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태양이 따사로운 날이었다. 와합 마을과 지단 마을의 경계 근처에 있는 이젠 폐가가 된 건물 앞에서 떠오른 태양 아래 지브릴과 자밀라가 있었다. 지브릴은 더도 말고 덜도 말고 오늘만 같은 날이면 되지 않을까 바랬다. 하지만 자밀라는 의견이 달랐다. 그녀는 굳이 와합 마을을 떠나 멀고 먼 사우디아라비아까지 도망가자며 지브릴을 설득하고 있었다. 아니 날 좋은 오늘뿐만이 아니라 흐린 날도 비오는 날도 이곳에서는 드물게 번개가 치는 날까지도 그런 설득을 멈추지 않았다. 지브릴은 처음엔 망설였지만 자밀라가 이렇게 말하던 날 그만 설득 당하고 말았다.


-지브릴 너 지참금은 있는 거야?


-조금만 더 모으면 아브라힘 어르신께서 말씀하시는 적정선이 되지 않을까 싶어.


-우리 아빠 욕심을 니가 충족 시킬 수 있을 것 같아? 그분이 말하는 적정선이라는 건 니가 벌어올 수 없는 정도의 지참금을 말하는 거야. 넌 나 없이도 잘 살아가겠지? 그러니까 이러는 거지? 


그녀의 말에 지브릴은 설득 당할 수밖에 없었다. 태어나 처음 바라본 가장 아름다운 여인이 지브릴에겐 그녀였다. 이젠 자밀라 없는 내일을 생각할 수도 없을 것만 같았다. 게다가 이미 두 사람은 손까지 잡지 않았던가? 마을 사람들에게 들킨다면 이미 입맞춤까지 한 것으로 오해받고 자밀라는 그녀 아버지의 손이나 친척들의 손에 죽임을 당할 수도 있는 상황이다. 지브릴은 자밀라와 이젠 돌이킬 수 없는 선을 넘은 거라고 생각했다. 그녀와 함께 새로운 시작을 위해 사우디로 떠나야 한다. 그래야만 한다. 지브릴은 그녀의 말이 아니었어도 매일을 그렇게 자신을 설득하고 있었다.


-지브릴 우리에겐 새로운 날이 기다리고 있어. 너와 내가 함께라면 우리는 곧 새로운 날을 맞이할 거야.


지브릴은 당연히 그렇게 되어야지 하면서도 자꾸만 알 수 없는 두려움이 밀려왔다. 


=새로운 날이 꼭 필요할까? 오늘 같기만 하면 되는 거 아닐까?


이런 생각은 늘 망설임을 불러들였고 그 망설임은 두려움이 원인인 것이 확실했다. 하지만 지브릴로서는 두려움의 근거가 무언지 짐작되지 않았다. 


-여기서 지금 뭐하고 있는 거예요. 


마을 일이면 큰일이던 작은 일이던 빠지지 않고 알리고 다니는 하싼이란 소년이 그들을 향해 달려오면서 다급히 소리쳤다. 


-아! 지단 마을 놈들이 무슨 꿍꿍인지 흔적도 안 보이기에 무슨 일인가 알아보려고 나왔어.


-지금이야 당연히 여기에 사람들이 보이지 않겠죠. 모두 와합과 지단의 경계로에 다들 모여있으니까요. 


-왜? 무슨 일인데..?


-그게.. 말로 듣는 것보단 얼른 가보는 게 빨라요.


자밀라는 히잡을 다시 매무새를 고쳐 쓰고는 하싼과 지브릴을 조금 거리를 두고 뒤따랐다.



2


와합과 지단의 경계로에 다다르자 압둘라 씨의 딸 라니아와 지단 마을 카림이 두손을 뒤로 묶이고 무릎을 꿇고 앉아 있었다. 와합 마을 사람들과 지단 마을 사람들이 각각 모여 그들에게 조금 떨어져 둘러싸고 있었다.


-이게 무슨 일이죠? 


지브릴이 압둘라 씨에게 물었다. 압둘라 씨는 설명하기 난감한 표정으로 고개를 젓다가 돌아섰고 라니아의 오빠 무자히드가 나섰다.


