펠리시아의 여정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195
윌리엄 트레버 지음, 박찬원 옮김 / 문학동네 / 2021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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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는 계속 멀미를 한다. 화장실에서 어떤 여자가 말한다. "신선한 바람을 쐬면 좀 나을 거예요. 갑판에 올라가지 그래요?"


펠리시아의 여정이 어떤 것인지 전혀 모르는 나는 쌩뚱맞게도 첫문장에서 타이타닉을 떠올렸다. 각자의 희망을 품었지만 섬처럼 제한된 배 안에서의 계급구조는 그대로이며 끝내 첫발을 내딛지 못한 꿈들이 사그라져간 이야기를 떠올렸다는 것이 정말 펠리시아의 여정을 전혀 몰랐음을 깨닫게 했지만 지금 책을 다 읽고나니 그리 엉뚱한 연상인것만은 아니라 생각을 해 본다. 영화 타이타닉에 여러 인간군상이 나오지만 결국 기억에 남는 것은 침착하게 연주를 하며 일상처럼 자신의 역할을 다 했던 연주자들이었음을 생각하면 그렇다. 물론 뒤이어 더 많은 이야기가 나오기는 하겠지만.


어쨌든 이 소설은 '펠리시아의 여정'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경기침체로 많은 공장이 문을 닫기 시작하며 펠리시아도 일자리를 얻지 못해 할머니를 돌보며 집안일을 도맡아하고 있다. 직장이 있을 때는 시간이나 경제적으로도 여유가 있었지만 집안일에 메여있는 펠리시아는 어떻게 해서든 일을 구하여 해보지만 쉽지 않다. 그런 펠리시아에게 친구 결혼식에서 본 조니는 사랑이어야만 했을 것이다. 하지만 조니는 연락처 하나 없이 떠나버렸고 펠리시아는 임신한 사실을 알고, 결국 확실한 것 하나 없이 아일랜드의 집에서 가출해 영국으로 조니를 찾아 떠난다.


펠리시아라는 아일랜드 이름은 여성혁명가의 이름(298)이라고 한다. 조니를 찾아 떠나는 펠리시아는 임신했다는 것 하나만으로 무작정 떠난 것이 아님을 생각하게 하는 건 펠리시아가 여성혁명가의 이름이라는 것 뿐만이 아니다. '긴 세월을 아일랜드 사람들은 언어와 종교와 인간 자유의 억압을 받으며 살아야 했음'을 강조하는 그녀의 아버지는 점령군 놈과 어울려서는 안된다고 말하지만 그녀에게 창녀라고 내밷는 것 외에는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 하지만 펠리시아는 라이서트가 임신을 시킨 것이 아니라 '우리 둘 다 책임이 있어요'(94)라는 말을 하는데 이것으로 그녀가 자기자신을 주체로 세우고 있음이 느껴졌다. 

사실 처음 글을 읽어나가면서 내심 예나 지금이나, 우리의 이야기이거나 머나먼 아일랜드에서의 이야기이거나 찰나의 사랑으로 남자는 떠나고 여자는 임신을 하게 되고 그 이후 여자에게 가해지는 온갖 불행을 떠올리게 되는 건 똑같구나, 라는 생각을 했었다. 하지만 펠리시아의 여정은 그렇지가 않으리라는 것을 짐작하게 되기 시작했다.  


하지만 아일랜드와 영국의 사이가 안좋은 것 이상으로 언어조차 생소해 처음 말을 알아듣기 힘들어 하는 펠리시아의 조니 찾기는 가족 몰래 집을 떠나는 것에서부터 그 결말이 예상될 지경이라 어려움에 어려움 더하기 하나의 느낌이었다. 

그리고 마주친 웰링턴가의 힐디치라는 중년의 남자는 답답함에 더해지는 최악의 결말에 한 스푼을 더해주는 느낌이었다. 


물론 이야기는 내 예상과는 완전히 다르게 흘러갔다. 여자의 일생같은 느낌이었다가 미스테리함으로 펠리시아의 이야기가 무엇을 말하려하는지 애매할 때쯤인 후반부로 갈수록 더욱더 문장 하나하나에 집중하지 않을 수 없었는데 그 의미를 모두 깨닫기에는 역부족이다. 하지만 마지막 책장을 덮으면서 애써 그 의미를 모두 찾지 않는다해도 무슨 상관이랴 싶어졌다. 내 예상과는 다른 결말이지만 그것이 놀랍다,라는 느낌이 아니라 더 많은 생각을 하게 하고 뭐라 설명할 수는 없지만 왠지 마음이 편해지는 느낌이었다. 펠리시아의 모든 환경이 그녀의 여정을 만들어냈지만 또한 그 여정에서 펠리시아는 또 다른 환경을 찾아내고 있는 것이다. 

"항상, 어디에서나 산 사람과 죽은 사람을 가르는 운명이 존재할 것이다. ... 그녀는 여전히 자신이 확실히 아는 것만을 선택하리라 생각한다. 그녀는 두 손을 뒤집어 다른쪽도 햇볕을 쬐고 고개를 살짝 기울여 얼굴의 반대편도 따뜻하게 한다"(3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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