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지만 그날에 대해 쓸 때마다 나는 어김없이 내 한계를 확인하고는 지운다. 어느 날은 내가 너무 투박한 나머지 우리를 흐릿하게 뭉개놨다는 판단에 지우고, 어느 날은 내가 너무 성급한 나머지 우리를 매끄럽게 정리해버린 것 같다는 생각에 지우며, 또어느 날은 내가 쓴 것들이 모두 궁색한 자기변명 같다는 느낌에지운다. 그리고 그렇게 지우고 또 지우다보면 어김없이 어떤 대사를 마주한다. 끝내 지우지 못하는, 아니 모조리 지워도 속절없이 다시 쓰게 되는 그 대사를.
내가 써낸 그 모든 실패들 속에서도 인주 씨는 한결같이 나를 보며 말한다
쓰면 좋겠어요. 우리에 대해 쓰면 좋겠어요. 13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