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월
존 란체스터 지음, 서현정 옮김 / 서울문화사 / 2020년 4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벽,이라는 말은 고립, 차단, 봉쇄...등의 이미지를 떠올리게 한다. 지금은 무너져 역사속으로 사라졌지만 하루아침에 가족과 이웃을 가로막아버린 베를린 장벽이라거나 특히 멕시코에서 넘어오는 불법이민자들을 막겠다고 국경에 장벽을 세웠다거나 팔레스타인의 이스라엘인들을 보호한다는 명목으로 거주지의 중심에 벽을 세워 팔레스타인들의 통행을 규제하는 장벽들을 떠올리면 내게 벽이라는 이미지는 보호라기보다는 차단, 봉쇄 같은 안좋은 느낌이 먼저 든다.

소설에서도 벽,은 섬을 보호한다는 명목이지만 실제로 내게는 봉쇄의 의미로 다가온다.

 

미래의 어느 시점에 해수면의 상승으로 인한 생활의 변화와 자원의 부족상태가 된 섬나라는 바다 너머에서 오는 상대의 침입을 막기 위해 해안선을 따라 성벽을 쌓는다. 그리고 국민 모두에게 2년동안의 의무 복무 기간을 두고 그 기간에는 오로지 벽 위에서만 생활을 하며 경계 근무를 선다.

카바나 역시 성벽에서의 복무를 위해 경계 근무를 서게 된다. 아무 탈 없이 복무기간 2년을 넘기면 카바나는 안정적인 섬생활을 이어갈 수 있지만 만약 상대의 침입을 허용하기라도 한다면 그는 추방되어 바다를 떠돌아야 할지도 모른다. 긴장과 두려움으로 시작된 성벽 생활도 익숙해질 즈음 카바나는 실전같은 모의 전투의 경험도 쌓게 되고 4번이나 성벽근무를 하는 대위와의 만남으로 작전수행도 하는데...

 

"남들이 생각하는 것보다 산 자도 죽은 자도 서로 미워하는 감정은 없었다. 교대로 살고 교대로 죽는다. 모두가 한 배를 탄 것이다. 정말로 모두가 똑같다. 상대나 경계병이나 뭐가 다른가? 나는 이것이 죽을때까지 싸우는 것과 정반대가 되는 것인지 아니면 그것에 대한 최선의 대비책인지 판단이 잘 서지 않았다."(108)

 

사실 나는 이 소설이 절망을 말하는 것인지 희망을 말하는 것인지 명확하게 나눌수가 없다. 물론 어떤 이야기이든 절망을 이야기하며 우리의 끝이 절망이다,라는 결론으로 끝내지는 않을 것이다. 그런데 카바나가 성벽을 넘어 침입하려는 상대의 공격을 물리치는 것은 희망이고 제대로 경계를 못해 추방당하는 것은 절망일까? 만약 추방당한 후 죽음에 이르지 않고 새로운 정착지에서 새로운 생활이 이어진다면 그것은 과연 희망이라 할 수 있을까?

카바나와 히파가 발견한 시추선은 또 하나의 섬나라 같은 느낌인데 그곳에서의 생활은 과연 희망일까, 절망일까.

섬나라에서의 성벽과 시추선에서의 사다리는 서로 대비되면서 알 수 없는 저 너머 상대로부터의 침입이 두렵기도 하지만 외부와 단절된 안정이 과연 행복이라 할 수 있을까?

 

스포일러를 담지 않아보려고 했는데 그러다보니 온통 추상적인 이야기만 넘쳐나는 것 같다. 하지만 한가지 분명한 것은 이 소설에서 이야기하는 '벽'이 보호는 아니라는 것이다. 소설의 첫문장과 끝문장은 '벽 위는 춥다'는 것을 말해주고 있다. 벽 위는 춥고 벽 너머에는 경계해야하는 상대가 존재하지만 만약 벽을 허물어버리게 되면 어떻게 될까? 여기서 또 하나 분명한 것은 벽이 허물어지면 포로로 잡혀 도우미가 되어야 하는 미래의 노예들은 없어지는 것 아닐까...

"일부는 벽 방어에 찬성하지 않는다. 벽은 바닷물을 막기 위한 것이지 인간을 막기 위한 게 아니란 것이다. 그들 중 일부는 상대를 도우미로 쓰는 것에도 찬성하지 않는다. 노예제로 보기 때문이다"(213)

 

그리고 한가지 더. 아무래도 카바나와 히파의 이야기는 새로운 시작을 의미하는 것 같고 그것은 곧 희망을 말하는 것이 아닐까 확신하게 된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7)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