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가소프는 소련이 세계적 파장을 미칠 재앙에 직면했음을 곧 알아차렸다. 전 세계는 아니더라도 수백만 명의 미래가 여기에 달려 있었다. 그는 다른 이들을 구하기 위해 지체 없이 자신의 건강과 생명을 내놓았다. 그와 같이 체르노빌에 왔거나 그의 뒤를 이어서 온 사람들 대부분이 그랬듯이, 그는 자신이 당면한 위험의 전모를 파악하지는 못했지만, 그는 그것의 심각성을 누구보다 빠르고 완벽하게 파악했다.
레가소프는 다른 많은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원전 폭발로 발생한 상황을 2차 세계대전과 비교했다. 그러나 그가 소련 언론에 의해 고도로 신화화된 대조국전쟁 (소련에서 독소 전쟁을 부르는 공식 명칭)과 비교한 것은적군赤軍 병사들이나 사고수습자들이 보인 자기희생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었다. 그는 원전 사고와, 1941년 여름에 나치의 침공을 받아 발생한군사적 참사라는 두 재난을 맞았을 때 전혀 대비가 되어 있지 않은 소련체제에 대해서도 지적한 것이다. "원전 사고에 대해 아무 준비도 되어있지 않았다. 이런 무질서, 이런 공포스러운 상황은 없었다. 이는 1941년의 더 나쁜 버전이다. 똑같은 ‘브레스트‘ 상황, 똑같은 용맹성, 똑같은 절망감뿐만 아니라 똑같은 무준비성을 보였다"라고 그는 회고했다. 브레스트란 독일군 침공 초기 서부 벨라루스 지역의 브레스트 요새에서적군이 펼친 영웅적 방어전‘을 의미한다.
- P372

국내 자원 동원이나 외부 지원에 의한 구제에도 변하지 않고 남아 있는 것은 체르노빌 재앙의 장기적 영향이다. 방사능 낙진이 우크라이나 국민의 건강에 실제로 미친 영향에 대해서는 논란이 계속되겠지만, 사회 전체가 앞으로 수십 년 동안 체르노빌 사고로 인한 트라우마에서 벗어나지 못할 것은 분명하다. 우크라이나 성인 6명 중 1명은 건강에 이상이 있는데, 이는 인접 국가에 비해 훨씬 높은 비율이다. 체르노빌 방사능의 영향을 받은 사람들은 다른 국민들보다 취업률이 낮고 노동 시간도 짧았다. 다음으로 환경 문제가 남아 있다. 원자로 4호기 위에 새 보호막이 씌워졌음에도 체르노빌 원전 주변 지역은 앞으로 최소 2만 년 동안 사람이 살기에 적당하지 않을 것이다.
2016년 4월, 세계는 체르노빌 사고 발발 30주기를 기념하면서 안도의 한숨을 내쉬고 싶은 유혹을 받았다. 원자로 폭발로 방출된 유해한 핵물질중 가장 위험한 세슘-137의 반감기는 대략 30년이다. 이것은 외부 노출과 섭취로 인간의 신체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살아 있는 세슘 동위원소의 반감기 중 가장 길다. 사고로 유출된 다른 치명적 동위원소들의 반감기는 오래전에 지났다. 요오드-131의 반감기는 8일이고, 세슘-134의경우 2년이다. 세슘-137이 치명적인 동위원소 3인방 중 반감기가 가장 길었다. 그러나 사고의 후유증이 끝나려면 아직 멀었다. 체르노빌 주변의 세슘-137 이 바라는 만큼 빠른 시간 안에 감쇄하지 않았음을 보여주는 실험 결과를 보며 과학자들은 이 동위원소가 최소한 180년 이상 주변지역에 해로운 영향을 미칠 것으로 예측했다. 이 기간은 세슘의 절반이풍화 작용이나 이동으로 오염된 지역에서 제거되는 데 필요한 시간이다. 나머지 다른 방사성 입자는 오랜 기간 이 지역에 남아 있을 것이다.
멀리 떨어진 스웨덴에서 발견된 플루토늄-239의 반감기는 2만 4000년이다.
- P462

