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나랑 놀아 줄래? ㅣ 작은거인 낱말그림책 1
조은수 지음 / 국민서관 / 1999년 12월
평점 :
절판
국민서관 작은거인 시리즈를 쭈욱 모으다 보니 품절로 못 샀던 1권이 영 아쉬웠다.
이미 딸아이는 글자놀이 그림책 단계로 넘어갔지만,
결국 미련을 못 버리고 "나랑 놀아 줄래?"를 사게 되었다.
기꺼이 알라딘 DB를 수정해준 국민서관 및 알라딘 편집부에게 그저 고마울 뿐이다.
그런데...
이젠 제법 혼자서 책을 읽겠다고 설치는 딸아이를 대견하다 머리 쓰다듬어주면서도...
막상 나는 쓸쓸했다.
뱃속에서 꼬물대던 기억이 엊그제 같은데, 나 몰래 훌쩍 커버린 거 같은 딸아이 때문만은 아니다.
나랑 놀아줄 이를 찾기조차 애당초 포기하고 툇마루 구석에 쪼그리고 앉아,
새앙쥐가 장미도 갉아먹을까 아닐까 우두커니 보던 꼬마아이가 선명하게 떠오르기 때문이다.
부모님은 장사 나가시고, 오빠들은 학교 나가고,
서울에서 야간학교 다니게 해주는 대신 우리 집안살림과 애보기를 맡아야 했던 사촌언니와
하루종일 단둘이 집을 지키던 기억.
장난감도 없고, 책도 없던 그 시절, 이빠진 그릇조차 당당한 살림으로 대접받던 시절이기에,
코찔찔이 여자아이가 집에서 가지고 놀 것은 아무 것도 없었다.
지금이야 밀가루 반죽으로 재밌게 놀아요 어쩌구 저쩌구 당당히 기사도 나지만,
입에 들어가야 할 귀한 곡식가루를 조금 흘리기라도 하면 천벌받을 짓이었고,
벽지로 쓰일지 화장지로 쓰일지 모를 신문지는 판판하게 펴서 모아놔야지
귀퉁이라도 찢거나, 복판에 낙서를 하는 거나, 하다못해 구기기라도 하면 매맞을 짓이었다.
"밀가루 반죽아, 나랑 놀아줄래?"
"안 돼, 난 몸을 동그랗게 말고 있어야 하거든."
"주전자야, 나랑 놀아 줄래?"
"안 돼, 물을 흘릴지도 몰라."
"신문지야, 나랑 놀아 줄래?"
"안 돼. 구겨지면 모두 날 싫어해."
"수건아, 나랑 놀아 줄래?"
"안 돼. 나는 얌전히 걸려 있어야 하거든."
놀거리를 찾는 아이에게 쏟아지는 어른들의 잔소리. 잔뜩 움츠려든 꼬마 아이는
골방 가시나 소리 들을 정도로 집안 구석에 틀어박혀 가만히 앉아있는 거만 할 줄 알았다.
해맑은 그림책인데도 가슴 한 구석이 먹먹해지는 건 그 모든 기억이 오버랩되기 때문이다.
대문밖 쓰레기통 옆에 버려진 곰인형을 찾아내고,
드디어 놀아줄 친구를 찾아냈다고 행복해하며,
양면 가득히 펼쳐지는 하늘 높이 곰인형을 치켜들고 활짝 웃는 아해의 얼굴로 그림책은 끝나지만,
그마저도 애닮게 여겨지는 마음이라니.
딸아이에게 글자 배워주는 고마운 책일 뿐 아니라,
이 탄탄한 이야기와 그림 구조가 더 없이 고마워진다.
* 작은 거인 읽기 시리즈의 1단계 낱말 그림책 중에서도 첫번째입니다.
부엌에서 만나는 단어 - 달걀, 감자, 호박, 주전자, 컵, 접시
거실에서 만나는 단어 - 열쇠, 전화, 신문
화장실에서 만나는 단어 - 수건, 비누, 치약, 칫솔
마당에서 만나는 단어 - 지렁이, 달팽이, 개미, 애벌레, 나비, 꽃
집 앞에서 만나는 단어 - 창문, 계단, 대문
등으로 구성되어 있어, 아이가 매일 같이 만나는 작은 세계의 낱말을 배울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