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혼녘 백합의 뼈
온다 리쿠 지음, 권남희 옮김 / 북폴리오 / 2007년 5월
평점 :
절판


이 책을 이렇게 빨리 읽을 생각은 없었다. 나는 아직 '보리의 바다에 가라앉는 열매'도 읽지 못했기때문이다. 더구나  '삼월은 붉은 구렁을'도 읽은 기억이 가물거려 다시 한번 살펴보고 읽으려 했다. 그런데 언제나 독서 계획은 맘 먹은 대로 흘러가지 않는 법. 읽던 책을 다 읽고 잠깐 이 책을 손에 들고 있다가 무의식적으로 읽기 시작해 결국은 ... 이렇게 다 읽어버렸다. 이제 온다 리쿠의 작품도 꽤 많이 번역출판되었고, 나 역시 그에 맞춰 꽤 많은 작품을 습관처럼 읽게 되었다. 그러면서 생겨난 버릇은 '이 작품은 어느곳에서 누가 불쑥 튀어나와 깜짝 놀래키려나'하는 것이다.
아, 물론 '깜짝'까지는 아니더라도 불쑥,이라는 말은 이 작품에 맞는 말이지 않을까?

어느곳에서 누가 '불쑥' 튀어나오는지에 대한 이야기를 구구절절이 하려면 할수도 있지만 - 아니, 그 얘기를 하는 것으로 서평쓰기를 끝내고 싶다. 하지만 이런 이야기 구성의 책은 내용에 대해 한마디도 하지 않고 넘어가는 나의 서평습관을 차마 버리지 못하겠어서 뭘 어찌 써야하나... 망설이고 있는 중이다.

"이렇게 자각하지 못하는 악은 무엇인가. 그녀의 바탕에는 내가 감히 다가갈 수 없는, 깊고 넓은 악의 늪이 펼쳐져 있는 게 아닐까. 그런 늪은 나 같은 사람도 삼켜버리는 게 아닐까"(300)

이야기의 흐름은 함정처럼 이곳저곳에 궁금증과 의심을 심어놓고 있지만 중반을 넘어가면서 그 중심이 흐트러지는 느낌을 받았다. 그리고 이야기가 혼전을 빚으며 반전의 반전이 이뤄지는 듯 흘러가지만 이미 나의 관심은 그에서 비껴나기 시작했다. 물론 반전으로 뒤집어지는 이야기의 결말은 궁금증을 자아내면서 책 읽는 속도를 높이기는 했지만 그보다 더 마음에 남는 것은 '악'에 대한 것이다.
이기적인 마음이 얼마나 악해질 수 있는지, 그 악한 마음이 악하다는 것조차 자각하지 못할 때 얼마나 무서운 결과를 갖고 오는지 우리는 현실감있게 느끼지 못한다. 악을 숨기기 위해 또 다른 악을 불러일으키고 있다는 것도 자각하지 못하며 악순환이 되풀이 된다는 것이 얼마나 끔찍한가. 그러한 악을 인식하게 된다는 것은 또 얼마나 무서운 일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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