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펑
이서현 지음 / 마카롱 / 2021년 8월
평점 :
이 소설의 제목 '펑'은 폭탄이 터지는 순간을 묘사하는 말이다. 말 그대로 어느 날 집으로 배송된 택배가 '펑'하고 터지는 사건이 발생하면서 이야기는 시작된다. 대한민국의 한 아파트 가정집으로 배달 된 택배 폭탄 사건이라니. 이 비현실적인 이야기의 시작은 소설에 대해 진지함을 기대하게 되지는 않았다. 아니, 조금은 코믹한 현실 풍자려니 생각하며 조금은 가볍고 웃긴 이야기를 기대했다는 것이 더 맞는 이야기일 것이다.
작가지망생인 아라는 공모전에 당선되기도 했지만 드라마 제작도 엎어지고 유명작가의 보조작가로 일하다가 그마저 짤려 다시 작가지망생 신분으로 집에서 글을 쓰고 있다. 누가 뭐라는 사람은 없지만 그래도 눈치껏 소소한 집안일을 하며 가족과 마주치지 않으려 하는데 집으로 배달 된 택배가 폭발해버려 유일한 현장의 피해자가 된다. 폭발물은 두아라를 노린 것일까?
아무것도 밝혀지지 않은 상태에서 시점은 폭발사건을 대하는 이웃집 주민, 지나가던 시민의 인터뷰를 통해 사건을 바라보는 관점이 사건에 대한 이야기가 아니라 사람에 대한 이야기로 이어질 때, 이 소설이 이야기하려하는 것이 무엇인지 눈치를 챘어야 하는데 나는 한참을 더 읽어서야 폭탄이 하나가 아니었음을 깨달았다. 실질적인 폭탄은 택배로 위장되어 배달 된 것 하나지만 평범한 중상위 가정이 그것이 기폭제가 되어 마구 터지며 해체되어버리는 모습이 보여지는데 그것이 그저 그들의 모습일뿐만은 아니라는 것 역시.
폭탄이 터진 후 그 사건을 파헤치는데 모두의 시선은 범인이 누구인지, 그 이유가 무엇인지를 찾아내려 하는 것은 드러난 핑계일 뿐 모두가 자신이 보고 싶은 것만 보고 듣고 싶은 말만 듣고 하고 싶은 말만 한다. 그리고 어느 누구든 다 자신의 입장이 있다. 겉보기에 남부러울 것 없는 가정이 어느 날 갑자기 터져버린 폭탄으로 인해 서로가 서로를 의심하게 되는 상황이 되고 가족에게 숨겨둔 비밀도 밝혀지게 되고 급기야 직장에서 쫓겨나게 되는 위기도 맞게 되는데...
그렇게 가족의 이야기에 집중하고 있다가 또 다른 제3자의 시선에서 사건을 바라보는 것을 읽다보면 순간 멈칫 하게 되는 지점이 생긴다. 세상 사람들을 비난하고 우리 가족은 저 정도는 아니야 하다가 조금씩 조금씩 타인의 입장에 대한 비판도 사라지고 이해할 수 없다는 마음도 사라지고 왠지 나도 이 소설속의 등장인물처럼 느껴지기 시작하게 되는 것이다.
이 이야기의 끝에는 그런 씁쓸함만 있는 것은 아니다. 나름의 반전(!)과 순탄하지는 않지만 서로를 이해해가는 과정이 서로의 모습을 자신의 시선이 아니라 그냥 받아들여야 하는 것임을 깨닫게 되는 그 순간을 느낄 수 있을것이라 생각한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얼굴을 붉혔다는 게 믿기지 않았다. 어디로 어떻게 흘러갈지 알 수 없었다. 늘 함께할지, 아니면 가족이라는게 무슨 소용이냐며 돌아서게 될지. 사는 게 버거워서 가족이라면 진절머리를 칠지. 또 다른 폭탄이 날아와 여전히 알지 못하는 무언가를 헤집어 놓을지. 알게 된 사실이 모두 진실이라고 할 수는 없었다. 그저 그렇다 할 뿐, 어떤 교훈도 없다. 어쩌면 굳이 교훈을 찾아내지 않는게 가족일지도 모르겠다."(33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