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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매일 죽은 자의 이름을 묻는다 - 세계적인 법의인류학자가 들려주는 뼈에 새겨진 이야기
수 블랙 지음, 조진경 옮김 / 세종(세종서적) / 2022년 2월
평점 :
구판절판
'알쓸범잡'이라는 티비프로그램이 최근에 시즌2를 하는데 서두에 '이미 범죄에 대한 것은 다 이야기를 한 것 같은데'라는 말로 시작을 했던 것 같다. 그리고 과학의 발달로 이제는 완전범죄라는 것은 있을 수 없다고.
그렇게 범죄에 대한 이야기로 시작을 하지만 실제로 이야기를 듣다보면 범죄의 이야기 속에 담겨있는 수많은 사연들이 자꾸만 집중을 하게 된다. 우리의 많은 삶이 그 안에 다 담겨있는 것이다.
그래서인지 '법의인류학자가 들려주는 뼈에 새겨진 이야기'라는 부제가 붙어있는 이 에세이 '나는 매일 죽은 자의 이름을 묻는다'는 어떤 이야기가 담겨있을지 미리 기대가 되는 책이었고 실제 그 이상이었다.
사람을 구성하고 있는 뼈의 구조와 각 뼈의 기능을 통해 뼈에 새겨진 이야기를 풀어놓고 있는데 채식주의자의 식단이 뼈에 새겨져있고 고도비만의 식단 역시 뼈에도 자국을 남긴다는 이야기는 듣고보면 확실히 그러겠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사실 뼈라는 생각을 하기 이전에 치아를 통해 신원을 확인할 수 있다는 것을 떠올리면 이 모든 것이 그리 새롭지는 않을 것이지만 이 책에서 언급하고 있는 치아에 관련된 이야기는 좀 충격적이었다. 다른 사람의 치아를 매매하고 도둑맞은 틀니가 죽은 사람의 입에서 나왔는데도 그걸 되찾고 싶어하는 사람도 있다니.
하지만 이 책이 좋았던 것은 뼈에 새겨진 이야기들의 흥미로움만이 아니다. 첫부분 뇌의 이야기에서부터 에세이가 담고 있는 의미를 생각해보게 하고 있기 때문이다. 빅토리아 시대에는 사람의 두개골을 장식해 사고팔았다고한다. 그리고 2007년 그와 비슷하게 데미언 허스트는 두개골에 다이아몬드가 박힌 작품을 제작하였는데 현대미술에서 가끔 언급되는 그 작품에 대해 익히 알고 있지만 이 책의 저자는 그 작품에 대해 두가지 문제를 고민한다. 유골을 사고팔았다는 윤리적인 문제와 작품속의 진짜 치아는 유골의 원형을 침해했다는 의미가 된다는 이야기를 언급한다. 이 책의 이야기들은 그렇게 뼈에 새겨진 삶의 흔적들을 보여주고 있으며 묻혀버릴뻔한 범죄를 밝혀내고 있다. 그 과정은 분명 과학적인 사실이지만 이야기의 구성은 사람에 대한 애정이 묻어나고 있다. 특히 자살로 판명이 난 9살 소년의 죽음을 밝히는 과정에서 아동의 성장장애가 보이는 해리스선의 발견으로 그 소년이 받은 스트레스와 두려움은 친할아버지의 성적학대였음이 드러난 것은 충격적이면서도 저자의 심성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병리학자의 견해로 알게 된 사실이고, 진실이 때로 고통스러울 수 있음을, 외상기억이 뼈에 새겨지는것뿐만 아니라 정신적 상처 역시 지우기 힘들다는 것을 이야기하며 저자 자신에게도 새겨져있는 정신적 해리스선의 이야기를 담담히 풀어놓고 있는 것에는 인간적인 연민을 느끼게 된다.
언젠가 대형사고로 시신의 형체를 알아볼 수 없을 때 유가족에게 시신이라도 찾아줄 수 있어 다행이었다는 법의학자의 이야기는 이 책을 읽으며 다시 떠올려보게 된다. "법의인류학자의 임무는 삶의 이야기를 만드는 것이 아니라 뼈, 근육, 피부, 힘줄, 섬유 조직에 이미 상세히 기록된 이야기를 찾아서 이해하는 것이다. 우리는 끔찍하거나 비극적이거나 아니면 그냥 슬픈 사건으로 최후를 맞은 사람, 그 시신들을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돌려보내 시신과 그의 이야기가 영면하도록 연결시키는 다리가 되어야 한다"(429)
죽어서도 시신기증을 통해 후배들에게 가르침을 주고 싶다는 법의인류학자들을 보며 어찌 경의를 표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