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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여자들은 침묵하지 않았다
크리스티나 달처 지음, 고유경 옮김 / 다산책방 / 2020년 2월
평점 :
"100만년 전 사실 겨우 20년이지만, 전 세계의 모든 삶과 마찬가지로 100만 년 전, 1000만 년 전처럼 느껴지는 어느 날, 재키는 나에게 자유롭게 살기 위해 뭘 할 건지 물었다."(443)
사실 이 물음에 대한 저자의 답은 그리 마음에 들지는 않는다. 물론 그 대답이 정답이라고 하지도 않았고, 그것이 유일한 해결책인 것도 아닌 것이 사실이지만.
솔직히 이 책은 읽는 것이 쉽지 않았다. 너무 근본주의적인 목사의 권력 장악이라는 것과 그런 정책의 실현을 위해 폭압적인 정부와 점점 더 순응해가는 사람들의 묘사가 비현실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너무나 적나라한 현실 같아서 자꾸만 책을 덮고 던져버리고 싶어졌기 때문이다.
이야기는 순응적이고 다루기 쉬운 국민을 원하는 대통령과 성경의 가르침을 근본주의적으로 따르며 교회의 머리가 그리스도라면 여자의 머리는 남자이며 여자는 하루에 백마디 이상의 말을 허용해서는 안되며 순수운동이라며 여성을 온전히 남성에게 종속된 사람으로 법규정까지 만들어버린 곳에서 살아가는 진은 그 상황이 못견디게 싫지만 그에 저항할수록 규제는 더욱 강화된다. 심지어 현재 범죄자들이 차는 전자팔찌처럼 여성들에게는 손목팔찌인 카운터를 채우고 하루에 백마디 이상의 말을 내뱉으면 즉시 전기 충격이 가해진다. 겨우 5살박에 안된 진의 딸 소니아 역시 엄마와의 대화도 나누지 못한 채 카운터를 팔에 채우고 무심코 말을 내뱉어 한밤중에도 가해지는 전기충격에 고통스러워할 뿐이다.
거기에 더해 아들 스티븐마저 학교에서 받는 수업을 통해 여성과 남성의 물리적인 차이를 말하며 남성의 우월함과 여성은 남성에 복종해야한다는 의식 교육을 당연하게 받아들이는 상황과 이웃에 가해지는 국가의 폭력이 점점 더 거세어지고...
인지언어학자인 진이 새로운 규정에 의해 오히려 한마디 말을 제대로 할 수 없고 울음을 터뜨리는 딸에게도 말을 하지 못하게 입을 막아야 하는 모순된 상황들이 처음엔 어리둥절하게 만들지만, 이 소설이 무엇을 이야기하고자 하는가 깨닫게 되면 이것은 현실이 아니야, 라고 하면서도 자꾸만 분노가 치밀어 오른다. 그런데 가만 생각해보니, 비현실인 소설 속 이야기에 분노하고 있는 이유는 이 모든 상황들이 먼 미래의 일이 아니라 지금도 이 세상 어딘가에서 전기 충격이 가해지는 카운터만 없을 뿐 침묵을 강요당하고 여성성이 존중받지 못하며 한낱 도구화 취급되어버리고 남성의 소유물처럼 여겨지고 있는 상황은 우리의 현실임을 느끼고 있기 때문이다.
더구나 여성의 인권, 인간의 존엄성을 마구 짓밟는 이야기가 더 생생하게 느껴지는 것은 아마도 과거의 그런 폭압적인 역사가 있었음을 알고 있고 그러한 과거의 모습이 얼마나 끔찍한가를 이미 알고 있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옥타비아 버틀러의 '킨'이라는 소설에서도 타임슬립을 통해 노예제가 있는 시대와 현재를 오가는 여성의 이야기가 중심주제인데, 현재에서는 전혀 문제가 되지 않지만 과거에 갔을 때 이동조차 쉽지 않은 - 그러니까 주인공 여성이 흑인이었기에 노예제 사회에서 물건으로 취급되는 상황은 그 어떤 암울한 SF 소설보다 더 암울함이 느껴지는 공포의 상황이었다.
우리의 상상을 초월하는 독특한 이야기이기는커녕 어쩌면 그냥 뻔한 이야기가 담겨있다고 볼수도 있는 크리스티나 달처의 '그리고 여자들은 침묵하지 않았다'라는 소설은 이미 우리가 역사를 통해 그 폭압적인 내용을 알고 있으며 우리의 현재가, 또한 지금 우리가 암묵적인 동의의 침묵을 지키고 행동하지 않는다면 과거의 처참한 역사는 곧 우리의 미래가 될지도 모른다는 경고를 적나라하게 보여주고 있다는 것으로도 전혀 뻔하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