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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판본 웃는 남자 (1869년 오리지널 초판본 표지디자인) ㅣ 더스토리 초판본 시리즈
빅토르 위고 지음, 백연주 옮김 / 더스토리 / 2020년 1월
평점 :
"운명은 간혹 우리에게 광기 한 잔을 주며 마실 것을 권한다. 손 하나가 구름 속에서 나와서 알 수 없는 취기로 가득 찬 잔을 우리에게 불쑥 건네는 것이다."(707)
이 걸작에 대해 뭐라 할 수 있을까.
책은 단숨에 읽었지만 빅토르 위고의 이 작품에 대한 이야기는 쉽게 꺼낼 수가 없다. 레 미제라블이나 노틀담의 꼽추 같은 작품은 익히 알고 있지만 '웃는 남자'라는 작품은 처음 접해본다. 이미 화제가 된 뮤지컬 공연이 유명하다고 하지만 내용은 커녕 이런 작품이 있다는 것조차 몰랐었기에 책을 처음 집어들면서 잠시 망설였다. 왠만해서는 책에 대한 해설을 먼저 읽지 않는데, 특히 소설인 경우 스토리를 따라가는 긴장감을 갖기 위해 일부러 책의 정보는 전혀 보지 않고 무작정 책을 읽는 습관이 있어서 이 책 역시 무작정 읽기 시작했다. 그런데 이 책은 당시의 시대적 배경도 없이, 어떤 이야기가 담겨있는지 전혀 모르는 상태에서 읽기에는 쉽지가 않다. 그런데 어떤 오기가 생겼는지, 책에 대한 이해가 적더라도 일단 첫번째 독서는 아무런 정보없이 내 느낌대로 읽고 싶은 마음을 버리고 싶지 않아 그냥 그렇게 무작정 읽기 시작했다.
주인공 인물의 등장인가, 싶으면 이야기는 또 다른 장면을 이어가고 인물 중심의 이야기가 아니라 당시의 상황에 대한 설명이 더 장황하게 나오고 있어서 이야기 중심의 소설 읽기가 아닌 문장에 담겨있는 의미와 내용을 중심으로 읽으려고 했다. 조금은 막연하지만 빅토르 위고가 살았던 당시의 프랑스를 떠올리며 이해해보려고 했다. 아니, 사실 역사적인 배경지식이 없더라도 이 소설은 충분히 이해가 가능하다. "운수 좋은 이들이 벌이는 불운한 자들에 대한 착취"(48)와 같은 문구들에 집중하여 이해하려고하면 말이다.
포틀랜드만에 정박해있던 배가 출항을 하려할 때 배에 오르려던 소년이 다른 승객들에게 떠밀려 배를 타지 못하고 일행과 떨어져 홀로 남게 된다. 이 소년은 그렇게 배를 타지 못한 것인지, 소년을 일부러 떼어놓기 위해 떠밀린 것인지 알지 못한 채 정처없이 인가를 찾아 길을 걷다가 동사한 여인의 몸에서 살아있는 아기를 발견하고, 아기와 함께 쉴 곳을 찾아 나선다. 그리고 그 소년은 늑대인 호모와 함께 살고 있는 우르수스의 집을 찾아내고 그들과 함께 살아가기 시작하는데...
소설의 앞부분은 이런 배경이 설명되어 있고 그 후 15년이란 세월이 흘러 아기는 눈이 멀었지만 아름답고 착한 소녀로 자라고 소년 그윈플렌은 그 자신의 모습으로 광대가 되어 호모와 우르수스와 함께 공연으로 생계를 이어나간다. 그러던 그에게 뜻밖의 신원이 밝혀지는 일이 생기고...
스포일러라고 할것까지는 없겠지만 나름 웃는 남자 역시 소설적 구성을 따르고 있기에 결말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기로 하자. 다만 웃는 남자,라고 할 수 있는 그윈플렌의 존재에 대해 우리가 생각해 볼 것은 너무나 많다.