-라니아와 카림이 두 마을의 경계에서 손을 잡고 있다가 내 눈에 띄었네. 나는 라니아를 죽이고 그만 그것으로 끝내려고 했는데 마침 슬레이만 씨와 마주쳐서 그분이 시아파 남자와 통정한 것은 그저 여자 한 명만 죽인다고 해결될 문제가 아니라고 하셔서 일이 좀 커지게 됐어.


무자히드는 그다지 신심이 유별나게 깊다거나 한 인물이 아니었다. 하지만 그에게도 가문의 명예가 달린 상황에 여동생의 목숨 따위는 안중에 없었던 모양이었다. 


-우리가 뭘 그렇게 잘 못했나요. 그냥 잠시 손만 스쳤을 뿐인데요.


-더러운 변명 필요 없다. 너는 가문의 명예를 더럽혔고 게다가 시아파 난봉꾼과 사통한 요사스러운 년일뿐이야.


라니아의 아버지 압둘라 씨가 단호한 어조로 모든 마을 사람들이 들으라는 듯 커다란 목소리로 외쳤다.


-아버지 지금은 21세기에요. 어느 도시에선 여자들도 운전을 하고 있고 몇 해전 사우디에선 여성에게 투표권도 줬다고요. 아버지도 그러셨잖아요. '세상이 변하고 있나 보다'라고.


-아무리 세상이 변한다 해도 변하지 않는 원칙이란 게 있는 거야. 무슬림은 꾸란과 하디스에 의존해 살아가는 거야. 너는 지저분한 행동으로 너희 가문과 율법을 더럽히고자 했다. 게다가 배도자의 자손인 시아파 무리의 하나와 말이다. 그러니 오늘의 죽음을 달게 받거라.


율법학자 슬레이만 씨가 근엄한 어조로 선고를 하듯 선언했다.


-이게 뭐예요. 우린 그냥 사랑하는 사이일 뿐이라고요. 사랑이 죄가 되나요. 그게 그렇게 죽을 죄예... 악!


사랑을 입에 담으며 변명을 하는 라니아의 얼굴에 사정없이 돌을 던진 사람은 다름 아닌 그녀의 아버지 압둘라 씨였다. 조금만 더 입을 놀리게 두었다가는 자신의 가문에 평생 수치스러울 치욕의 날로 기억되리라 여긴 압둘라 씨는 망설이지 않고 딸의 얼굴에 돌을 집어던졌다.


-종교가 무슬림을 살게 한다면 오늘의 우리를 죽이는 것은 종교가 아니고 뭐란 말입니까? 변하지 않는 원칙이 있다지만 세상은 다 변하고 있어요. 변하지 않는 건 인간들의 잔인함과 야만성뿐일 겁니다. 자신의 딸을 죽이게 만드는 종교. 사랑에 죽음으로 답하는 종교가 도대체 무슨 의미라는 말입니까? 


라니아와 손을 잡았다가 들킨 죄로 함께 죽음을 맞이해야 하는 카림이 유언처럼 남기는 이 말에 치를 떠는 것은 비단 와합 마을 사람들만이 아니었다. 그의 고향 지단 마을 사람들은 평소 사람 좋은 카림이라 여기고 있던 그가 이따위 불경스러운 말을 내뱉자 미친 듯이 격분해 너나 할 것 없이 돌을 던졌다. 와합마을 사람들이라고 다르지 않았다. 순식간에 돌을 던지는 그들은 카림과 라니아가 피투성이가 되어 형체를 분간하기 어려울 지경이 되고서야 분이 풀린 듯 돌 던지기를 멈췄다.


지브릴은 그 광경을 보고 자신의 두려움의 근거가 무엇인지 마주한 것만 같았다. 정의라는 이름으로 잔인하고 야만적이게 변모할 수 있는 인간의 실상 그것이 자신을 그렇게도 두렵게 만들고 망설이게 만든 것이다. 



3


사람들은 그러고도 하루 다섯 번의 기도 시간을 지키려 다들 정오 기도를 하러 사원에 갔다. 지브릴도 기도를 하고 있었지만 기도를 하는 중에도 그의 내면에서는 무언가에 대한 부정과 거절의 의사가 샘솟는듯했다. 


