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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더듬이 자크
소르주 샬랑동 지음, 이주영 옮김 / 아고라 / 2007년 2월
평점 :
품절
새학기가 시작되면서 오늘 개학을 한 학교가 많았나보다. 아침 출근길에 수다를 떨며 친구들과 떼지어 학교로 가는 아이들을 보면서 생동감이 넘치는 봄, 을 느껴봤다. 아, 그런데 이 세상은 아직 쌩긋 웃는 봄을 맞이할 때가 된 것은 아니었나보다.
귀에 이어폰을 꽂고 음악을 들으며 무심코 흥얼거리며 골목을 지나칠 때, 내 눈길을 잡아 끄는 꼬맹이들의 무리는 어딘가 그늘진 곳에서 짓밟히는 잡초같은 느낌이었다. 열명정도의 꼬맹이들. 내가 지나쳐가려 하니 좀 더 으슥한 곳으로 몰려가는 녀석들의 분위기가 심상치 않아 지나쳐 가다 다시 되돌아봤더니, 한 녀석이 주변을 살피느라 고개를 내밀었는데 나와 눈이 마주쳤다. 그때 나는 결단을 내렸어야 했다. 시덥잖은 어른행세를 하게 되는 것일지라도 나는 그녀석들에게 가서 '학교 가기 전에 회의하냐?'라는 한마디라도 했어야했다... 빨간 모자를 눌러쓰고 두리번 거리던 녀석과 마주친 눈이 자꾸 내 뒤통수를 때리는데 아무것도 하지 않고 그냥 스쳐버린 나는, 아마도 이기적인 어른이 된 것일게다. 뭐라 할 말이 없네.
주일에 성당에 가면 간혹 절대로 내 말을 듣지 않는 고등학생 녀석 하나를 만난다. 성당안으로 들어가자,는 내 말에 대꾸를 하지 않는 정도가 아니라 말없이 부르튼 입술만 손으로 뜯으며 버티는 모습을 보면 화가 치밀어 올라 '넌 선생님 말도 안듣니?'라고 내뱉고는 혼자 성당으로 들어가버리고 만다. '저 녀석은 내 영역밖이야. 내 말은 죽어라 안듣는데, 신경 끄는게 낫지'라고 말도 안되는 위안을 하고는 그녀석에 대한 생각은 잊어버린다. 그런데 얼마전 수녀님과 얘기를 하면서 알았다. 약간 정신적으로 장애가 있지만 그래도 얼마나 착한 애인지 모른다,는 얘기를 들으면서 나는 아무말도 하지 못했다. 순간적으로 내 입장에서만 그녀석을 바라봤고 내 감정을 못눌러 화를 내고 형편없는 녀석이라고 판단해버린 내가, 그런 내가 어떻게 아이들에게 '사랑'에 대해 가르칠 수 있단 말인가. 나를 지워버리고 싶었다.
말더듬이 자크의 이야기를 읽는 동안 자꾸만 떠오르는 녀석들이다. 도대체 나는 무슨 짓을 한거야?
말더듬이 자크는 유일한 친구 봉지하고만 막힘없이 더듬지도 않고 유창하게 자신의 생각을 말로 표현할 수 있다. 엄마 아빠를 사랑하지만 피곤에 지친 생기없는 엄마의 모습과 화를 내며 매질을 하는 아빠에 대한 두려움은 자크의 마음을 열어주지 못한다. 그래서 자크는 침대 밑에 들어가 자신만의 비밀 일기를 쓴다. 자크의 비밀일기와 친구 봉지와의 대화가 자크의 마음을 보여주는 유일한 것이다.
