침대에서 담배를 피우는 것은 위험하다
마리아나 엔리케스 지음, 엄지영 옮김 / 오렌지디 / 202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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침대에서 담배를 피우는 것은 위험하다. 당연한 내용의 문장이 책의 제목이라 별 생각없이 좀 쉽게 읽을 수 있늘 것이라 생각했다. 사실 작가의 이름도 처음이었고 자주 접할 수 없는 남미문학이라 그냥 읽어보고 싶었을뿐이다. 많이 읽어본것은 아니지만 내게 남미문학은 기본적으로 환상문학이란 생각이 있었고 그 분위기를 익힌다면 환상의 은유속에 담겨있는 현실을 문학으로 읽는 것은 즐거운 시간이란 생각을 하고 있었다. 

그런데 이 책은 쉽지 않다. 짧은 단편을 읽다가 문득 책의 장르를 살펴보니 공포문학이라 되어있는 것을 얼핏 발견하고 그때야 이 책의 단편들을 읽으며 느꼈던 불편함들이 정리가 되는 것 같았다. 조금은 아름답기를 바랐던 내가 얼마나 어리석었던 것일까. 우리의 현실은 환상이 아니라 공포가 아니던가.


"나이든 남자와 함께 어디론가 떠나거나, 갑자기 아이가 생겨 겁을 먹은 아이들, 술주정을 부리는 아버지, 새벽부터 자기를 강간하는 양아버지, 그리고 밤에 등 뒤에서 수음하는 남동생을 피해 달아난 아이들. 클럽에서 술에 취해 며칠동안 정신없이 놀다가 막상 집에 들어가기가 무서워 밖을 떠도는 아이들. 약을 끊기로 마음먹은 날 오후 갑자기 머릿속에서 딸깍거리는 소리가 들린다고 하던 정신 나간 여자애도 있었다. 유괴나 남치를 당한 여자아이들은 더 가혹한 운명과 맞닥뜨려야 했다. 매춘조직으로 끌려간 뒤  다시 나타나지 않은 아이들이 있는가 하면 죽은 채 발견되거나 납치범들을 살해한 뒤 경찰에 검거된 아이들도 있었다. 심지어는 파라과이 국경 부근에서 스스로 목숨을 끊거나 마르 델 플라타의 어느 호텔에서 토막 난 채 발견된 아이들도 있었다."(224, 돌아온 아이들)


이 짧은 문장에 너무 많은 이야기가 담겨있어서 읽고 또 읽어봤다. 

이 책에 실려있는 단편들 역시 여자와 아이들에 대한 이야기가 담겨있는데 갑자기 문장 하나가 단편 하나의 이야기를 담고 있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땅에서 파낸 앙헬리타를 읽을때까지만해도 개인사의 이야기에만 집중을 했었는데 쇼핑카트를 읽으며 이 책에 실려있는 단편들이 개인의 이야기를 넘어 우리 모두의 이야기를 하고 있으며 그 전개과정이 괴기스러움과 공포로 표현되고 있음을 느꼈다. 쇼핑카트는 노숙자들의 모습을 지나 언젠가부터 세기말의 풍경까지 떠오르게 하는데, 쇼핑카트로 시작된 작은 사건하나가 온 마을을 변화시켜버리는 묘사가 비현실적이라 생각하면서도 놀랍게도 현실을 보여주고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어쩌면 그저 기괴하고 공포로 가득찬 환상세계의 모습일뿐일지도 모르지만 그 모든 기반이 현실이라는 것은 바뀌지 않는다는 생각을 한다. 그래서 이 책에 등장하고 있는 정신병적이고 기괴하게 묘사되고 있는 이야기들이 부담스럽게 느껴진 것은 이 단편집에 담겨있는 이야기들이 거짓이 아니라는 것을 직감하고 있기 때문인지도.


과거의 내가 쇼핑카트에서 '망할 놈의 늙은 비렁뱅이 같으니! 모든 게 그놈 때문이라고!"(73) 울분을 터뜨렸다면, 우물에서 "남은 힘을 다해 올라가 물속에 비친 자기 얼굴을 보는 순간, 아래로 뛰어 내리기가 너무너무 무서워 높이 자란 풀 속에 풀썩 주저않자 목메어 울었"(103)던 것 말고는 할 수 있는 것이 없다고 생각하고 있었지만 조금은 용기를 내어볼 수도 있지 않을까 싶다. "우린 어떻게든 버텨 볼 테니까 아무 걱정 할 것 없어. 우리도 언젠가 여기를 떠날 거야. 조만간 말이야"(135, 슬픔에 젖은 람볼라 거리)

"자기가 바라던 건 바로 총총하게 빛나는 별이 가득한 하늘이었다는 걸 깨달았기 때문이다. 그녀가 바라던 것은 오로지 그것뿐이었다"(313, 침대에서 담배를 피우는 것은 위험하다)


이야기의 끝이 모두 열려있는 것처럼 마무리되는 것이 쉽지않다는 생각을 했는데 첫번째 글읽기가 스토리에만 집중을 했다면 두번째 읽을 때는, 그리고 또 시간이 흐른 후 세계가 바뀌어 다시 이 글을 읽을 때는 무엇인가가 바뀌어있으리라는 기대를 해 보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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