=이건 아니다. 그래 이건 아니야. 난 이곳을 떠나야겠다. 지금도 두렵고 망설여지지만 이 속에서 살고 싶지 않다. 이런 그늘 속에서 살아가고 싶지 않아.

 

그는 아무도 모르게 자밀라를 찾아가 말했다.


-우리 바로 떠나자. 니가 말한 새로운 날을 위해서 말야.




<다음 편에서 이어집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6)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조선 요괴 추적기 자음과모음 청소년문학 91
신설 지음 / 자음과모음 / 2021년 10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조선, 요괴, 신, 요괴에 납치된 아이, 도사 등

몇몇 키워드만으로도 충분히 호기심을 자극하는 책이다. 

청소년문학상을 수상했다는 성장소설에 방점이 있는 작가의 소설이기에 더 흥미로왔다.

 

과연 이 옛날이야기 같달까 전설이나 신화 같달까 하는

이야기 속에 작가는 성장을 어찌 담고 있을까 하는 의문도 일었다.

 

그리고 읽고보니 소설을 마지막까지 흥미롭게 만드는 저자의 필력도 만족스러웠다. 

캐릭터들의 자기만의 이야기가 등장인물들을 내 곁에 있는 사람인양 살아나게 했고 

매끄럽게 인물을 묘사하고 있는 서술이 생동감에 매력까지 더해주었다. 

 

막동이와 구랍법사의 요괴 추적이 마지막장까지 생동감 있게 이어진다.

인물의 생생함과 저자의 이야기꾼 기질의 멋진 조합으로 흥미진진한 이야기로 이끈다.

 

다만 봉래산에 추적기가 이어지며 더 전개될 것 같은 상상의 나래를 이어가게 하면서도

마지막을 급하게 마무리한 듯한 마무리가 재미있게 읽던 독자로서는 조금 아쉬웠다. 

물론 저자가 이야기를 구상하면서 마지막부터 구상하고 전개한 이야기인지도 모르지만

인물들이 풀어나갈 이야기가 더 있을 것 같고 이게 끝이 아닐 것 같은 아쉬움이 들었다.

 

이야기가 너무 몰입감 있었기에 더 읽고 싶어 그랬던지도 모르겠다.

아니 더 읽고 싶어 그런 것이다. 

이야기의 구성도 인물의 생생함도 미스터리 같은 흥미진진함도 다 갖춘 작품이다.

 

다만 염매에 대해 등장하며 염매가 뭔지 검색을 했었다.

그런데 이후 염매에 대한 비밀을 풀어나가는데 서술된 문장이

검색해서 나오는 문장과 아무런 차이가 없어서 놀랐다. 고독에 대한 부분도 마찬가지다.

조금만 다른 문장으로 서술했어도 될 것을 왜 그랬을까 의문이 들긴 했다. 

물론 이 부분은 소설의 전개에 아무런 영향도 주지 않는 부분이긴 하다. 사소한 불만 정도다.

  

'사람의 마음이 없으면 요괴다' 라는 대사와 염매를 하고 있는 탄채를 응징하는 장면,

막둥이라도 살리려는 구랍법사의 마지막이 전체에서 가장 인상 깊은 대목이 아닌가 싶다. 

 

전체적으로 이 한 이야기를 구상하며 작가가 들인 공이 짐작이 가는 소설이기도 하다. 

아동청소년 문학이 언젠가 부터 깊이와 재미를 다 구비하는 장르구나 하는 감상이 들었는데

이 소설 또한 그런 감상에 한 역할을 하는 작품으로 기억될 것 같다.

 

아이에게 흥미진진한 옛날 이야기 같은 소설을 선물하고 싶은 분이라면

주저없이 선택 하셔도 좋을 작품이다.

