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에 성서공단이 전부 들어서기 전, 아직은 태반이 사과 과수원이던 시절 내가 태어났다. 초등학교에 들어가기 전까지는 대구 능금을 열심히 먹었고, 국민학교 1학년 때 과수원이 거의 다 헐리게 되었을 때, 서울 집에도 대구에서 가져온 나무 한 그루를 심었더랬다. 안타깝게도 '흙과 날씨가 달라' 단 한 해도 열매는 열리지 않았다.

초등학교를 졸업할 무렵에는 이미 대구 사과는 씨가 말랐고, 성주나 영천 사과가 대구 능금 이름을 달고 팔렸다. 대학교를 다닐 무렵에는 청송이나 상주 사과가 유명해졌고, 청송과 안동으로 농활 다니면서 사과와 수박을 실컷 먹었더랬다.

정확히 언제인지는 모르겠지만 작은 애를 낳을 무렵 문경 사과축제가 시작되었던 것 같다. 동료들이 축제 다녀온 자랑을 늘어놓을 때마다 가보고 싶었지만 갓난쟁이를 데리고 갈 엄두가 안 나고, 매해 이 핑계 저 핑계 미루기만 하다 보니 작은애가 고3이 되었다. 

지금은 충주사과를 가장 즐겨 먹는다. 사과를 제일 좋아하는 손자를 위해 충북에 사는 시부모님이 즐겨 선물주시기도 하지만, 나도 과일가게를 가면 충주사과를 고른다.  

오늘 옆자리 동료가 경남 산지의 사과를 샀는데 싱싱하기만 하고 싱겁다는 얘기를 하길래, 요새 누가 경상도 사과를 먹냐고, 충주 사과가 맛있다고 추천을 하다가 문득 어라? 싶었다.

지도를 열고 사과 산지를 찍다 보니 이것도 지구 온난화의 영향이지 싶다. 나의 손주는 북한 사과를 먹게 될까 싶어 갑자기 통일을 염원하게 된다면 주책이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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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제 악담해서 미안해. 경황없고 미안한 마음이 정제되지 않고 비뚜른 길을 가버렸네.
근데 나만 그런 거 아니야. 이모씨도 박모씨도 송모씨도 정모씨도 다 비슷한 마음이었다더라.
니가 떠난 자리에 참 많이들 모였다고? 계좌이체 부조는 받지 않겠다는 너의 유언에 허둥지둥 모여든 사람들이, 결국 이게 너의 큰 그림이었다고 입 모으더라. 어제는 옆지기와 통화하다 줄줄이 넘겨주는 손 덕분에 많은 이들의 목소리를 들었다. 뭐가 그리 바쁘다고 5년, 10년을 연락 못 하고 지냈던 사람들이었는데 말이지. 이걸 너 덕분이라고 해야 하나...
지금은 발인 끝나고 화장장이겠구나. 너는 훨훨 이렇게 떠나가네. 이 생에 너에게 갚지 못한 신세는 빚으로 짊어지고 살아갈게. 니 독야청청 고집스런 유언을 지키겠다고 끝내 계좌번호 공개를 거부한 니 마누라는 애들도 잘 키울 거야. 잘 가라 친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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넌 뭐가 그렇게 잘났냐?

왜 혼자 그리 입 다물고 감내하는 거냐고?

그냥 말해줬으면 지난 2월 부산에 갔을 때 널 볼 수 있었잖아.

영정 사진 대신 니가 숨기려고 했던 그 얼굴을 볼 수도 있었던 거잖아.

이렇게 뒤통수를 쳐버리면, 

몇 년을 못 본 널 이렇게 허망하게 보내야 하는 우린,

날벼락 같은 소식에도 쫓아내려가 보지도 않고,

화장실에서 잠깐 울고 일 하는 척 해야 하는 난,

이제 어떤 표정을 하고 널 기억해야 하는 거니.


나쁜 새끼...


