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어도 도망치지 않았으니까…. 남 탓 안 하고 선택을 감수하는 게 쉬운 일은 아니니까. 버티는 것만으로도 대단한 게 있는 거야.…. 아빠가 그걸 까먹고 있었네. 그래서 실수도 한 거고." "실수라고 퉁치는 거 비겁한 거야. 그리고 나 남 탓했어. 세상 탓도하고, 버티려고 버틴 것도 아니고, 버틸 수밖에 없어서 버틴 거야. 그러니까 그냥 아빠도 버텨." 그 순간 진혁은 가장 약한 건 그였고, 다른 이들 때문에 가장 약한 자신이 견디고 있었다는 생각마저 들었다. 물론 시간이 지나면 그 깨달음은 희미해질 테고, 또다시 진력내는 순간은 올 터였다. 그렇다 하더라도 결코 의미가 없다고 할 수는 없었다. 사람들은 찰나의 순간 때문에 긴 시간을 버텨내기도 하니까.
- P313
어느 날 갑자기 불현듯 찾아오는 시련, 그 시련을 더더욱 끔찍하게 만드는 건 그럼에도 불구하고 삶이 계속된다는 것이다. 원치 않는 현실 앞에 숨겨둔 과기가 드러나고 알 수 없는 미래가 펼쳐지는 나날들. 사태가 해결될 때까지 일시 정지 버튼을 누르고 싶은 순간이 이어진다. 당연하게도 삶에는 일시 정지 버튼이 없다. 그저 끝을 향해 달려가는 것 말고는 할 수 있는 게 없다.
- P316
폭탄은 어디든 터질 수 있다. 지금 이 순간에도 또 다른 사제폭탄이 만들어지고 있을 수도 있고, 터지지 않은 폭탄이 도사리고 있는 집도 있을 것이다. 폭탄이 터지기 전까진 결코 알 수 없는 일들이 있기 마련이다. - P318
얼마 전까지만 해도 얼굴을 붉혔다는 게 믿기지 않았다. 어디로 어떻게 흘러갈지 알 수 없었다. 늘 함께할지, 아니면 가족이라는게 무슨 소용이냐며 돌아서게 될지. 사는 게 버거워서 가족이라면 진절머리를 칠지. 또 다른 폭탄이 날아와 여전히 알지 못하는 무언가를 헤집어 놓을지. 알게 된 사실이 모두 진실이라고 할 수는 없었다. 그저 그렇다 할 뿐, 어떤 교훈도 없다. 어쩌면 굳이 교훈을 찾아내지 않는게 가족일지도 모르겠다. - P3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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