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지막으로 작은 아버지가 - 특공대에서 살아 돌아온 - 돌아가신 것은 바로 몇 년 전 일이다. 교토의 거리에서 우익의 가두 선전차를 보면 "전쟁이 어떤 것인지 잘 모르니 저렇게 멋대로들지껄이는 게지……" 하고 젊은이들을 훈계하는 사람이었다.
- P31

나는 그런 체험이 없다. 나는 아주 평범한 가정의 외동아들로 비교적 애지중지 자랐다. 그래서 부모에게 ‘버려진다‘는 일시적인 체험이 아이에게 어떤 마음의 상처를 주는지, 구체적으로나 감정적으로나 이해하지 못한다. 그저 머리로 이런 것일 테지‘ 하고 상상하는 수밖에없다. 그러나 그런 유의 기억은 반드시 눈에 보이지 않는 상흔으로 남아, 그 깊이와 형상이 달라지는 일은 있어도 죽을 때까지 따라다니지 않을까?
프랑스의 영화감독 프랑수아 트뤼포의 전기를 읽고, 트뤼포 역시 유소년 시절에 부모와 떨어져 (거치적거리는 존재로 거의 방치되어) 다른 집에 맡겨진 경험이 있다는 것을 알았다. 그리고트뤼포는 평생 작품을 통해 ‘버려진다‘는 한 모티프를 지속적으로 추구한다. 사람은 누구나많든 적든 잊을 수 없는, 그리고 그 실태를 말로는 타인에게 잘 전할 수 없는 무거운 체험이 잏고, 그걸 충분히 얘기하지 못한채 살다가 죽어가는 것이리라.


- P34

어쨌거나 아버지의 그 회상은, 군도로 인간을 내려치는 잔인한 광경은, 말할 필요도 없이내 어린 마음에 강렬하게 각인되었다. 하나의 정경으로, 더 나아가 하나의 의사 체험으로, 달리 말하면, 아버지 마음을 오래 짓누르고 있던것을 - 현대 용어로 하면 트라우마를 - 아들인 내가 부분적으로 계승한 셈이 되리라. 사람의 마음은 그렇게 이어지는 것이고, 또 역사라는 것도 그렇다. 본질은 ‘계승‘이라는 행위 또는 의식儀式 속에 있다. 그 내용이 아무리 불쾌하고 외면하고 싶은 것이라 해도, 사람은 그것을 자신의 일부로 받아들이지 않으면 안 된다.
만약 그렇지 않다면 역사의 의미가 어디에 있겠는가?
- P51

사슴 불러 모아 노래하는 히틀러 유겐트"
(1940년 10월)

이는 히틀러 유겐트가 일본을 우호 방문했을 때 일을 읊은 하이쿠일 것이다. 당시 우방 나치 독일은 유럽에서 유리하게 전쟁을 계속하고 있었지만, 일본은 대영미 전쟁에 아직 착수하지 않은 상태였다. 나는 왠지 이 하이쿠가좋다. 역사의 한 광경이 - 아주 작은 한 모퉁이의 광경이 - 좀 이상한, 그다지 평범하지 않은 각도에서 그려져 있다. 멀리 떨어진 피비린내나는 전쟁터의 공기와 사슴들(나라의 사슴들일 것이다)의 대비가 인상적이다. 일본 방문의 한때를 즐긴 히틀러 유겐트의 청년들도, 그 후에는 추위가 혹독한 겨울의 동부전선에서 목숨이 다했을지도 모른다.

- P55

아마 나 같은 직업을 가진인간에게, 사람의 머리가 좋고 나쁘고는 그리 큰 문제가 아닐 것이다. 좋은 머리보다는 오히려 마음의 자유로운 움직임, 날카로운 직감 같은 것을 중요시한다. 그러니 ‘머리가 좋다 나쁘다‘ 하는 가치 기준을 축으로 인간을 가늠하는일은 - 적어도 내 경우 - 거의 없다. 그런 부분은 아카데믹한 세계와 아주 다르다. 


- P59

아마도 우리는 모두, 각자 세대의 공기를 숨쉬며 그 고유한 중력을 짊어지고 살아갈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리고 그 틀의 경향 안에서 성장해갈 수밖에 없을 것이다. 좋고 나쁘고를 떠나 그것이 자연의 섭리다. 마치 요즘 젊은 세대 사람들이 부모 세대의 신경을 일일이 곤두서게 하는 것처럼.

