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버드 스퀘어
안드레 애치먼 지음, 한정아 옮김 / 비채 / 2022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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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세 읽을 수 있는 책이라 생각했다. 대학 입학을 앞둔 아들의 손을 잡고 자신의 모교인 하버드를 방문하고 학생신분이었던 당시의 쿱 회원번호를 기억하고 있는 아버지의 이야기에서 어떤 이야기가 나올지는 전혀 짐작되지 않았지만 프롤로그는 그리 어렵지 않았다. 아무런 생각없이 첫장을 펼치면서 나는 아버지가 아닌 아들의 이야기가 펼쳐지리라 생각했는데 이야기를 이끌어가는 것은 아들의 현재가 아닌 아버지의 과거를 회상하는 것이었다. 

1977년의 여름, 은 뭔가 다른 해였을까 기록을 찾아보려다가 문득 이방인으로 지냈을 그 누군가에게는 77년이든 87년이든 그리 다르지 않겠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90년대 이후, 특히 2001년 911테러 이후라면 또 무슬림인 칼라지의 삶은 많이 달라졌을수도 있겠지만.


"나는 케임브리지에 있는 다른 사람들과 같지 않았고, 그들 중 한 명이 아니었으며, 시스템에 들어 있지 않았고, 들어 있었던 적도 없었다. 여기는 내 삶의 터전이 아니었고, 내 고향이 아니었으며, 심지어 나 자신이 아니었고, 내가 될 수도 없었다"(23)


1977년, 늦여름 하버드 광장, 까페에 앉아 그곳의 풍경을 바라보는 모습을 떠올려보는 나른함의 여유와는 다른 삶의 모습,정도로만 생각을 했고 그정도까지라면 또 이 책을 읽는것이 그리 어려운 일은 아니었을 것이다. 하지만 별 것 아닌 것 같지만 나름의 고단함이 있는 이방인으로서의 무슬림과 유대인의 자조와 체념이 섞여있는 대화들 - 더구나 자꾸만 끼어드는 프랑스어는 영어 생활권에서 결코 그 안에 스며들어가지 못한 이방인의 삶을 보여주는 듯 했고 그 삶의 모습을 읽어내는 것이 쉽지는 않았다.


이야기의 흐름을 따라 소설읽기를 더 좋아하는 나로서는 좀 더 더디게 글을 읽었어야 했는데 자꾸만 성급한 마음에 글읽기를 서둘러버려 안드레 애치먼의 문장들을 제대로 음미하지 못했다는 생각을 뒤늦게 하고 있다. 책을 다 읽고 다시 뒤적거리며 글의 흐름을 보고 있으려니 처음에 미처 느끼지못한 문장의 의미와 깊이가 새롭다. 

금세 읽어버리기 힘든 소설이었던 만큼 그 이상으로 의미심장하게 다가오는 문장들이 많은 것이다. "나는 자신이 기증한 장기가 아직도 자신이 기억하는 방식으로 째깍거리며 가고 있는지를 알아보기 위해 돌아온 장기 기증자처럼 어색함을 느꼈다"(385)와 같은 비유를 읽으며 느끼게 되는 것처럼 말이다. 


"이제 모든 일은 칼라지가 나타나기 이전으로 돌아갈 터였다. 나는 이것이 칼라지의 삶을 상징하는 이야기라고 생각했다. 우리가 그를 얼마나 오랫동안 알아왔든, 그가 주변 사람들의 세계를 얼마나 교란시켰든 간에, 결국 그는 우리의 삶에서 퇴장하고 모든 상황은 칼라지를 만나기 이전으로 되돌아간다. 세상을 자신의모습대로 재창조하려는 그의 끈질긴 노력에도 불구하고 그는 아무런 영향을 미치지 못했고, 아무것도 바꾸지 못했으며, 아무런 흔적도 남기지 못했다. 사실 그는 우리가 깨닫지 못한 사이에 이미 오래전에 역사와 인류의 테두리에서 벗어났다. 그는 지구가 미친 변덕을 부려 만들어낸 신화 속 야수를 연상시킨다. 그 야수는 지구인에게 엄청난 위해를 가하고, 지구 환경을 황폐화하다가, 갑자기 지구에게 다시 잡아먹힌다.

죽은 이들은 잊히고, 상처는 치유되고, 사람들은 계속 살아간다. 아무런 흔적도 남지 않은 채."(28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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