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도 타다오의 건축에서는 형태의 존재감을 못 느낀다. 그런데도 그의 건축을 대하면 아무리 건축을 모르는 사람이라도 강한 감동에 빠지는데, 이것은 전적으로 건축이 가진 공간 때문이다. 오로지 공간성만을 추구하는 건축이 그의 건축에 와서 완성 단계에 이르렀다는 것을 느낄 수 있다. 45
빛의 교회를 제대로 감상하려면 교회안으로 들어가는 과정부터 챙겨야한다. 이 교회는 주택가 길거리에 접해있지만, 건물 안으로 들어가려면 옆으로 둘러서 들어가야한다. 상식과는 다르게 교회 입구가 건물 정면이 아니라 건물 뒤쪽에 있기 때문이다. 교회 입구가 건물 뒤쪽에 있는 것은 건물 안의 공간을 활용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안도 타다오는 건물의 공간 변화를 통해 커다란 감동을 만드는 데 발군의 실력을 갖춘 건축가이므로 그의 건축은 건물 안의 공간 변화가 중요한 볼거리이다. 이 교회는 조그마한 건물 한 채뿐이고, 건물이 너무 작아서 실내에서는 역동적인 공간 변화를 구현하기 어려웠다. 건물 안에 공간의 변화를 줄 수 없으니 건물 바깥을 둘러가게 만들어서 공간의 변화를 꾀하는 아이디어를 낸 것이다. 건축의 현실적인 한계 안에서 풀어내는 솜씨는 세계적인 건축가로서의실력을 유감없이 보여준다. 이러한 안도 타다오의 의도를 인식하고 건물의 각 면을 따라 돌아 들어가면, 체험되는 공간이 점차 좁아지고 어두워지는 것을 알 수 있다. 공간의 변화를거쳐 마지막으로 건물 안에 들어가면 좁고 어두운 공간에 들어서게 된다. 여기서 공간은 최대한으로 압축되고 캄캄해진다. 바로 이 공간을 지나 예배당 안쪽으로 들이가면 공간이 갑자기 넓어지면서 건물 가장 안쪽에 있는 벽면의 십자가 빛을 만나게 된다.
이 장면의 감동을 위해 건물을 돌아 들어가게 만들고, 공간을 점차 압축했다. 건물을 돌아서들어오는 동안 체험하는 기승전결의 구조를 가진 공간의 시퀀스는 디자인이라기보다는 영화에 가깝다. 건물은 시멘트 질감에 별다른 볼 것이 없지만 공간 구성이 우리의 오감을 매료시킨다. 47
르 코르뷔지에의 건축 공간은 일본의 인도 타다오로 계승되어 지금까지 현대 건축에서 새로운 가치로 자리매김해 왔다. 안도 타다오는 분명 위대한 건축가이고, 앞에서 살펴본 것처럼 누구도 따라 할 수 없을 만큼 뛰어난 현대 건축들을 만들어 온 거장 중의 거장이다. 하지만 병산서원에서 볼 수 있었던 것치럼 건물과 주변의 자연을 능수능란하게 다루어 최고의 시너지 효과를 도모하는 경지에는 올라갔다고 할 수 없을 것 같다. 안도 타다오의 건축은 여전히 경계가 분명하고, 감동적인 공간을 자아내지만 긴장감을 동반한다. 그의 건축을 오래대하다 보면 감각이 피로해진다. 병산서원은 아무리 오래 있어도 질리지 않으며, 건물에 오래 있으면 있을수록 몸과 마음이 건강해진다.
이런 사실을 생각하면 아직 현대 건축은 안도 다다오에서 마무리되었다고 할 수 없고, 갈 길이 더 남았다고 할 수 있다. 그런 점에서 본다면 병산서원을 비롯한 우리 건축 전통은 오래전의 것이 아니라 앞으로 세상의 변화를 추진해 나갈 수 있는 미래 자원으로서 더 큰 의미가 있다고 할 수 있다. 르 코르뷔지에나 안도 타다오의 여정의 마지막에는 우리 전통 건축이 자리 잡고 있는 것이다. 앞으로 건축의 앞길은 우리에게 달려있다고 하면 과장일까? 6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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