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당신의 평온을 깼다면
패티 유미 코트렐 지음, 이원경 옮김 / 비채 / 2020년 1월
평점 :
절판


"'내가 당신의 평온을 깼다면 미안해요'는 내가 사과를 할 때 쓰는 말이다. 직장에서는 늘 이 말을 썼는데, 사람마다 아주 다양한 의미로 받아들일 수 있는 좋은 사과 말이다. 미안해요, 제 실수예요, 라는 뜻일 수도 있다. 내가 널 망쳐주겠어, 나쁜 년, 이런 듯을 수도 있다."(117)

 

내가 당신의 평온을 깼다면, 이라는 말은 이렇게 소설속에 인용되어 있다. 사람마다 아주 다양한 의미로 받아들일 수 있는, 이라는 말에서 어쩌면 이 소설은 작가의 의도대로 읽히지 않는것이 더 자연스러울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아니면 작가 역시 자신의 의도라기보다는 하나의 이야기가 이미 형성되어 있는 것을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세상밖으로 내보내게 되었다는 것일지도.

 

이 이야기는 미국으로 입양된 한국인 소녀 헬렌이 같은 가정으로 입양된 한국인 남동생의 자살 소식을 듣고 그의 죽음에 대한 의문을 풀어내기 위해 장례식에 참석하기 위해 오래 전에 떠나 온 집으로 돌아가서 지낸 3일동안의 이야기이다. 물론 커다란 줄거리는 자살을 한 동생의 죽음의 이유에 대해 확인을 하기 위해 과거를 회상하고 양부모를 비롯한 친구들의 이야기를 털어놓는 것이다. 시간상으로는 3일이지만 헬렌이 과거를 회상하며 입양된 가정의 양부모에 대한 이야기라거나 학교생활, 동생과의 일화 등을 따라가다보면 선뜻 그들의 이야기를 받아들이기 힘들어하고 있는 나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이것은 단지 미국 중산층 가정생활에 적응하지 못한 이방인인 한국인 입양아들의 이야기만은 아니라는 생각을 하게 되는 것이다.

 

자살한 동생의 죽음을 파헤치는 뜻밖의 스릴러일까, 싶었지만 이 소설은 전혀 그런 이야기가 아니다. 다만 헬렌의 입장에서만 바라보던 그들의 가족과 그녀의 친구들, 그녀의 직장생활을 들여다보고 있다가 그녀가 만난 인물들에게서 튀어나오는 한마디 말에 흠칫 하며 다시 헬렌을 보게 되는 것이다. 더구나 동생을 죽음에 이르게 한 그 무엇인가를 찾기 위한 그녀의 노력은 오히려 동생이 철저히 자신의 죽음을 준비하며 마지막에 죽음 이후 자신의 장기를 기증할 수 있는 방법까지 생각하고 있었다는 것은 도대체 그들의 삶에는 무엇이 있었을까, 싶어진다.

이쯤에서 다시 그녀의 말이 떠오른다. '내가 당신의 평온을 깼다면 미안해요'......

 

"1년 전쯤, 나는 내 윤리의 나침반을 박살 냈다. 그 파편들은 사방으로 날아갔다. 박살 나기 전, 그 나침반은 내게 무용지물이었다! 차라리 파편이 나았다! 나는 그것들을 쓰레받기로 쓸어 모아 내다버렸다. 좌절하는 시기에 윤리의 나침반은 흔들릴 수 있으며, 사실극단적으로 윤리적 자세가 바뀔 수도 있다. 윤리적 자세는 콘크리트안에 고정돼서는 안 되며, 가끔은 윤리의 나침반을 흔들 필요가 있고, 때로는 파괴해야만 한다."(165)

삶은 죽음을 향해가고 있는 것이다.

입양아로 살아간다는 것은 이방인이면서 이방인이 아닌 삶을 살아가는 것일까. 전혀 다른 가정에서 쉽게 받아들일 수 없는 문화와 사회환경은 그들을 숨막히게 하고 따돌림을 당하게 하고 결국은 죽음에 이르게 하는 것인가, 라고 묻는 듯 하지만 결국은 그런 이야기가 아니라는 것을 보여준다. 극적이지도 않고 이야기같지도 않고 그래서 어쩌면 이것이 현실이고 작가의 자서전일까 라는 궁금증도 생기지만 이야기의 끝에서 그 모든 의문은 사라지고 - 자살을 택한 동생의 입장은 그 누구도 모르기때문에 - 헬렌의 입장에서, 또 독자의 입장에서 작가가 말하는 것, "나는 그저 목소리를 따라갔다. 스토리는 부차적인 것이었다. 마침내 헬렌의 이야기가 끝에 다다랐을 때, 나는 어떤 면에서 그 결말이 희망적이고 고무적이라고 생각했다."라는 그 말의 의미를 어렴풋이 떠올리게 된다.

 

"개인적으로 나는 내 인생이 아름다웠다고 생각한다. 남들 눈에는 아름다워 보이지 않겠지만, 내게는 그 정도면 충분했다"(2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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