- P62

우리는 그 여름날, 같이 자전거를 타고 줄무암고양이를 버리러 고로엔 해변에 갔다. 그리고 우리는 함께, 그 고양이에게 추월당했다.
뭐가 어찌되었든, 우리는 멋지고 그리고 수수께끼 같은 체험을 공유하고 있지 않은가. 그때 해안의 파도 소리를, 소나무 방풍림을 스쳐 가는 바람의 향기를, 나는 지금도 또렷하게 기억해낼 수 있다. 그런 소소한 일 하나하나의 무한한 집적이, 나라는 인간을 이런 형태로 만들어놓은 것이다.
- P87

이렇게 개인적인 문장이 일반 독자의 관심을 얼마나 끌 수 있을지 나는 모른다. 그러나 나는 손을 움직여 실제로 문장을 쓰는 것을 통해서만 사고할 수 있는 인간이기에 (태생이 추상적, 관념적으로 사색하는 것에 서툴다) 이렇게 기억을 더듬고, 과거를 조망하고, 그걸 눈에 보이는 언어로, 소리 내어 읽을 수 있는 문장으로 환치할 필요가 있는 것이다. 그리고 이런 문장을 쓰면 쓸수록 그리고 그걸 되읽으면 되읽을수록 나자신이 투명해지는 듯한 신비로운 감각에 휩싸이게 된다. 손을 허공으로 내밀면, 그 너머가아른하게 비쳐 보일 듯한 기분마저 들 정도다.
- P88

만약 아버지가 병역에서 해제되지 않아 필리핀이나 버마 전선으로 보내졌다면…… 만약 음악 교사였다는 어머니의 약혼자가 전사하지 않았다면..... 그렇게 생각해가다 보면 정말 기분이 묘해진다. 만약 그랬다면, 나라는 인간은 이 지상에 존재하지 않을 테니까. 그리고 그 결과, 당연히 나라는 의식은 존재하지 않고, 따라서 내가 쓴 책도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다.
그렇게 생각하면 소설가로서 이렇게 살아있는 나의 삶 자체가, 실체가 없는 덧없는 환상처럼 여겨진다. 나라는 개체가 지닌 의미가, 점차 모호해진다. 손바닥이 비쳐 보인다 한들 이상할게 없다.
- P89

나는 한 평범한 인간의, 한 평범한 아들에 지나지 않는다는 사실. 그것은 아주 당연한 사실이다. 그러나 차분하게 그 사실을 파헤쳐가면 갈수록 실은 그것이 하나의 우연한 사실에 지나지 않는다는 점이 점차 명확해진다. 우리는결국, 어쩌다 우연으로 생겨난 하나의 사실을 유일무이한 사실로 간주하며 살아있을 뿐이아닐까.
바꿔 말하면 우리는 광활한 대지를 향해 내리는 방대한 빗방울의, 이름 없는 한 방울에 지나지 않는다. 고유하기는 하지만, 교환 가능한한 방울이다. 그러나 그 한 방울의 빗물에는 한방울의 빗물 나름의 생각이 있다. 빗물 한 방울의 역사가 있고, 그걸 계승해간다는 한 방울로서의 책무가 있다. 우리는 그걸 잊어서는 안 되리라. 가령 그 한 방울이 어딘가에 흔적도 없이빨려 들어가, 개체로서의 윤곽을 잃고 집합적인 무언가로 환치되어 사라져간다해도. 아니, 오히려 이렇게 말해야 할 것이다. 그것이 집합적인 무언가로 환치되어가기 때문에 더욱이.
- P93

나는 지금도 때로 슈쿠가와 집의 마당에 서있던 높은 소나무를 생각한다. 그 가지 위에서 백골이 되어가면서도, 사라지지 못한 기억처럼아직도 거기에 단단히 매달려 있을지 모르는새끼 고양이를 생각한다. 그리고 죽음에 대해서 생각하고, 저 먼 아래, 눈앞이 어질어질해지는 지상을 향해 수직으로 내려가는 어려움에 대해 생각한다.
- P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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