리를 내며 열렸을 때 나는 그걸 상상조차 할 수 없었다. 분명 작가는 냄새나는 추리닝이나 한쪽뿐인 양말... 오래된 자료를 처박아 넣고는 쾅! 하고 닫아버리고 잊어버리게 되는 그런 캐비닛이라고 했는데.
아니, 어쩌면 맞는 말일지도 모른다. 우아하게가 아니라 우악스럽게 열리는 삐걱삐걱 캐비닛은 그와 동시대를 살아간 사람들과 공유할 수 있는 것이 많은 부비트랩일지도 모르니까말이다.
일단 뭔가 하나의 이야기가 공감을 형성하고 그 안에 담겨있는 쓸쓸함을 느껴버리기 시작하면 도저히 그 감정을 멈춰버릴 수 없게 되는 것이다.
이 재미있는 이야기들이 왜 자꾸 씁쓸함을 넘어서서 쓸쓸함을 느끼게 해버리고 있는지 모를일이다. 엄청난 속도로 읽어나가다가 어느 순간 쉬엄쉬엄, 숨을 고르듯 천천히 읽기 시작하게 된 것이다. 물론 공선생이 납치된 이후부터는 또다시 순식간에 끝까지 가버리기는 했지만.

이 책 캐비닛은 13호 캐비닛에 관한 장편소설이면서 또 그 캐비닛 안에 담겨 있는, 누렇게 변색되거나 혹은 새로 꼼꼼히 정리된 깔끔한 자료들이 뒤섞인 단편이기도 하다. - 물론 내 느낌이 그렇다는 것이지.
나는 캐비닛이 어떻냐고 물어보는 사람에게 한마디로 어떻게 설명할까,를 잠시 생각해봤었다. 정말 '잠시'동안만. 깊게 생각할 성질의 것도 아니지 않은가, 단순한 내게는 말이다.

당신이 무엇을 상상하든 이 책은 '상상이외'의 것을 담고 있다. 이 책은 재미있다. 그리고 또 이 책은 쓸쓸하다. 적어도 내게는.

   
 

 천국에서 권박사가 물었다.
"요즘 어때?"

아주 나빠요.
도대체 이 섬에서 제가 뭘 할 수 있겠어요?"

"글쎄, 꼭 뭘 해야 하는 것은 아니겠지.
그냥 자네의 시간을 견뎌봐.
인생이란 그저 시간을 잠시 담아두는 그릇에 불과한 거니까"

"캐비닛처럼요?"

"그래, 마치 캐비닛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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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ika 2007-08-03 14: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앗! 새벽별님, 아직 안읽으셨어요? 아니 왜 이 책의 반입이 그리 늦대요? 어여 도서관에 구비되기를 바라겄슴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