잘 가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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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인 2023-04-18 15: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넌 진짜 나쁜 새끼야. 계좌 번호도 공개 안 하기로 했다고? 니 자식이 3명이야. 남은 사람은 어쩌라고 혼자 독야청청하면 다냐?
너에게 가보지도 못 하는 나는 우리 우정을, 슬픔을, 부조로밖에 표현할 수 없는데, 그거마저 막겠다고? 너무 한다. 진짜. 우리 보고 어쩌라고 이리 철벽을 치냐.

조선인 2023-04-18 16: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남편만 혼자 너에게 갔다. 따로 부조도 못 하고 남편에게 대신 송금한 난... 너에게 의절당한 기분이야... 나쁜 놈...
 














<어려서부터 취향인 것>

인테리어 - 책, 그림 액자

남자 - 동네 똘똘한 아저씨(좀 더 솔직해지자면 전원일기 둘쨰 아들 용식이)

여자 - 외유내강형

음악 - 산울림, 핑크 플로이드

여행 - 코스를 짜서 걷기

나무 - 은사리나무(은사시나무)

향기 - 비 온 다음의 흙/풀/나무냄새

숫자 - 11 또는 51

색깔 - 청먹색 또는 dark midnight blue 또는 #313a61

음식 - 각종 나물, 오그락지, 떡볶이, 가래떡

채소 - 당근

커피 - 동서 맥심 오리지날 아이스커피

계란요리 - 완숙 프라이 (over easy)

옷 - 터틀넥, 바지

가방 - 가볍고 주머니 많은 천 배낭


<20대에 길러진 취향>

악세서리 - 온갖 종류의 귀걸이와 해골 반지

나무 - 감나무

사랑 - 믿음과 존중, 함께 늙어 가는 것

일 - 계획을 세우고 분업을 시키고 완성! 그 다음엔 수납

음악 - 스피드멜로디 락, 고딕 락, 아트 락

취미 - 재봉, 계획 세우기, 연극 관람

영화 - 인간 드라마(후라이드 그린 토마토, 인생은 아름다워)

위치/자리 - 실내 전체를 조망할 수 있는 모서리

음식 - 골뱅이, 회

채소 - 풋고추

커피 - 블루마운틴 사이판 커피

음료 - 녹차, 감잎차, 한방차, 수정과


<나이가 들며 생겨난 취향>
음악 - 극적이고 풍부한 음악
        (카운터테너, 아리아, 그레고리성가, 악동뮤지션, 김준수, 고영열, 이승훈, 카디, 김주리) 
나무 - 소나무, 전나무, 잣나무
음식 - 쌀국수
커피 - 만델링 드립커피

술 - 맥주(그러나 한 캔)

물 - 대추/결명자/느릅나무 달인 물, 삼다수

음료 - 보이차, 동원 보성녹차, 닥터페퍼


<세월에 의해 바뀌는 취향>

신발 - 워커 -> 트래킹화

수집 - 책, CD -> 안 사기 위해 노력하는 중


뱀꼬리) 하루의 취향은 나의 취향을 알기 위해 굳이 읽을 필요는 없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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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요일 아침 주말을 핑계 삼아 늦잠을 자고 싶어도 어김없이 5시가 좀 넘어 잠이 깼다. 주중에도 6시 45분 자명종을 맞추는 보람 없이 늘 이 시간에 일어났고, 평소와 똑같은 아침이려니 했다. 주말에 일찍 일어나면 참 괴롭다. 평일에는 1시간 정도만 멍 때리고 있으면 남편 역시 출근 준비하느라 일어나는데, 주말에는 남편 역시 곤한 늦잠을 자는 지라 숨 죽이고 서너 시간을 누워서 버티기 쉽지 않다. 어쩔 수 없이 휴대폰을 챙기고 따뜻한 침대를 나와 식탁에 앉았다. 오늘따라 머리가 아프고 무거워 손가락으로 꾹꾹 지압을 하는데, 어라 뭔가 머리에 잔뜩 달린 기분이다. 침대 머리맡에 둔 소소한 장식품 중 하나가 머리카락에 엉켰나 보다 생각하며 마루 화장실에 가 거울을 봤다.

흐음...