 

 

YES24 리뷰어클럽 서평단 자격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네이버 블로그로 돈 벌기 - 1년에 5,000만 원 버는 수익 확장 노하우, 블로그 주제 선정부터, 기획, 효율적인 글쓰기 키워드 분석으로 누구나 쉽고 빠르게 월급 외 수익을 만드는 12가지 머니 파이프라인
김동석 지음 / 한빛미디어 / 2021년 9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블로그 포스트의 검색 순위 상승과 노출빈도 높이기에 최적화된 내용들이 있다. 읽어봐서 나쁠 건 없는데 비슷한 성격의 다른 책들도 많으니 비교 후 선택해야 후회하지 않을 것이다. 블로그와 포스트를 활용하는 것은 바라지만 딱히 돈만 벌려고 관심없는 포스팅하기 싫은 분들께는 권할 수 없을 책.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5)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36


유로와 수이가 수이의 수호천사가 가리키는 하늘을 올려다보자 하늘 위에서 날개 달린 천사의 군대가 흉갑으로 무장하고 검을 빼어든 채 미더운 모습으로 등장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들이 나타나는 하늘 옆으로 돌아가는 불바퀴를 밟고선 나타태자와 비늘 갑옷을 입고선 태을구고천존, 거대한 뱀이 감싸고 있는 검은 거북 위에 선 현천상제, 청룡언월도를 든 복마대제가 셀 수도 없는 군병을 이끌고 나타났다. 


-햐! 해볼만하겠는걸.


수이의 수호천사가 다행이라는 투로 되뇌었다.


-유로야. 너도 나서거라.


어느새 나타났는지 붉은 흉갑을 입은 지도령이 유로와 수이, 수이의 수호천사 주위로 마법진의 결계를 검으로 깨뜨리며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제가 도움이 될까요?


-지금 너의 능력치면 충분히 도움이 되고도 남는다. 어서 갑옷으로 갈아입거라.


-갑옷이요? 어떻게 갈아입어요?


-그저 처음 다른 옷을 떠올릴 때처럼 생각만하면 된다.


지도령의 말에 유로는 갑옷을 떠올렸고 유로에게 가야 시대 흉갑이 입혀졌다. 


-수이는 어떡하죠? 제가 싸우러 가면 누가 수이를 보호하나요?


-이봐. 수호령군, 나는 들러리로 있는 줄 알아? 내 임무는 절대적으로 수이를 보호하는 거야.


수이의 수호천사가 말했다. 유로는 '내 임무도 수이를 보호하는 건데' 하는 생각을 하다가 지금 이 상황에서는 싸우는 게 수이를 보호하는 가장 적절한 대처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맞은편의 마법진에 갇혀있던 유향이가 어떻게 됐는지 돌아보자 유향의 수호천사와 수호령이 유향의 뺨을 두드리며 유향을 깨우고 있었다.


-아함... 뭐야 이건?


잠에서 깨어나듯 정신을 차리던 유향이 주변의 광경을 보고 놀라 소리쳤다. 


-유향아! 지금 상황이 급박하니까 니 수호천사와 수호령에게 꼭 의지하고 있어.


-형... 이게 다 어떻게 된 거야. 형은 어떻게 여기 있어?


-설명은 나중에 하자. 지금을 이러고 있을 때가 아니야.


유로는 유향을 향한 말을 마치고 천사들과 영계의 신들이 악마들과 격전을 벌이고 있는 전장으로 날아갔다. 유로는 날아가며 손에 검이 생겨나 거머쥐었다. 


미카엘과 가브리엘은 사마엘을 향해 검을 찌르고 베며 달려들었고 사마엘은 롱소드로 그들 둘과 상대하고 있었다. 태을구고천존이 도끼를 휘두르는 사자머리의 마르바스에게 권풍을 내지르며 공격하고 있었다. 악마들과 대대적으로 전투를 벌이고 있던 나타태자와 현천상제는 이 전투를 빠르게 끝내려면 높고 낮은 악마들 보다도 악마들의 지도자 사마엘을 처단하는 것이 가장 빠르리라 생각했다. 그들이 미카엘과 가브리엘이 협공하고 있는 사마엘을 치려고 마음 먹을 때 이미 복마대제는 청룡언월도를 사마엘에게 내리치고 있었다. 악마들이 미쳐날뛰며 그들을 가로막으려 공격해 왔다. 


64 마신 중 서열 62위인 두 머리의 용을 탄 발라크와 힘겹게 격전을 하고 있던 유로는 쓰러뜨리고 쓰러뜨려도 다시 다른 악마들이 치고 나오자 난감한 심정으로 어렵게 버티고 있었다. 


메타트론이 유로와 격전하고 있던 발라크를 측면에서 검으로 베자 자신이 탄 용과 함께 발라크는 환영이 사라지듯 사라졌다. 천사들에게 베어지는 악마들은 모두 무저갱으로 돌아가버리고 마는 중이다. 


