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머리는 하얗게 세고, 가슴은 늘어지고, 허리는 오그라든 듯 구부정하다. 인터내셔널 센터 오브 포토그래피에서 처음 이 사진을 보았을 때 나는 한동안 이 사람이 남자인지 여자인지도 구별하지 못했다. 나이를 먹는 것이 어떠한 것인지 이 사진은 소름끼칠 만큼 사실적으로 보여 주고 있었다.
그녀에게도 아름다운 젊음의 시절이 있었을 것이고, 그녀를 사랑한 연인도 있었을 것이다. 이 세상에 갓 태어나 부모의 품에 안겨 축복받던 시간도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이제 그녀는 이렇게 늙어 버렸다. 절대 변하지 않을 진리는 나도 곧 그녀처럼 늙을 것이라는 사실이다. 나는 한동안 충격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그러나 그녀는 늘 같은 존재였다. 아름답고 젊은 시절의 그녀와 이 사진의 그녀는 다른 사람인가? 풋풋한 피부의 그녀와 주름지고 오그라든 그녀는 다른 사람인가? 봉긋한 가슴을 가진 그녀와 납작하게 축 늘어진 가슴을 가진 그녀는 다른 사람인가? 그녀는 같은 사람이고, 늙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다. 자연스러운 일상이어야 할 나이 듦을 비일상적인 것으로 치부해 온 것이 내가 충격을 받은 이유이다. 마치 나는 나이를 먹지 않을 것처럼, 마치 나는 늙지 않을 것처럼 살아왔다. 늙는다는 것이 우리의 숙명임을 늘 잊어버리고 있다. 아니, 사실은 잊고 싶은 것이다. 늙는다는 것을 비극으로 바라본 까닭이다.
나는 내가 늙는다는 것을 인정하기를 미루고 있었다. 미룬다는 것은 게으름이 아니라 두려움이다. 나는 늘 너무 행복해지고 싶어 행복하지 못했다. 달라이 라마의 말대로라면 나는 이 세상에 행복하기위해 태어났지만 행복하다고 느끼는 순간은 많지 않았다. 붓다의 말처럼 고통과 상실이 내가 매순간 들이켜고 내쉬는 호흡만큼이나 삶의 일부임을 알고있었어도 나는 행복하지 못했을까? 당장 고통스러운 것을 외면하고 싶었던 나는 집요하게 고통을 피하려고만 했다. 삶의 어떤 부담도 지지 않고 어떤 관계도 만들려 하지 않았다. 바람처럼 살고 싶다는 소망은 늘 그럴듯하게 보였다. 그러나 바람처럼 살 수 있는 삶은 없었다. 자유라는 말 앞에 나는 늘 약해지곤 했지만 그런 삶은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았다. 이 세상의 존재 중에서 늙고 죽어가는 것을 거부하고 슬퍼하는 것은 인간밖에 없다. 이 한 장의 사진은 내가 어디서 왔고 어디로 갈 것인지를 암시한다. 이것이 우리의 삶이다.

뉴욕, 이야기여서 그닥 땡기지 않았었지만. 좋다. 인터뷰로 넘어가면서 더 좋아질 것 같다. 박준의 글에는 '사람이야기'가 담겨 있어 좋은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