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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라하의 소녀시대 ㅣ 지식여행자 1
요네하라 마리 지음, 이현진 옮김 / 마음산책 / 2006년 11월
평점 :
이 책을 읽으며 '논픽션이야'라는 확고한 생각이 없었다면 나는 정말 멋진 소설 한 권을 읽었다는 생각을 했을지도 모른다. 60년대의 프라하도 낯설었지만, 그곳에서 소녀시절을 보낸 일본인 소녀도 낯설었다. 하지만 운명의 소용돌이에 휘말리는 소설 속 주인공처럼 역사속에서 삶이 변해간 소녀시절 친구들의 이야기는 낯선 듯 하면서도 어딘지 익숙하였다. 인간의 역사란 개개인의 삶과 무관하게 흘러가는 것이 아니기 때문일까...?
누구에게나 '소녀시절'은 특별하지만 프라하에서 소녀시절을 보낸 요네하라 마리와 그녀의 친구들의 삶은 더 특별하게 다가온다.
"확실히, 사회의 변동에 제 운명이 놀아나는 일은 없었어요. 그것을 행복이라고 부른다면 행복은 저처럼 사물에 통찰이 얕은, 남에 대한 상상력이 부족한 인간을 만들기 쉬운가봐요"
"단순히 경험의 차이겠죠. 인간은 자기의 경험을 토대로 상상력을 발휘하니까요...." (145)
이 책은 읽는 이에 따라 아주 다른 느낌으로 다가 올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프라하에서의 친구를 찾기 위한 여행에서 그녀의 가이드였던 청년과의 대화는 내가 생각하고 있는 것을 집어내는 듯 했다.
소녀시절의 친구를 찾아가는 여행에서 친구의 우정을 더 크게 볼 수도 있고, 그들 각자의 삶이 사회의 변화와 크게는 역사의 흐름속에서 어떻게 바뀌어가는가를 볼 수도, 그 시대를 살아간 한 소녀를 통해 역사를 다시 느낄 수도, 거짓과 진실이 엉겨있는 사회주의 국가에서의 삶을 다시 생각해 볼 수도 있다. 그리고 나처럼 동유럽과 중유럽에 대한 아무런 생각이 없었던 사람에게 새삼스러운 그들의 인종차별을 생각해 볼 수도 있을 것이고 보스니아 내전에 대한 가톨릭적 시각만으로 바라봤었던 나 자신의 편협함을 새삼 부끄러워할수도 있을 것이다. 사실 그 당시 신문도 열심히 읽으며 그들의 역사를 알아보려고 했지만 역시 내 시각의 한계는 어쩔 수 없었나보다.
이 책에는 그만큼 많은 이야기를 담고 있다. 커다란 이야기의 중심은 소녀시절 공산당원인 아빠를 따라 프라하로 간 일본인 마리가 그곳에서 만난 친구들과의 추억을 떠올리며 그 시절의 친구들을 찾는다는 것이지만 그 여정속에는 소녀들의 우정뿐 아니라 역사의 흐름속에 놓여진 개개인의 운명적인 삶의 모습이 그려져 있다. 혁명과 국가와 민족, 사회주의.... 인간관계, 우정... 이 모든 것이 한 소녀의 시선으로 바라보고 있지만 그 소녀의 시선을 따라 가다보면 많은 생각에 잠겨 있는 나를 발견하게 되기도 했다.
아, 물론 내게 특별한 '나의 소녀시절' 을 떠올리며 친구들을 추억하는 내 모습도 있다..
단숨에 읽고 넘겨버릴 내용은 아니지만, 이 책은 단숨에 읽혀버린다. 소설보다 더 소설처럼 진행되는 이야기를 두고 다른 일을 할 수가 없는 것이다.
어쩌면 정말 단순하게 '경험의 차이'로 이 책의 흥미로움이 다를 수 있겠지만 그렇기때문에 누구나 흥미롭게 이 책을 읽을 수 있을것이라 생각할 수 있다. 기회가 된다면 놓치지 말고 이 책을 읽어보시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