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이 없는 로봇들의 세계. 인간은 없으나 인간세계의 경험과 역사와 재능을 가진 데이터들의 총합, 인간들이 살고 있는 도시 안에 그들만의 공간을 만든 로봇들. 이들이 지향하는 곳은 어디일까.
- P166

어쩌면 그들 모두 인생을 그렇게 헤매며 왔을 것이고 영기 자신도 다르지 않았다. 이 세상에 태어난 순간부터 죽을 때까지 삶을 항해하지 않는 생물은 없었고 그건 당연한 가치였다. 항해하기 때문에 의미가 필요한 것이다. 그 항해에 의미가 없다면 그건 하루를 명멸하고 사라지는 하루살이의 그것과 다를 바가 없기 때문이다.
- P167

하정 씨의 의지는 슬픔의 감정과 세포를 활성화시키더군요. 심지어 고통스러운 기억들조차도, 망각보다 기억을 끊어내는 것을 더 두워하는 걸 봤어요. 그리고 기억은 마침내 내게로 왔죠. 그러나 나는 아무런 감정을 가질 수 없었어요, 당신처럼.
괜찮아, 기억을 가져가도.
하정은 그렇게 말했다. 그 말이 엘비에 대한 자기 안의 어떤 죄책감을 희석시키는 것 같았다.
아뇨
엘비는 대답했다.
존재의 기억은 그 대상들로부터 비롯되는 것이지 주체의 것이아니라는 걸 깨달았어요. 기억은 기억의 대상이 있을 때만 의미가 있다는 것도, 기억의 대상이 없거나 감정을 가질 수 없다면 존재야말로 의미가 없다는 사실을요.
- P27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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