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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이름은 임마꿀레
임마꿀레 일리바기자 외 지음, 김태훈 옮김 / 섬돌 / 2007년 5월
평점 :
절판
몇년전에 나는 전세계의 기아아동을 위한 후원회에 가입했다. 그리고 한달에 한번 나오는 '희망'이라는 소식지를 받아보면서 르완다에서의 대학살에 대한 일부분을 접했던 기억이 난다.
이웃으로 지내면서 같이 성당활동도 하던 그들이, 평소 존경하고 잘 따르던 신부마저 종족학살을 하면서 같이 무차별하게 살해를 해버렸다는 이야기가 아주 먼 옛날 얘기일꺼라고 생각했던 기억도 난다. 백년전의 선교는 그렇게 목숨을 걸고 했을 거라는 그저그런 막연한 생각....
그런데 그것이 아니다. 몇백년이 아니라 몇십년, 아니 겨우 십여년전에 일어난 대학살 이야기인것이다.
올해 초, 나는 아프리카 내전의 비극을 잘 묘사한 블러드 다이아몬드라는 영화를 봤다. 시에라리온의 다이아몬드와 내전에 대해, 왜 끊임없는 악순환이 되풀이되는가에 대해 진지하게 그려낸 영화였다.
르완다에서의 대학살이야기도 실화이고, 블러드 다이아몬드의 이야기도 실화를 바탕으로 그려진것이다. 그리고 하나 더, 이 책 '내 이름은 임마꿀레' 역시 실제 경험을 이야기한 것이다. 르완다에서 일어난 끔찍한 대학살의 이야기를 담담히 전하고 있다. 아니, 그냥 평범하게 '담담히' 이야기 하고 있다는 뜻은 아니다. 역사적인 배경이나 종족간의 불화, 권력다툼 같은 이야기 속에 묻혀진 대학살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는 뜻이다. 보복의 의미도 없고, 종족의 구분이 굳이 필요없는, 21세기를 앞두고 있던 그때 왜 모두 광적인 열병을 앓듯이 모두 미쳐버린것인지에 대한 물음이 있고 분노와 증오에 대한 성찰과 용서에 대한 믿음이 있다.
제주에서의 4.3사건이 그랬고, 한국전쟁이 그랬고 르완다의 내전이나 시에라리온의 내전 역시 끔찍한 살상과 보복이 되풀이된 비극이었다. 오로지 인간만이 저지를 수 있는 학살이다. 인간임이 부끄러워지는 순간이지만 또한 인간이기에 행할 수 있는 '용서'를 떠올렸다.
물론 나는 그 학살의 이야기를 실감하지 못한다. 극도의 공포와 두려움, 사랑하는 가족과 친구들을 무참하게 죽인 살인자들을 용서한다는 것은 어떤 의미인지 깨닫지 못한다. 다만 인간에 대한 용서가 악순환의 차가운 고리를 끊을 수 있는 것이라는 것만은 알수있겠다.
긍정적이고 포기할 줄 모르고 끊임없이 시도하는 임마꿀레는 그렇게 자신의 삶을 새롭게 열어나갈 수 있었고, 그 악순환의 고리를 끊어버릴 수 있었다. 인간이기에 피비린내나는 대학살을 일으킬 수 있었지만, 또한 인간이기에 '용서'의 마음을 가질 수 있는 것이다. 무척 고통스럽고 쉽지 않은 일이겠지만 조금씩 그 고통을 잊고, 보복의 순간도 잊고 '용서'의 마음을 가질 수 있는것이다.
이 이야기는 임마꿀레, 한 개인의 이야기지만 또한 고통을 경험하고, 용서를 실천한 인간의 이야기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