씨앗을 뿌리는 사람의 우화 비채 모던 앤 클래식 문학 Modern & Classic
옥타비아 버틀러 지음, 장성주 옮김 / 비채 / 2022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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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의 마지막 장을 덮으며 차마 그 느낌을 표현할 수 없겠구나, 라는 생각만 떠올랐다. 옥타비아 버틀러의 소설을 읽고난 후 나의 편협한 세계관이 조금은 넓어졌구나, 싶었었는데 이 책은 세계관의 확장뿐만 아니라 '청동거울처럼 흐릿하게 비추는' 성경의 이야기가 조금 더 또렷해지는 느낌이다. 지구종이 아닌 가톨릭 신자인 내게 지구종의 이야기는 그렇게 다가왔다. 물론 대학에 입학하며 '모든 사물은 변화발전한다'라는 것만이 진리일 것이다,라고 들었던 것과 같은 철학적 사유도 같이 떠올리면서.


먼 미래 - 라고 하지만 이 소설의 시대는 2024년에서 시작하여 2027년까지를 보여주고 있다. 93년에 쓰여진 30년후의 미래가 지금의 현실인데 이 소설은 1948년에 쓰여진 조지 오웰의 1984만큼이나, 아니 어쩌면 더 충격적인 느낌으로 다가온다. 씨앗을 뿌리는 사람의 우화는 기후 환경에 대한 것 뿐만 아니라 정치, 경제, 사회, 문화적인 묘사가 현실의 모습과 그리 다르지 않다고 느껴지기 때문이다. 내가 이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이어서 더 그런것인지는 모르겠지만. 


어쨌거나 2024년, 디스토피아의 세계가 되어버린 미국의 소도시 올브리도에 사는 열다섯살 소녀 로런 올라미나의 일기형식으로 소설은 시작되고 있다. 언젠가부터 '장벽'이 낯설지 않게 느껴졌는데 디스토피아의 세계에서 장벽은 외부로부터의 침입을 지키기 위한 폐쇄의 상징이 되어버렸다. 그 장벽안에서 공동체를 유지하며 살아가고 있지만 그곳 역시 영원히 안전할수는 없었다. 스스로 떠날 시기를 기다리던 로런에게 뜻하지 않게 아빠의 실종과 이후 들이닥친 외부의 공격적인 침탈은 폐허가 된 마을을 떠날수밖에 없게 만들었다. 북쪽의 희망을 찾아 길을 떠나는 그들에게는 생존을 건 선택이 이어지고 그들이 만나게 되는 인물들을 통해 로런의 '지구종' 이론은 조금씩 퍼져나가기 시작하는데...


옥타비아 버틀러의 소설을 읽어 본 사람들은 당연히 로런이 흑인 여성이리라 짐작을 할 것이다. 이 소설에서 로런은 그에 더하여 선천적으로 '초공감증후군'을 갖고 있다. 타인의 고통과 똑같은 고통을 당하는 초공감증후군은 타인에게 가해지는 고통이 곧 나에게 가해지는 고통이라는 것의 의미에 대해 생각해보게 되기도 한다. 너의 아픔을 나는 온전히 이해하지 못하는 것이 우리의 모습이지만 로런은 너의 고통이 곧 나의 것,이 되는 것이다. 

그녀의 이 초공감증후군은 최대의 약점이 되지만 또한 공동체에는 꼭 필요한 것이기도 할 것이다. 로런과 함께 북쪽의 안전하고 사람답게 살아갈 수 있는 곳을 찾아가는 동행들의 이야기에는 이처럼 각자의 장점과 역할이 있음을 보여준다.누구나 다 필요한 존재임을 새삼 느낄 수 있는 것이다. 


이 소설의 이야기를 어떤 한 관점으로 말할 수 없다는 것이 아쉽다. 나의 사유로는 가톨릭신자로서의 한계가 있으며 그것은 곧 '씨앗을 뿌리는 사람'에 대한 루가복음의 말씀이 인용되었듯이 옥타비아 버틀러가 정리해놓은 로런의 '지구종'은 하느님을 부인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그 뜻을 더 공고히하는 것처럼 느껴지고 있기 때문에 조금 더 깊은 사유의 시간을 가져야할 것 같다. 신약성경을 읽으며 기초교회공동체의 모습에서 한때는 공산주의 사회와 그 비현실적인 모습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 것인가를 생각했었는데, 로런이 이끌고 있는 공동체는 각자의 생존을 위해서 서로를 필요로 하고 있으면서도 서로의 생존을 위해 자신의 목숨을 걸고 함께 하고 있으며 사유재산을 인정하면서 또한 그것을 나눌 수 있는 마음을 가지고 있다. 조금 앞서가며 이야기하자면 나는 에머리가 난생 처음으로 화폐를 갖게 되었으며 그것으로 함께하고 있는 모두에게 자그마한 선물을 하느라 가진돈의 거의 전부를 써버렸어도 기쁨으로 넘쳤다는 글에서 과부의 헌금보다 더한 감동을 받았다. 사실 이런 감동적인 에피소드에 대해 이야기하자면 소설의 내용을 다 써야할 것이다. 그만큼 이 소설은 하고 싶은 이야기가 너무 많다.


씨앗을 뿌리는 사람의 우화,는 디스토피아를 그리고 있지만 또한 희망을 품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하지만 그 희망이라는 것이 이미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 그러니까 어딘가에 있는 희망을 찾게 되는 것이 아니라 그 희망 자체를 우리 자신이 만들어낸다는 것에 큰 의미를 담고 있다 생각한다. 씨앗이 어느 곳에 떨어지게 되는지, 그래서 싹을 틔우기도 전에 소멸해버릴지 좋은 땅에 떨어져 백배의 열매를 맺게 될지에 대한 생각에만 빠져 나의 의지는 없이 그저 던져지는 존재라는 생각뿐이었는데 이제 내가 씨앗의 운반자가 될수도 있음을, 그리고 그 씨앗을 좋은 땅에 뿌릴 수 있는 역할이 곧 희망을 만들어가는 것임을 되새겨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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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니데이 2022-05-07 17:0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이달의 당선작 축하합니다.
즐거운 주말 보내세요.^^

chika 2022-05-07 21:51   좋아요 1 | URL
아이쿠, 고맙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