전투 중이던 우리엘이 자신 앞의 악마 하나를 베어내고는 하늘을 바라보며 말했다. 


-저 소녀가 이 시공간의 틈을 지탱하는 열쇠 같아. 사마엘이 시공간을 여는 매개물로 저 소녀를 이용한 거야. 


-저 소녀를 우리 진영으로 데려와야겠다. 전장이 중요한 게 아니야. 


우리엘의 말에 메타트론이 소녀를 데려오겠다며 하늘로 향했다. 유로가 올려다보니 그 소녀는 다름 아닌 이령이었다. 유로도 급속히 상승해 이령을 향해 날아갔다.


박쥐 날개를 한 악마들이 이령을 향해 날아가는 메타트론을 향해 벌 떼처럼 몰려들었다. 그렇게 유로에게 소홀한 사이 유로는 자신을 향해 날아오는 몇몇 떨거지 악마들을 베어내며 날아가 이령을 에워싼 마법 결계와 부딪혔다. 몇 번을 검으로 내리치던 유로는 문득 '결계는 무시하고 이령이만 구하면 되는 거야'하고 생각이 들었다. 이령을 에워싼 마법 결계 자체를 온힘을 다해 밀며 수이와 유향이 있는 결계 안으로 빠르게 날아 이령을 데려왔다.


이령이를 보자 유향이 달려와 이령이 곁으로 가려 했으나 결계가 막아 다가설 수 없었다. 


결계 안에서 얼어있는 듯한 이령의 눈동자에 유향이 비쳤다. 


이령을 결계 채로 유로가 데려가자 사마엘은 사태의 심각함을 알고 유로와 수이 유향과 이령, 그들의 수호천사와 수호령이 있는 천사의 결계를 향해 날아왔다.


사마엘과 상대하던 미카엘, 가브리엘, 복마대제, 현천상제, 나타태자도 모두 그를 뒤쫓아 왔다.


가브리엘이 날아가는 사마엘의 등 뒤에서 검을 찌르며 달려들자 사마엘은 가볍게 피하며 손가락으로 검을 튕겨냈다. 


사마엘이 튕겨낸 가브리엘의 검이 가브리엘의 손을 벗어나 이령을 향해 날아갔다. 이령일 향해 검이 날아들자 유향이 반사적으로 몸을 날렸다. 검이 유향을 꿰뚫으면서도 날아오던 거대한 힘과 함께 유향을 밀어내며 유향을 꿰뚫고 날아간 검 끝이 이령이 갇힌 결계를 깨고 이령의 가슴을 찔렀다.


-아악!


이령이 결계가 깨어지며 정신을 차리자 지금까지 한 번도 느껴보지 못했던 고통에 비명을 질렀다. 


-이런 제길! 어렵사리 세상을 탈환하려 했건만. 


사마엘을 비롯한 악마 대군이 모두 무저갱으로 사라져갔다. 


검이 몸을 꿰뚫고 지나갔는데도 유향은 이령을 돌아보고는 피를 토했다.


-넌 안돼. 죽으면 안 된다고. 


유향이 다가와 무릎을 꿇고 이령일 감싸 안은 채 고통 속에서 이령을 향해 외쳤다. 


검에 가슴을 찔린 이령이의 두 눈에 슬퍼하는 유향의 모습이 가득 담겼다. 


-미안해. 나 때문에. 너한테 뭐라고 해야 할지 모르겠어. 정말 미안해.


자신이 죽어가면서도 이령은 태어나 처음으로 남자에게 사과를 하고 있었다. 


-안 미안해도 되니까 죽지만 마. 죽지 말라고. 바보야. 


소리치는 유향의 등 뒤에서 따스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아무도 죽지 않을 테니 걱정 말거라. 얘들아.


치유의 천사 라파엘이 손에 들고 있던 검을 사라지게 하고는 이령과 유향의 머리에 한 번씩 손을 가져다 댔다.


그들의 상처가 점차 사라지고 유향과 이령은 정신이 맑아지는 걸 느꼈다.



유로는 수이에게로 갔다. 수이는 유로를 보자 세상 믿음직스러웠다는 눈빛으로 바라보았다.