"인간은 결코 이런 모습으로 태어나지 않는다.사연이 어떻건 그윈플렌은 경탄할 만한 성공작이었다. 그는 인간의 슬픔에 대한 신의 가호가 내린 하늘의 선물과 같았다. 어턴 가호일까? 신의 가호가 있듯 악마의 가호도 있던가? 질문만 제기하고 답은 하지 않겠다."(452)
조커의 원형으로 알려져있는 웃는 남자 그윈플렌은 그가 광대를 연기하는 모습이 아니라 그가 수많은 대중앞에서 연설을 할 때 그 자신의 본연의 모습이 나온다. 슬픔을 담고 있지만 웃고 있는 얼굴,은 우리 시대 수많은 이들의 자화상이기도 할 것이다. 빅토르 위고가 이 작품을 '귀족'이라고 하려했다는 말이 처음엔 이해가 되지 않았지만 그가 말하는 귀족이 계급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노블리스 오블리주의 의무가 있는 귀족을 말하려는 것이라 생각하면 그가 이 작품을 통해 말하고자 하는 것들의 일부를 조금은 알 수 있을 것 같기도 하다.
"사람들의 인상은 의식과 일상으로 만들어진다. 그리고 그 인상은 신비하게 깎아낸 무수한 삶의 결과이다.그윈플렌이 본 얼굴 주름 중 고통, 노여움, 모욕감, 절망감으로 파이지 않은 것은 없었다. 어떤 아이들의 입은 한동안 먹지 못한 흔적이 역력했다. 어떤 남자는 아버지였고, 어떤 여자는 어머니였으며, 그들 뒤에는 파멸해가는 가족들의 모습이 보였다. 그런 얼굴은 못된 습관에서 나와서 범죄로 들어서고 있는 얼굴이었다. 굳이 왜 그렇게 된 것인지 알아야 한다면 그것은 무지와 가난 때문이었다. 그들은 얼굴에는 사회적 압박에 의해 삭제되어 증오로 변해 버린 선의의 흔적이 남아 있었다. 한 노파의 이마에서는 굶주림이 선명하고, 어느 처녀의 이마 위에서는 매춘이 음산하게 드러났다. 어린 시절의 얼굴을 고스란히 가지고 있는 소녀에게도 역시 음울함 뿐이었다. 이 무리들 속에는 무수한 팔만 있을뿐 연장은 존재하지 않았다. 일꾼들은 더 나은 것을 요구하지도 않았지만, 일거리가 없었다. 가끔은 군인 하나가 노동자 곁에 와 앉았다. 가끔은 부상당한 병사였다. 그리하여 그윈플렌은이 광경, 전쟁이라는 유령을 보았다. 한쪽에서는 실업, 다른 쪽에서는 착취, 그리고 또 다른 쪽에서는 노예를 보았다. 몇몇 얼굴에서는 무엇인지 형언하기 어려운 인간이 짐승으로 돌아가는 퇴행 현상을 보았다. 인간이 짐승으로 퇴행하는 것은 높은사람들의 행복이 만들어 내는 막연한 무게의 압박으로 인해 아래에서 생겨나는 것이었다. 이 암흑 속에서, 그윈플렌에게는 빛이 들어오는 환기창 하나가 있었다. 그와 데아 두 사람은 고통의 날 속에서도 얼마간의 행복을 누렸다. 그것 말고는 모든 것이 저주였다. 그윈플렌은 자신의 위에서 권력자와, 부자들과, 멋있고, 위대한 사람들, 우연의 선택을 받은 자들이 무의식적으로 짓밟고 있는 것을 느꼈다. 그는 가진 것 없는 불우한 사람들의 창백한 얼굴 한 무더기를 구별해냈다."(520-521)
2백년전에 태어난 빅토르 위고가 쓴 작품속 글이 과거에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지금 우리의 현실에서 볼 수 있다는 것이 조금은 씁쓸해지는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