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정 씨의 의지는 슬픔의 감정과 세포를 활성화시키더군요. 심지어 고통스러운 기억들조차도, 망각보다 기억을 끊어내는 것을 더 두워하는 걸 봤어요. 그리고 기억은 마침내 내게로 왔죠. 그러나 나는 아무런 감정을 가질 수 없었어요, 당신처럼.
괜찮아, 기억을 가져가도.
하정은 그렇게 말했다. 그 말이 엘비에 대한 자기 안의 어떤 죄책감을 희석시키는 것 같았다.
아뇨
엘비는 대답했다.
존재의 기억은 그 대상들로부터 비롯되는 것이지 주체의 것이아니라는 걸 깨달았어요. 기억은 기억의 대상이 있을 때만 의미가 있다는 것도, 기억의 대상이 없거나 감정을 가질 수 없다면 존재야말로 의미가 없다는 사실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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