-오빠. 너무 멋지게 싸우더라. 무슨 수퍼히어로 같았어.


-수퍼히어로 같기는 너무 힘겹게 버티기만 한 걸.


-아니야. 오빠 검에 사라지는 악마들이 몇이었는데. 이령이도 오빠가 구해온 거잖아. 이령일 데려와서 이 싸움이 끝난 거고. 오빠가 세상을 구한 거야.


-세상을 구하긴. 난 그저 너 하나를 지키고 싶었을 뿐인걸. 난 너의 수호령이니까.


유로의 말에 수이가 말없이 환한 미소를 지었다. 그 미소를 마지막으로 수이가 사라졌다. 수이의 수호천사가 유로를 돌아봤다.


-수이는 이제 병원에서 깨어날 거야. 나도 이제 수이 곁으로 가봐야겠어. 너는 안 가? 수호령군!


-저도 가야죠. 저도 수이의 수호령인걸요.



37


-자! 얘들아. 긴장할 것 없어. 오늘 쇼케이스가 너희들이 대중 앞에 첫선을 보이는 무대라고 긴장해서 되려 실수하면 안돼. 연습은 실전처럼 실전은 뭐?


-연습처럼이요.


고정도 대표의 말에 효윤이와 선희가 신나서 소리쳤다.


-대표님, 대표님이 더 긴장하시는 거 같아요. 좀 릴랙스하세요.


이연이가 자신도 긴장되는데 더 긴장한 것 같은 고대표를 보고 한숨을 쉬며 말했다.


-하! 하! 그랬나. 보이그룹은 경험이 많지만 걸그룹 데뷔시키는 건 니들이 처음이라 나도 덩달아 긴장했나 보다. 수이야, 소미야, 이연아, 선희, 효윤이도 모두 준비됐지. 가서 무대 찢어 놓고 와. 관객들 다 쓰러트러 버려.


-네. 근데 대표님이 제일 먼저 쓰러지실 것 같아요. ㅎㅎ


수이가 밝게 웃으면 대답했다. 


무대에 올라가며 소미가 수이를 향해 말했다.


-언니, 정말 모든 게 언니 수호천사와 우리 수호천사가 도운 것 같아. 이젠 우리 꽃길만 걷자. 


-그래, 근데 수호천사만 있는 줄 아니 수호령도 열 일한다고.


-알겠어 언니. 어쨌건 우리 이 첫걸음을 위해 그 노력을 해왔던 거니까. 꼭 무대 찢어 놓자. 응?


-응!


수이의 얼굴에 긴장감과 기대가 어우러진 표정이 지어졌다. 수이는 지금 이 순간 누구보다 유로가 가장 보고 싶었다.


=유로 오빠, 오빠 보고 있지? 이 첫 무대는 오빠에게 꼭 보여주고 싶은 무대야. 나 긴장해도 놀리기 없기다. 응원만 해 줘. 늘 그러고 있다는 거 알지만, 그래도 꼭!



전주가 들리며 수이와 아이들이 퍼포먼스를 보이고 있다. 무대 아래서는 M.G.I의 소속 스텝들과 촬영 스텝, 기자진, 그리고 소수의 팬들이 있었다. 그 팬들 틈에 유향과 이령이 있었다.


-너 어제 학교에 찾아온 그 사람은 누구야?


-응, 유로 형이 빙의해서 수이 구하던 날 사진들을 누가 인터넷에 올려서 나더러 이종격투기를 한번 제대로 배워보겠냐구 찾아왔어.


-너 보고 이종격투기 선수로 데뷔하래?


-그건 아니구. 우선 입식타격기로는 기초가 탄탄하다구. 좀 더 배워서 데뷔해 보겠냐구 하더라구.


-그럼 해야지. 장래가 촉망되는 격투가 싹이 보이는 녀석인데.


유향이가 격투가의 꿈을 갖고 있는 걸 아는 이령이다. 유향이가 자신의 꿈에 한발 다가서게 되어 너무 다행스러웠다. 


-와! 수이 굉장하네.


-응, 그래?


-와. 쟤 소미지? 너무 예쁘다.