어른이 된 내가 바라보는 어린 자크의 모습이 아니라 오로지 자크의 마음을 표현한 이야기는 너무 마음이 아프게 느껴졌다. 하지만 나는 이미 자크를 이해할 수 있는 마음을 잃어버렸다. 거리에서 만난 아이들에게 아무런 관심도 주지 않았고, 착하게 인사를 하고 말을 듣고 싶지만 쉽게 행동하지 못하는 아이의 마음을 이해하지 못하고 버럭 화만 내 버리는 어른이 되어버렸다. 나는 말더듬이 자크처럼 이 세상을 향해 떠듬떠듬 자신을 내 보이려고 하는 아이들의 작은 몸짓을 무참히 밟아버리는 어른이 되어버렸다.
나는... 나도 어릴 적 내 마음과 내 생각과는 달리 말을 한마디도 못해 부모님께 선생님께 친구들에게 오해를 받고 외톨이라고 느낀적이 있었다. 나의 어린 시절이 자크의 이야기를 읽으며 조금씩 떠올랐다.
어떻게 내 마음을 말해야 하는지 몰랐던 나는 커서 말로 표현하지 못하는 마음을 알아 들을 수 있는 선생님이 되고 싶었었지. 그런데 지금 내 모습은 전혀 아니야. 그래서 더 슬퍼져버렸다. 자크의 이야기는 정말 나를 슬프게 했어.
자크를 따뜻하게 감싸주고 한없이 넓은 마음을 보여주는 마뉘선생님의 이야기가 나오자 너무 큰 감동이 느껴졌지만, 마음 한편으로 마뉘선생님처럼 되지 못한 내가 또 한없이 슬퍼지기도 했지.
작가 소르주 살랑동은 이 책을 '어린 시절을 아프게 보내어 어린 시절에 대해 추억할 것이 없는 사람들'이 읽으면 가장 좋을 것이라고 말했다는 인터뷰를 읽으니 또 마음 한켠이 무너지는 듯한 느낌이 들었지만 소르주 살랑동은 그렇게 하기 위해 어린시절 자신의 모습을 떠올리며 자크의 이야기를 끄집어 낸 것은 아닐 것이다.
그림자 친구의 존재, 추운 겨울 빨갛게 시린 발목이 드러나는 짧은 바지를 입고 날마다 같은 옷을 입어야 하는 가정환경, 말을 더듬어 친구들에게 따돌림 당하고 외톨이가 된 자크, 아무도 자크의 마음을 이해해주지 못하고.... 소르주 살랑동의 '말더듬이 자크'는 미화된 미사여구도 없이 어린 자크를 그대로 보여준다. '마침내 자크는 행복해졌습니다...'가 아니라 자크의 어린 시절은 그랬다,라는 말만 툭 내던져주고 있는 것이다. 눈물겹게 감동적이거나 극적인 희망이 보인다거나 모든 것이 다 좋아질 것이다,라는 일말의 해피엔딩조차 말하고 있지 않다. 그저 툭툭 끊어지는 듯한 표현으로 사실을 말해주고 있을뿐이다.
하지만 그래도 감동적이다. 마뉘선생님이 계시고, 폭력을 휘두르기는 하지만 사랑하는 아빠가 계시고, 사랑하는 엄마가 계시고, 좀처럼 말을 들어주려고 하지 않는 친구들이기는 하지만 따뜻함을 느낄 수 있는 친구가 있다고 말해주고 있으니까. 소르주 살랑동은 은근히 그렇게 마음을 표현하지 못하는 말더듬이 자크가 조금씩 세상을 향해 입을 열게 되리라는 것을 자크의 이야기 끄트머리에 보여주고 있다. 그래서 말더듬이 자크의 이야기는 감동적이다.
지금도 자신의 마음을 표현하지 못하는 수많은 아이들이 자신의 그림자 친구하고만 비밀대화를 나누고 있을지도 모른다. 나는 여전히 그 아이들의 표현없는 마음과 몸짓을 이해하지 못할 것이다. 하지만 인내심있게 지켜보며 노력하면서 마음이 보여주고 싶어하는 아이들의 말을 듣게 될지도 모른다는 희망을 가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