방문자들이 제한 구역으로 가는 길에 볼 수 있는 원자로 4호기의 석을 덮은 최신 기술의 보호막은 소련이 구현했던 실패한 이념과 정치체제에 대한 현대의 기념비로 서 있다. 그러나 이것은 환경과 보건에 대한 관심보다 군사적 또는 경제적 목표를 우선시하는 사회에 대한 경고이기도 하다. 1986년 4월과 5월에 체르노빌이라고 불리는 핵아마겟돈에 던져진 소방대원, 과학자, 기술자, 병사, 경찰관 들은 핵용광로를 끄기 위해 최선을 다했다. 이러한 사투를 벌이다가 그들 중 일부는 목숨을 잃었고, 많은 이들이 건강과 복지를 희생했다. 이들은 놀라운 일을 시도했다. 헬리콥터에 올라타 뚜껑이 열린 원자로에 모래 수천 톤을 쏟아부었다. 또한 원자로 밑의 지반을 동결하기 위해 거의 맨손으로 터널을 팠다. 오염된 물이 프리파트강과 이를 통해 드네프르강, 흑해, 지중해, 대서양으로 흘러들어 가지 않도록 강둑에 댐을 조성하기도 했다.
이러한 조치들 덕분에 거의 불가능해 보이던 일이 이루어졌다. 이들은 원자로를 잠잠하게 만들었다. 오늘날까지도 이들이 시도한 전략과기술적 해결 방법 중 어느 것이 실제적인 역할을 했는지 알지 못한다.
이러한 조치 중 일부는 사태를 악화시켰을까? 과학자들과 기술자들이 이해하지 못하는 이유로 핵화산은 폭발하지 않았다. 이는 이들이 원자로가 애초에 왜 폭발했는지를 설명하지 못해 당황했던 것과 똑같았다.
원자로 폭발의 원인이 최종적으로 규명되기는 했지만, 우리는 1986년에그랬듯이 아직도 핵반응을 완전히 통제하는 데 가까이 다가가지 못했다.
예측할 수 없는 사고들은 계속 일어나며 새로운 핵재앙을 만들어낸다.
예컨대 2011년 3월에 지진으로 발생한 쓰나미로 일본 후쿠시마에서 발생한 사고는 체르노빌처럼 원자로 1기가 아니라 3기의 연료봉이 부분적으로 녹아내렸고 태평양에 직접 방사능을 누출했다. - P466

원자력은 커가는 인구·경제·환경 위기에서 벗어날 수 있는 손쉬운 길처럼 보인다. 그러나 실제로 그러한가? 오늘날 건설되고 있는 대다수외자로는 원자로 운영 과정이 상대적으로 안전하다고 알려진 서구 세계 밖에서 지어지고 있다. 21기라는 어마어마한 수의 원자로가 중국에서 건설되고 있고, 9기가 러시아, 6기가 인도, 4기가 아랍에미리트, 2기가 파키스탄에서 세워지고 있다. 미국에서는 새 원자로 5기가 건설되고있고, 영국에서 건설되고 있는 원자로는 없다. 다음으로 가장 큰 원자력발전 전선은 아프리카다. 사회가 불안정한 이집트에서 현재 사상 처음으로 원자로 2기가 건설되고 있다. 이 원자로들 모두가 안전할 것이고, 안전 절차가 교본대로 지켜질 것이고, 이 국가들 대부분을 이끌어가는전제적 정권이 국민들과 세계의 안전을 희생하지 않을 것이라고 우리는 확신할 수 있는가? 이들이 에너지를 더 얻기 위해, 군사력을 강화하기 위해, 급속한 경제 발전을 이루기 위해, 대중의 불만을 잠재우기 의해 안전을 희생하지 않을 것이라고 장담할 수 있는가? 이것이 정확하게 1986년 소련에서 일어난 일이다. - P467

오늘날 체르노빌 재앙과 같은 핵아마겟돈이 다시 한번 일어날까? 시간이 지남에 따라 재앙의 후유증이 옅어지면서, 이러한 가능성을 부정하는 낙관론자들의 목소리가 가장 크게 들린다. 원자력 발전소의 안전절차는 확실히 개선되었고, 소련 시대의 RBMK형 원자로는 가동 중지되었으며, 새로운 원자로들은 원자력 기술자들이 1986년에는 꿈처럼 여겼던 수준의 안전성을 보장한다고 말한다. 그러나 체르노빌 사고가 일어난 지 사반세기 후에 후쿠시마 사고가 발생했다. 2011년 후쿠시마의 다이치 원전에서 일어난 사고는 원자로가 지닌 또 다른 문제점을 드러냈다. 관리 인력의 느슨한 기강, 원자로 설계의 결함, 혹은 지진 같은 것들 말이다. 원자력 발전소에 대한 테러리스트의 공격 위험도 점점 커지고 있다. 2016년 3월, 벨기에 경찰은 이러한 시도를 조사했다. 해커들에 의한 사이버 공격도 또 다른 위험 요소다. 예컨대 2017년 6월에 체르노빌 방사능 측정 시설을 마비시킨 공격이 있었다 (우크라이나 당국은 이것이 러시아에서 시작되었다고 믿고 있다).
체르노빌 원전을 폐쇄하고 손상된 원자로에 새로운 석관을 씌운 것은 원자력 산업의 역사에서 가장 비극적인 한 페이지를 닫게 해주었지만,
체르노빌 재앙에서 올바른 교훈을 이끌어내는 것이 중요하다. 가장 중요한 교훈은 핵민족주의와 고립주의가 제기하는 위험에 맞서고 원자력프로젝트를 개발하는 국가들 사이에 국제적 협력을 확보하는 것이다.
에너지 생산을 위해 원자력 기술에 점점 더 의존해가는 세계에서 포퓰리즘, 민족주의, 반反세계주의 신봉자들이 늘어가는 오늘날에 이 교훈은특히 중요하다.
세계는 이미 한 번의 체르노빌 사고와 제한 구역으로 크나큰 곤욕을 치렀다. 세계는 이와 유사한 일을 더 이상 감당할 수 없다. 이제 1986년4월 26일 체르노빌과 그 인근에서 발생한 일에서 교훈을 얻어야 한다.
- P46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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