-응, 그렇단 말이지. 다 이쁜 것도 아니라 소미만 눈에 쏙 들어온다 그 말인 거네.


-진짜 유난히 이쁘잖아. 


-내 눈에는 다들 이쁜데 니 눈에는 소미만 이쁘다는 거잖아. 그딴 눈 뽑아다 마법 약 만들 때나 써 보고 싶네, 정말.


유향이 M.G.I 멤버 소미를 칭찬하자 참고 듣던 이령이 불타는 분노를 내리누르며 싸늘히 말했다. 유향은 난처한 표정을 지으면 둘러댔다.


-내 말은 소미가 그렇게 이쁘다는 게 아니라 저 중에서 그렇다는 거지, 저 중에서. 내 눈은 너 보는 데 써야 하니까 제발 제자리에 놔둬 줘. 부탁할게.



유로는 그들 머리 위에 한참 올라간 공간에서 수이를 바라보고 있었다. 


-너무 아름다운 저 소녀가 내 여친이라구. 모두에게 자랑하고 싶어, 쟤가 내 여친이에요.


-그건 온 영계가 다 아는 사실이 되어버렸다네, 유로군. 천당에서도 천국에서도 지옥에서까지 도대체 누가 모르겠나? 


지도령이 오늘은 와인색 도복을 입고 나타나 유로를 놀리듯 말하자 유로가 정색을 했다.


-온 영계까지 다 알려질 정도로 자랑하려던 건 아니었는데요. 


-어쨌건 오늘이 자네가 수호령으로서의 지위에서 수호신의 지위를 봉신 받는 첫날인 것도 알아둬야 할 것 같네. 


그리 말하며 지도령은 임명부를 꺼냈다. 그걸 보고 유로는 자연스럽게 한쪽 무릎을 굽히고 예를 취했다. 


-자네는 이제 수호령이 아니라 수호신이 되었으니 수이 한 사람을 지키는 것이 아니라 대한민국을 수호해야 하는 거네.


-그럼 수이 곁에서 떠나야 하는 건가요?


수호신이 된다기에 뭔지는 몰라도 우쭐한 기분이었던 유로는 '수이 곁을 떠나야 하는 걸까?' 하는 생각이 들자 수호신 지위를 거절할까 망설였다.


-떠나야 하는 건 아니지. 자네의 관할이 대한민국 전체로 넓어졌을 뿐이야.


-관할이 넓어졌다는 말씀이 꼭 떠나야 한다는 말씀 같아요.


-그래도 걱정된다면... 자네는 아직 몰랐겠지만 수호신은 분신을 할 수 있네. 자네 분신을 수이 곁에 두고 세상을 수호하러 가면 되는 거네. 그럼 언제나 곁에 있는 것처럼 수이를 지켜보면서 자네 업무에도 충실할 수 있다네. 



유로는 자신의 분신을 세상을 수호하라고 보내야지 생각을 했는데 막상 분신을 하고 보니 의식이 둘로 나뉜 것 같이 양방향으로 감각이 다 공유 되었다. 누가 분신이고 누가 본래 자신인 것인지 구분할 수도 없었다. 이제 하나의 유로는 수이 곁에 하나의 유로는 세상을 지키러 그리 떠나게 되었다. 붉은 핏빛의 말이 '히힝' 소리를 내며 고개를 흔들자 한 명의 유로가 말안장에 올라앉았다. 유로가 다시 그 은색의 가야 흉갑으로 의식을 통해 옷을 바꿔 입자 말이 하늘을 향해 달리기 시작했다. 


또 한 명의 유로는 말을 타고 날아오른 자신을 보며 수이 곁에서 손을 흔들었다. 그리고는 막 무대를 마치고 내려오는 수이를 지긋이 바라보았다.


-수이야. 이제 너와 세상을 모두 지켜야겠어. 그게 진정으로 너를 지킬 수 있는 길이니까. 언제까지나 널 지켜줄게. 난 너의 수호령이니까. 사랑한다, 신수이!



<완결>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7)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자꾸 이상한 생각이 달라붙어요 - 강박이라는 늪에서 탈출하기
샐리 M. 윈스턴.마틴 N. 세이프 지음, 정지인 옮김 / 교양인 / 2021년 8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거듭거듭 일어나 불편하고 동요하고 연연하고 괴롭게 하는 생각들을 저자는 침투하는 생각이라 정의한다.

