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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는 무엇으로 사는가 - 여자, 돈, 행복의 삼각관계
리즈 펄 지음, 부희령 옮김 / 여름언덕 / 2006년 12월
평점 :
절판
사실 이런 종류의 책을 좋아하지는 않는다. 더구나 나는 이미 이 책을 읽기 전부터 내 노후가 심히 걱정되어 강박적으로 저축을 하고 있고, 지금의 직장에서 평생고용인으로 생활할 수 없다는 것도 알기때문에 내 경제적 자립을 위해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라는 고민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그래서 그냥 술렁술렁 책을 넘기며, 이미 오래 전부터 여성은 경제적 자립을 위해, 자신의 행복을 위해 권리찾기를 시작하고 있고, 이 책은 그에 대한 뒷북같은 느낌이다, 라는 생각에만 빠져 있었다.
그런데 잠깐, 혹시 내 노후가 심히 걱정되었던 것은 내겐 백마 탄 왕자님이 오지 않을 것이라는 절망 상태에서 내가 기댈 왕자님이 없기때문은 아닐까? 라는 생각이 머릿속을 스치고 지나간다. 설마... 그런걸까?
책을 다 읽어갈즈음 갑자기 한 친구가 떠오르면서 이 책의 내용이 현실감있게 다가오기 시작했다. 함께 어울리던 친구들 중에 가장 먼저 취업을 했고, 우리가 겨우 대학을 졸업해 취업준비를 할 때 좋은 직장에서 화려한 경력을 갖고 경제력도 갖춘 신부감으로 선자리가 들어오던 친구였다.
그 친구에게는 - 본인은 그 사실을 부정했지만, 내가 보기에는 제조건을 빼고 사람 하나만을 본다면 사.랑.하는 사람이 있었다. 그렇지만 한창 좋은 조건을 가졌던 그 친구는 어딘지 어울리지 않는 부자청년을 사귀고 있었다. 내가 아는 친구와 그 부자청년은 결코 융합될 수 없는 그런 두 부류의 사람이었는데, 차마 그 느낌을 얘기하지 못했었다. 어쨌거나 친구가 좋아한다고 얘기를 하고 있었으니까.
그 친구와 좀 더 어울리는 그 사람을 만난 것은 그 부자청년을 만나보고 난 후였다. 친구와 만나기로 약속한 날, 한시간을 기다려도 오지 않길래 조금씩 걱정과 짜증이 밀려오던 시간에 낯선 청년이 친구의 이름을 말하면서 내게 다가왔다. 친구가 갑자기 교통사고 비슷한 사고에 휘말려 도저히 나를 만나러 올 수 없었고, 길 한복판에서 만나기로 했기에 연락조차 하기 힘들어지자 연락이 없으면 계속 자기를 기다리고 있을 내가 걱정이 되어 그 청년을 대신 보낸 것이었다. 사고 처리가 되면 올 것이라며 근처 찻집에 가서 친구를 기다리는 동안 청년의 얘기는 온통 친구에게로 향하는 것이었다. 순전히 내 느낌일지 모르겠지만, 나는 그 청년과 나중에 친구의 이야기를 듣고 두 사람이 서로에게 향하고 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친구는 그 사람과는 결혼할 수 없다, 라고 잘라 말했다. 그 이유는.. 아마 그때 사귀고 있다고 하는 '부자'청년때문이었겠지.
친구의 선택에 내가 결정적인 영향을 미칠만큼 확고한 생각과 판단이 있었던 것도 아니고, 친구의 가정 사정을 아는 나는 부자청년을 택하고 싶은 친구의 마음이 조금은 이해가 되기도 했기때문에 그저 시간이 흐르는대로 그냥 지켜만 봤다.
결국 친구는 몇년이 지난 후 전혀 다른 '부잣집' 아들과 결혼을 했다. 정말 좋은 조건의 집안이었고, (내가 생각하기에 친구가) 사랑하는 사람과 결혼을 못한다면 '부잣집'에라도 시집을 가 편하게 생활하면 그나마 친구의 입장에서 맘이 편한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애기를 낳고 잘 살고 있다고 생각하던 어느날, 만나게 된 친구는 '이혼'을 생각하고 있었다. 친구의 남편은 단지 '부잣집' 아들이었을뿐이었던 것이다. 결혼할 때 남편의 얘기만 믿고 남편의 명의로 된 카드빚도 갚아줬고 사업을 시작하려고 하는데 부모님께 돈을 받는 것이 시간이 좀 걸린다고 하는 말을 의심조차 하지 않고 그동안 저축하여 모은돈과 축의금으로 받은 돈까지 싸그리 남편에게로 들어가게 되었다고한다. 그 후 얼마되지 않아 사업을 말아먹고 집에서 놀기 시작하는 남편과, 자신의 아들이 한 짓은 생각하지도 않고 며느리때문에 자식 망쳤다는 시부모 밑에서 친구는 시름시름 앓기 시작했다고 한다. 아기 분유값도 없어서 울며 친정에 가서 분유값을 받아 올때도 남편은 부자인 부모님 집에 가서 기름진 밥을 먹고 돌아와서 친구에게 궁상떤다,는 얘기를 했다고 하니 병이 안날 수 없지 않겠는가.
지역에서 알아주는 부잣집이라고 소문이 났지만, 돈 한푼없는 며느리에게 더 이상 애정을 베풀 사람들이 아니었기에 친구는 쫓겨나다시피 이혼을 하고 나왔다.
상대방 집안의 좋은 조건을 보고 결혼을 한 잘못이라면 어린 나이에 겪어야 했던 친구의 그 경험은 잘못의 댓가치고는 너무나 컸고, 또 너무나 마음 아픈 얘기였다.
친구의 얘기를 이렇게 장황하고 길게 늘어놓은 이유는 그런것이다. 돈 문제에 관해서 정확히 얘기를 하고 자신의 주장을 하는 것이 배우자에 대한 신뢰가 없다거나 행복하지 않다거나 하는 문제와는 별개의 것이라는 것. 밑도 끝도 없이 '믿는다'는 추상적인 개념은 오히려 불행을 초래할 수도 있다는 것이다. 사실 친구도 남편의 집안이 부자인것만을 믿고 자신의 모든 돈을 아낌없이 남편에게 쏟아부은 것이 재앙을 초래한 것 아닌가. 부잣집 아들이니까 경제적 뒷받침이 될 것이라는 막연한 믿음때문에 친구는 돈 한푼 없이 이혼녀,로 생활을 해야만 했던 것이다.
하지만 다행히 친구는 결혼 전 직장의 인맥을 통해 다시 직업을 얻었고, '이혼녀'라는 쓸데없는 접두사와는 상관없이 좋은 중매가 계속 들어와 조금씩 굳건히 자신의 두 발로 생활을 해 나가고 있다.
이 책에서 얘기하고자 하는 것이 무엇인지는 책을 술렁술렁 읽어버려 명확히 알아채지 못했지만, 친구가 겪은 경험이야기에서 막연히 자신을 부양해 줄 백마 탄 왕자님을 기다리고 있는 여자들에게 주는 교훈을 얻을 수 있으리라.
책 말미에 나온 마크 트웨인의 말처럼 '행복은 원하는 것을 얻는 것이 아니라 가지고 있는 것을 원하는 것'이라는 말을 새겨보면서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