머리 위에는 손바닥만한 식물이 있는 것처럼 보인다. 머리카락을 헤쳐보니 꼭 내 머리 속에서 자라난 것처럼 보인다. 잎사귀를 하나 뜯어 잎맥따라 갈기갈기 찢어보니 심지어 살아있는 식물이다. 뭐지? 뭐지? 뭐지?

가설 1. 어젯밤 내가 잠들기 전까지 강남에서 술 먹고 있었던 딸이 누군가에게 식물 한 포기를 선물받았고, 이것을 잠든 내 머리맡에 두었는데 잠결에 하필 내 머리에 박혔다? 빼볼까? 슬쩍 잡아당겨 보려니 풀이라기 보다는 어린 나무마냥 제법 딱딱한 줄기를 가진 그것은 빠질 기색도 없고, 통증만 유발햇다. 몹시 깊이 박힌 걸까? 그런데도 내가 세상 모르고 잠만 잤다고??? 화장실에 들어온 김에 볼 일을 보고 나와 부엌으로 가 도로 의자에 앉았다.

가설 2. 잠이 덜 깼다. 혹은 어제 자기 전에 먹은 알레르기약 때문에 잠시 환각을 겪는 거다. 정신을 차리자. 잔 하나 가득 물을 따르고 일주일 약통 중 토요일 칸을 열어 혈압약과 루테인, 코엔자임, 밀크씨슬만 골랐다. 알레르기약이 원인일 수 있으니 오늘 아침은 건너뛰는 게 좋겠지. 물 한 모금에 4알을 꿀꺽 삼키고, 나머지 물을 한 모금 잠시 머물고 있다 넘기고 잠시 혀로 입 안을 자극하고, 또 한 모금을 그렇게, 또 한 모금도. 어려서 외할머니가 시키던 아침 물 한잔의 건강법을 오십이 넘었다고 나도 따라하고 있다. 한참만에 물 한 잔을 다 마신 뒤 잠시 눈을 감고 상하좌우 눈알굴리기 운동도 한참 한 뒤, 마침내 마음을 다잡고 다시 화장실에 갔다. 어라? 그새 줄기가 더 높이 솟아 보인다. 손으로 대중해보니 한 뼘이 넘는다. 확실히 아까보다 더 자랐다. 

가설 3. 인정을 해야 하나. 내 머리에 살아있는 식물이 '살고' 있다. 사진을 찍어 구글 이미지 검색을 해보니 애플망고나무인 거 같다. 코로나 전 마지막 여행이었던 베트남에서 먹었던 기억이 있다. 그게 내 머리에서 자란다고? 혹시 씨를 삼켰다고 해도, 해외토픽처럼 위나 창자나 간처럼 소화기에서 싹이 틀 수도 있겠지만, 머리라고? 이 가설은 폐기다.

가설 4. 어제 퇴근길 어딘가에서 애플망고씨가 날라와 하필 내 머리에서 발아했다. 애플망고 씨앗 키우기로 검색해보니 세상에. 망고나 애플망고를 사 먹은 뒤 과육의 씨앗을 가지고 화분으로 키우는 사람이 생각보다 많다. 집에 단 한 개의 화분도 없고, 기껏 선물 받아도 일년 내에 확실히 죽여버리는 나로서는 경이로운 황금손들이다. 어쨌든 덕분에 애플망고 씨앗 크기를 확인해보니 크기가 엄지 손가락 만하고 발아하여 화분에 뿌리를 내리기까지 못 해도 10일 이상의 시간이 소요한다. 매일 머리를 감는데 그걸 열흘이 넘게 눈치 못 챘다는 게 말이 안 된다. 그럼 애플망고가 아닌 걸까? 다시 사진을 찍어 이미지 검색을 해보려는데 그새 더 자랐다. 재봉틀 책상에서 줄자를 가져와 재보니 30cm도 넘는다. 아까 검색해봤을 때는 긴가 민가 했는데, 이제는 애플망고라는 게 확연히 구별되는 상황이다.