저자의 해결책의 핵심은 침투하는 생각에 동요하지 말고 없애려고 애를 쓰지도 말고 있는 그대로 수용하고 허용하라는 것이다.

없애려 애쓰는 그 노력 자체가 노력의 역설을 불러와 더욱 침투하는 생각이 집요하게 자신을 괴롭히게 된다고 하니 말이다.


저자는 침투하는 생각을 중단하는데 3가지 방해 요인으로 ①끈적끈적한 마음과, ②노력의 역설, ③얽힘을 들고 있다.

끈적끈적한 마음이라는 것은 그 말 자체에서 연상되듯 우울하거나 감상적이 되거나 무언가가 자꾸만 연상되는 그런 상태를 이야기한다.

노력의 역설은 무언가를 해내려고 할수록 그 일의 성취와는 멀어지거나 더 노력하는 날 더 지지부진할 때를 이야기한다.

얽힘은 해당 내용에 연연해 내적 대화를 이어가게 되는 상태를 이야기하고 있다.

더 설명할 것도 없이 이런 상태가 어떻게 더 침투하는 생각을 불러오는지는 충분히 생각 가능할 것이다.


그리고 저자는 괴로움을 줄이는 방법을 6단계로 제시한다.

①알아차리기

②그냥 생각일 뿐

③수용과 허용

④휘말리지 않고 그냥 느끼기

⑤시간 흘려보내기

⑥하던 일 계속하기


설명이 필요 없는 밥법들이다. 핵심은 있는 그대로 그냥 받아들이고 지나가게 두라는 것이다.

무언가를 없애려고 애를 쓰다 보면 에너지가 그 대상에 더욱 집중되어 노력의 역설을 불러오니

수용하고 허용해버리고 그냥 흘러가게 두라는 것이다.


다만 본서의 마지막에서는 그냥 침투하는 생각과는 달리 치료가 필요한 경우가 있다고 예를 들고 있는데

첫째로는 자기 파괴적인 충동이나 자살 충동이 그저 침투하는 생각이 아닌 경우다. 

자해하고 자살하는 생각만 드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계획하고 실천하는 경우까지 간다면 

이때는 전문의와의 상담이 꼭 필요한 것이다. 이것은 타인에 대한 경우도 마찬가지일 것 같다.


두 번째로는 소아성애를 떠올리게 되는 경우만이 아니라 그에 대한 영상을 시청하거나 

그런 성적 욕망을 충족하려는 마음이 일어나는 경우도 전문의와의 상담이 필요하다.


세 번째는 단지 절망 어린 분위기가 지나가는 것이 아니라 실제 절망감에 빠져버렸을 때 역시 마찬가지다.


네 번째는 침투하는 생각이 아닌 급속 사고 racing thoughts(질주하듯 빠르게 스쳐 지나가는 생각)의 경우이다. 

급속 사고는 우울증이나 양극성 장애, 특정한 의학적 질병과 관련된 초조의 한 증상이라고 한다.

이것은 보통 한 주제에서 다른 주제로 건너뛴다는 특징이 있고 한 생각을 채 끝내기도 전에 다른 생각이 닥쳐오는 느낌이 든다고 한다.

초조 agitation는 거의 항상 다른 증상과 함께 일어난다고 하는데, 삶의 즐거움을 느낄 수 없는 무쾌감증과

새벽 일찍 잠이 깨는 증상 등이 동반된다고 한다.

그 외에도 식욕, 섹스, 평범한 일상에서 상당히 큰 변화가 일어나기도 한다고 한다.

쉽게 짜증이 나고, 집중하기 몹시 어려우며, 도저히 긴장을 풀 수 없게 느껴질 수도 있다는데 유머 감각에도 변화가 생긴다고 한다.


대부분의 경우 침투하는 생각으로 괴로움을 느끼는 분들에게 유익할 책이다. 

하지만 책을 끝까지 읽고 초조에 해당하는 이야기를 듣고 보면 

책을 처음 펼쳐들었을 때는 침투하는 생각이라 단정 지었던 것이 초조에 해당하는 증상이었구나 판단하시는 분들도 있을 수 있을 거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6)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