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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건디 여행 사전 - 여행의 기억을 풍요롭게 만드는 것들
임요희 지음 / 파람북 / 2019년 12월
평점 :
지금 보니 이 책의 부제가 '여행의 기억을 풍요롭게 만드는 것들'이다. 어쩌면 이리도 딱 들어맞는 느낌이 드는지.
버건디, 여행사전이라고 하니 첫느낌은 여행중에 만난 버건디 이야기겠구나 뿐이었는데 그 여행이라는 것이 어떤 특별함을 말하고자 하는 것이 아니라 나의 삶에서 시간여행이든 공간여행이든 일상을 특별하게 만들어주는 버건디에 대한 기억을 담아내는 것임을 느끼게 되니 이 이야기들이 더 좋아졌다. 사실 책을 다 읽고나니 나 역시 내가 좋아하는 색을 찾아 나의 일상을 특별하게 기억하고 기록해보고 싶은 마음이 슬핏 떠오르고 있다.
일주일에 한번은 성당에 가는데 오늘따라 성당의 제단으로 가는 길 바닥에 깔려있는 붉은 카펫, 유심히 보고 있으려니 적갈색빛으로 칠해진 장궤틀, 스테인글라스 유리창에 입혀진 붉은 유리, 성당 건물 외벽의 붉은 벽돌... 커다랗게 보자면 정말 주위에 온통 버건디가 나를 반겨주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물론 가장 중심은 이 책에서도 자주 언급되고 있는 예수 그리스도의 성혈이겠지만.
아무튼 이렇게 생각하고 보니 저자가 추억하는 고무 대야가 내게는 또 다른 이야기를 떠올리게 하고 있듯이 같은 것을 보면서 각자 다른 시간 여행을 하기도 하고, 다른 공간에 있지만 서로 공유할 수 있는 기억들이 있다는 것이 이 책을 더 재미있게 읽을 수 있게 한 것 같다. 저자의 한달, 두달 살이 캐나다 여행과 나의 패키지 일주일 여행은 비교할수가 없는 것이지만 그녀가 캐나다에서 청소를 하며 공기의 맑음을 기억하고 있다면 나는 여행이 끝나고 공항을 나와 서울 시내로 들어오자마자 맡은 매캐한 매연에 숨쉬기가 힘들었던 기억을 갖고 있다. 캐나다의 단풍은 그런 추억을 불러온다. 물론 단풍은 동유럽을 여행할 때 봤던 그 아름다운 풍경을 떠올리게 하기도 하고, 아우슈비츠 수용소를 보고난 후 그 먹먹해진 마음으로 나왔는데 눈앞에 펼쳐진 단풍 든 나무 숲이 떠오르기도 한다. 그 옛날 그래도 버리지 못한 희망을 안고 이 아름다운 풍경을 보며 잠시 마음은 설레었을 것 같은 그들에게 닥친 잔혹한 운명을 떠올리면 세상에서 가장 슬픈 단풍의 풍경이 아닐까.
여행을 즐기고, 여행의 기억을 풍요롭게 만들어주고, 일상의 모습도 특별하게 만들어주는 나만의 여행 사전,을 만들어보고 싶은 기록의 욕심은 단지 욕심뿐인 것만이 아니라 이제 조금씩 나 자신이 즐길 수 있는 행복한 추억을 만들어가야겠다는 다짐이기도 하다. 그런 의미에서 버건디 여행 사전은 새로운 즐거움을 알려 준 책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