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그후 이어지는 몇 년의 세월에 대해 말하지 않는 법을 스스로 익혔는데, 그렇다고 해서 그 세월을 조금이라도 잊은 건 아닙니다. 그 세월은 몸의 언어로 쓰였고, 그것은 내가 말로 할 수 있는 언어가 아니에요. 때로 나는 고통에 빠진 사람들의 사진을 보는데, 그러면 그들의 비참함과 아픔의 이미지가 내 몸안에 가득 울려서 그들과 함께 아파하게 됩니다. 그리고 그 동일한 이미지가 내게 그억압의 기억을 억누르는 법을 가르쳐주는데, 왜냐하면 어쨌든 나는 이곳에 건강히 잘 있고, 그들 중 몇몇이 어디 있을지는 오직 신만이 아시기 때문이죠. 바로 얼마 전에 나는 그런 사진을 한 장 보았는데, 오래된 사진이었어요. 그 사진 속에는 세 명의 유대인이 넙죽 엎드려 있었습니다-한 명은 짙은 정장과 타이 차림이었고, 다른 두 명은 셔츠 바람이었는데, 한 명은 셔츠 소매를 걷고 있었죠. 그들은 바닥솔을 쥐고 빈의 인도를 쓸고 있었습니다. 그들 주변에, 그들 아주 가까이에, 그들의
‘뒤와 앞의 인도에 빈 사람들이 무리 지어 빼곡히 서서 히죽거리며 그들을 지켜보고 있었어요. 모든 나잇대의 사람들, 어머니들과 아버지들과 할아버지들과 아이들이 누구는 자전거에 기대 있고 다른 누구는 쇼핑백을 든 채 점잖고 일상적인 모습으로 서서 미소를 짓고 있었고, 그하는 동안 그 세 사람은 그들 앞에서 굴욕을 당하고 있었습니다. 하켄크로이츠 같은 것은 전혀 보이지 않았고, 그저 세 유대인의 굴욕에 웃음을 터뜨리는 평범한 사람들이 있을 뿐이었어요. 그 세 사람이 어떻게 되었는지는 신만이 아시겠죠. 37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