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의 주인
로버트 휴 벤슨 지음, 유혜인 옮김 / 메이븐 / 202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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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스토피아 소설, 이라는 걸 알았으면서도 이 암울한 소설의 마지막을 대하는 것은 마음이 편치 않다. 아니, 사실 이런 결말을 기대한 것은 아니었는데 도무지 정리가 되지 않는다. 3부의 '승리'는 정말 가톨릭의 승리, 세상의 주인인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을 암시하며 영광스러운 가톨릭의 지배가 세상의 평화를 가져오는 그런 세상을 떠올렸는데 소설은 당연하게도 그런 모습을 보여주지는 않는다. 물론 그 끝이 세속에서 말하는 그 끝과는 다르다는 걸 생각하고는 있지만 말이다.

 

소설의 시작은 저자 스스로 장황한 프롤로그라고 표현하고 있지만 현재의 시점에서 백여년전에 그려진 미래의 모습은 그리 충격적이지도 않고 놀랍지도 않다는 것이 조금은 기대치를 낮추게 된다. 하지만 한세기 전에 이미 이런 미래를 정확히 예견하고 있다는 것에 이 소설의 의미가 담겨있을 것이다. 어린 시절 읽은 조지 오웰의 1984는 사회주의, 전체주의를 비판하는 단순한 반공도서였지만 몇년 전 그 책을 다시 읽으며 사뭇 다른 느낌을 받았었던 것처럼 세상의 주인은 또 다른 느낌을 받을 수 있을까...

 

프롤로그를 통해 세상의 구조적 상황을 설명하고는 있지만 펠센버그라는 인물에 대해 뚜렷한 사상에 대한 설명도 없고, 그가 세상의 평화를 위해 행동을 보여주지도 않는다. 그런데 그의 등장만으로 모두가 빠져들어가는 인물 펠센버그는 연설 하나로 전쟁의 위기에 놓인 동서방의 세계를 평화로 이끌어낸다. 그 후 펠센버그는 유럽을 넘어 세계의 대통령이 되고 신이 아닌 인간인 그를 신격화하고 의례를 만들어낸다.

펠센버그와 외모가 닮았지만 가톨릭 사제인 퍼시는 무너져가는 가톨릭을 세우기 위해서 새로운 교회공동체를 설립해야 할 것을 역설하는데 그런 그를 교황은 로마로 불러들인다. 퍼시 신부의 제안대로 가톨릭교회는 쇄신을 꿈꾸지만 종교적인 탄압은 거세어지고 그 와중에 과격한 가톨릭교도들의 폭탄테러 계획을 빌미로 오히려 로마가 폭격을 당해 결국 가톨릭 교회는 무너지고 그 속에서 살아남은 퍼시 신부는 가톨릭의 교계를 잇는 교황이 되어...

결말을 이야기하기에는 이 책의 내용을 너무 단순화시켜버리는 것 같아 더 이상 언급하기가 어렵다. 양분화된 두 세계의 모습과 그 세계를 이어주듯 정치가인 브랜드 부부가 나오는데 무신론자이면서 그리스도 신앙을 무시할 수 없는 메이블의 죽음에 대한 선택은 그 자체가 옳은 것인가에 대한 물음보다 왜 그녀가 그런 선택을 해야했는가에 대한 물음에 대한 대답을 더 깊이 생각해보게 된다. 소소한 부분일지 모르겠지만 메이블과의 만남 후 깊은 생각에 빠지는 배교자 프랜시스의 모습에서도 저자가 무엇을 말하고 싶어하는지 잠시 생각해보게 되는 것은 내가 가톨릭 신자이기 때문일까.

 

세상의 끝,에서 새로운 세상의 시작을 본다. 어느 한 명의 인간에 의해 모두가 개성을 잃고, 하나된 세계를 말하지만 그것은 더이상 공동체가 아닌 일원화된 집단일뿐임을 깨닫게 되는 것 역시 새로운 시작일 것이다.

세계가 파괴되어가고 있지만 거룩한 미사성제가 거행되고 성경의 은유와 교회를 파괴하기 위한 폭격의 모습이 환상처럼 펼쳐지며 세상의 끝을 이야기하고 있는 그 의미에 대해서도, 왜 프란치스코 교종이 이 책을 추천했는가에 대해서도... 자꾸만 많아지는 생각들을 더 깊이있게 담아야겠다. 이것 역시 끝의 시작일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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