가설 5. 이제 진짜 인정해야 하나. 난 지금 환시를 보고 있고, 심지어 그걸 만지고 느낄 수가 있다. 치매인 걸까. 미친 걸까. 약물에 중독된 걸까. 어느 쪽이든 병원에 가봐야 진단이 나올 수 있겠지. 남편을 깨웠다. 눈도 못 뜨고 '몇 신데? 왜?"를 중얼거리는 남편을 억지로 흔들어 내 머리를 보게 하니 경악을 한다. 남편 눈에도 보이고 남편 손에도 만져진다. 남편의 성화에 일어난 애들도 이걸 눈으로 보고 손으로 만질 수 있다. 가족들이 모두 어쩔 줄 모르고 난리다. 남편은 울기 시작했고, 딸이랑 아들은 폭풍검색을 하며 서로 싸운다.

가설 6. 우리 가족이 모두 집단환각에 시달린다면 가스 누출? 인덕션렌지를 쓰니 기각. 집단 약물중독? 어제는 나도, 남편도 야근을 햇고, 딸은 약속이 있었고, 아들은 학원에서 저녁을 먹었다. 집에서 아침을 먹는 건 나뿐이고, 점심은 당연히 다 따로 밖에서 먹었다. 식구들이 같이 먹는 건 대추와 느릎나무와 둥글레와 결명자를 넣어 끓인 물. 이 물이 오염되어 있었던 걸까?

가설 7. 일단 다 같이 병원에 가는 것으로 가족들을 설득하고 119에 전화했다. 그냥 머리가 너무 아픈데 거동이 불가능하다고만 했다. 그새 1m에 육박할 만큼 자란 식물의 잎사귀가 천장을 스치는 지경이라 택시나 버스를 타는 게 불가능했지만, 사실대로 말하면 안 믿을 거라 판단했기 때문이다. 식물의 밑동을 잘라내볼까 싶었지만, 단단한 몸체엔 칼이 잘 들지도 않았다. 이제 온 가족이 환각에 시달리고 있는 게 아니라는 확신이 들기 시작한다. 식물을 온전히 보존해 가는 것이 의학적 조치든, 과학적 연구에 도움이 될 거 같다. 난 식물의 중력을 감당하기 어려워 마룻바닥에 누워 119를 기다리는 중이다. 이건 실제 상황인 거다. 내 머리에는 애플망고나무가 자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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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인 2023-01-09 10:3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어제 아들래미 친구 엄마들과 만나 수다를 떨다가 한 엄마가 MBTI와 같은 성격검사를 받은 이야기를 했다. 가장 기억나는 질문이 ‘어느날 갑자기 내 머리에 애플망고나무가 자라면 어떻게 하겠는가? ‘나는‘으로 시작하는 한 문장을 대야 하는 질문이었다.
A: 나는 이상하고 신기하고 재밌다.
B: 나는 애플망고 나무를 열심히 키워봐야겠다.
C: 나는 자급자족이 가능하게 되어 신나고 행복하다.
D: 나는 병원에 가야겠다.
난 D였다.

조선인 2023-01-09 10:3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집에 와서 가족들에게도 동일한 질문을 던졌다.
남편: 나는 시체가 되었구나... 죽었구나...
딸: 나는 참 맛있겠다.
아들: 나는 애플망고 유튜버가 되어 떼돈을 벌겠다. 유명해지겠지?

꼬마요정 2023-01-09 11: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조선인님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가족분들 대답 너무 재밌습니다.
저는 이런 답이 떠오르네요?
머리에 나무가 자라다니, 울집 냥이들 장난감이 생겼네? 신나하겠군 ㅋㅋㅋ

예전에 전래동화에서 봤어요. 머리에 나무가 자라서 나무를 뽑았더니 머리가 움푹 패여서 비 오는 날 빗물이 고였는데, 비를 타고 내려온 미꾸라지가 거기 살았다는... 일본 전래동화였던 것 같은데 갑자기 그 이야기가 떠오릅니다. 재밌는 질문이에요^^

감은빛 2023-01-09 11: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글 정말 재미있네요.
자급자족이 가능한 삶이 되신 걸 축하드립니다.
아, 매일 애플망고만 드실 수는 없으니, 주위에 다른 과일이 머리에서 자라는 지인 분을 두시고 서로 나눠드시면 좋을 것 같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