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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안의 윤슬이 빛날 때
박소현 지음 / 특별한서재 / 2022년 5월
평점 :
예전과 달리 요즘은 1인출판도 많고 글쓰기를 전공하지 않더라도 자신의 책을 출판하는 사람들이많아지고 있어서 그런지 가볍게 읽을 수 있는 에세이도 많아졌다. 일상적인 이야기들이 많아서 공감하게 되기도 하고 짧고 가볍게 이어지는 글은 짬짬이 시간에 슬쩍 책장을 넘기기도 좋았다. 그러다보니 새로운 에세이를 접하게 되면 좀 망설여진다. 특히 이 에세이에 추천사를 남긴 이들의 이름이 낯설지 않아서 더 그랬다. 가볍게 술렁거리며 넘기는 책을 읽고 싶은데 이 책은 어떨지......
박완서 작가님의 에세이가 일상의 소소함을 이야기하면서 삶의 통찰을 느끼게 하는 것 처럼 이 책 역시 소소한 이야기에서 시작하여 자신의 삶을 돌이켜보고 추억을 떠올리고 지금의 모습을 새로이 하고 있는 것 같았다. 사실 좀 더 시간 여유를 두고 읽으면 좋겠지만 습관처럼 다급하게 읽다보니 자꾸만 삶의 모습이 아닌 생활만을 보게 되고 옛 이야기를 읽는 것만 같은 느낌이라 잠시 숨고르기를 하고 다시 펼쳐본다. 동시대를 살아온 것이 아니기에 조금은 낯선 풍경이 보이기도 하지만 그 모습 역시 특별함이 아니라 그 시대의 보편성이리라 생각을 하고 있노라면 그 모습이 곧 내 모습이기도 한 것 같다. 가족의 이야기, 특히 부모님에 대한 이야기는 우리의 모든 부모님 마음이 그러지 않을까 짐작해보기만 한다. 첫째딸의 결혼식 날 새벽에 혼자 울음을 삼키던 작가님 아버지의 마음은 어떤 것이었을까. 우리 아버지는 언니의 결혼식에서 뭔가 불편한 마음이었는지 자꾸만 뒤척이셨던 것으로 기억하고 있다. 나중에 암진단을 받고 병원에 입원하시고 수술 날짜를 받고 나서야 통증을 참고 앉아계셨었겠구나... 생각했던 것이 떠올랐다. 아버지는 그때 어떤 마음이셨을까.
작가의 어머니가 고향이야기를 하며 지난날을 그리워하듯 황해도가 고향인 어머니에게 옛 이야기를 물어보면 끝없이 새로운 이야기를 하시면서 모든 것이 다 변했겠지만 한번 가보고 싶다고 하신다. 어릴 때는 황주군 겸이포읍이였지만 해방 후 송림시로 바뀌었더라는 말씀을 하시면서.
작가의 이야기는 아니지만 기억에 남는 것은 강원도를 지나던 겨울 밤 눈때문에 가지 못하고 겨우 찾아낸 가정식 식당에서 하루를 묵게 된 집의 아주머니가 거동 못하는 시어머니와 정신장애가 있는 시누이와 함께 살기 위해 그 산골로 들어갔다는 사연이다. "아주머니의 생활은 '페미니즘'이니 '여성의 자아 찾기'니 하는 단어들을 무색하게 하고 있었다. 그것은 가부장제 사회에서 억압당하던 일방적 희생이 아니었다. 그녀 스스로 선택한, 그 어떤 종교보다도 더 숭고하고 아름다운 휴머니즘이었다."(70)
책의 끝에는 시인과의 대담이 담겨있는데 제주의 시인 허영선님의 이야기와 4.3에 대한 이야기는 모두에게 꼭 읽어보라고 말하고 싶다. 허영선 시인의 '해녀들' 시집을 읽기는 했는데 그 시집이 일본어로 번역되어 일본 여성들에게 큰 호응을 얻고 있다고 하니 마음이 남다르다. 사실 일본의 오사카에는 4.3사건 이후 이주해간 제주출신 교포가 많이 살고 있는데 그분들이 가난한 제주도를 위해 많은 자금을 마련해 보내줬다는 이야기를 들었었다. 그리고 세월이 흘러 고독하고 힘겹게 살아가고 있는 제주출신 재일교포들을 위해 이제는 우리가 도움을 줘야한다는 이야기도 들었는데 허영선 시인의 시집은 그분들에게 또 다른 느낌이 들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