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에서 숲을 보다 - 리처드 포티의 생태 관찰 기록
리처드 포티 지음, 조은영 옮김 / 소소의책 / 2018년 4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인생이란 무엇일까, 근심에 찌들어, 가던 길 멈춰서서 바라볼 시간도 없다면.

양이나 젖소들처럼 오래오래 나무 아래 서서 응시할 틈이 없다면.

 

위 글은 책에서 저자가 인용한 윌리엄 헤닐 데이비스의 시 '여유'의 일부다. 숲길에서 이어폰을 끼고 숲속을 쌩하니 달려가던 사람을 보면서 조용히 그녀를 멈춰세워 '잠깐만 주위를 한번 둘러봐요'라고 말하고 싶은 충동과 싸웠다는 저자의 이야기는 백만배 공감할수밖에 없었다. 이 책을 읽은 후에는 더욱더.

 

숲과 나무 이야기를 좋아해서 기회가 되면 생태환경에 대한 이야기에서부터 식물이야기, 숲 속 생활이야기까지 많은 책을 읽으려고 한다. 그런데 그 많은 책들 중에서도 '나무에서 숲을 보다'는 뭔가 조금 다르다는 느낌이 든다. 다들 자신의 전문 분야인 식물이나 생물에 대한 관찰이야기를 하거나 숲 속에서의 미니멀라이프를 지향하며 철학적 사색에 잠겨들거나 하는 - 아, 물론 그 생활속에서도 숲속의 관찰 이야기는 지속되곤 했다. 아무튼 그런 이야기가 많았는데 매매로 나온 숲을 사들인 고생물학자의 숲 관찰일지는 상당히 독특한 느낌이었다. 땅덩어리가 넓은 미국의 오지로 들어가는 느낌이 드는 그런 숲 속 생활이 아니라 왠지 우리의 조금 깊은 산골짜기에서 생활을 하는 노과학자의 일상 이야기 같은 느낌도 있어서 너무 좋았다. 숲에서 철마나 나는 나물을 뜯어다 찬으로 먹는 것뿐아니라 술도 담그는 모습이 너무 정겨운 것이다.

처음 읽을 때는 그런 느낌으로 읽기 시작했는데 뜻밖에도 이 책에는 그런 일상의 정겨운 모습뿐만 아니라 숲을 구성하는 동식물의 변화와 시간안에 담겨있는 역사를 인문학적으로 풀어내기도 하고, 역사의 이야기 속에서 숲의 역사를 풀어내고 있기도 했다. 그냥 가볍게 술렁거리며 한번 읽고넘길 책은 아니라는 말을 하고 싶은 것이다.

 

이야기는 저자가 은퇴를 하고 너도밤나무-블루벨 숲, 그림다이크 숲을 구입하여 숲에 사는 동식물을 기록하고 숲이 풍기는 분위기와 계절에 따른 변화를 기록하는 프로젝트에서 시작된다. 그래서 이야기의 구성은 매월로 되어있다. 그리고 첫장부터 저자는 자신의 기록이 숲의 역사뿐만 아니라 자연과 인간의 역사를 담은 이야기가 될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 이때까지만 해도 그냥 그런가, 하며 넘겼었는데 책을 다 읽고 다시 앞장을 살펴보니 저자는 이 이야기의 내용을 미리 잘 설명해두었다는 것을 알수있게 되었다. 아, 좀 더 진중하게 천천히 잘 읽었다면 더 좋았을텐데.

 

책을 읽기시작하면서 가장 먼저 떠오른 것은 요즘 티비에서 방송하는 '숲 속의 작은 집'이라는 프로그램이다. 미니멀라이프를 지향하며 자발적 고립생활을 하는 연예인의 일상을 보여주고 있는데, 하루하루의 일상도 흥미로웠지만 내게 더 흥미로운 것은 그 집을 둘러싸고 있는 자연환경이었다. 내게도 익숙한 듯 하지만 조금은 낯선 그런 숲 속의 생활은 1년 내내 살아보라고 하면 어떨지 모르겠지만 우선은 부러움이 넘친다. 물론 도시에서 생활하고 있다지만 아침에 새소리에 잠을 깨기도 하고, 뜬금없이 한낮에 까마귀가 울기도 하고, 손바닥만한 마당에는 철마다 성장을 보여주고 꽃을 피우고.. 겨우내 죽어있는 듯 보이던 식물들이 봄의 기운을 받으면 흙밭을 온통 파릇파릇한 새싹으로 뒤덮는 모습을 보기도 해서 조금은 위안이되기도 하지만.

이 변화무쌍한 영국의 그림다이크 숲 속의 열두달 일지는 나도 일년만 숲 속 생활을 해 보고 싶다,라는 설레임의 열망을 느끼게 하고 있다.

 

"계절의 바퀴는 돌고 또 돈다. 시간을 초월한 가운데에서도 숲에서 역사가 건드리지 않은 것은 아무것도 없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이 고대의 대지는 인간에 대한 쓸모와 불가분하게 뒤얽혀 있고, 조림造林이나 청설모 못지않게 경제적인 필요가 숲의 모양을 일구어 왔다. 심지어 대기까지 멀리서부터 미묘한 영향력을 싣고 온다. 기후변화가 가속화된다면 결국 너도밤나무의 오랜 지배도 끝날 것이다....... 영원한 것은 없다는 사실을 받아들여야 한다. 역사가 깊은 이 숲까지도."(359)

 

그래도 지금 현재 숲이 그 모습을 간직하고 있는 동안에는 숲의 역사와 함께 하고 싶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5)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