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격차 - 빈곤과 불평등의 세기를 끝내기 위한 탈성장의 정치경제학
제이슨 히켈 지음, 김승진 옮김, 홍기빈 해제 / 아를 / 2024년 7월
평점 :
이 책에서도 해제에서 홍기빈님이 언급하고 있지만 많은 분들이 문제를 인식하고 있는 책인 [팩트풀니스]에서는 빈곤 문제도 통계를 언급하며 200년 동안 나아져 왔다고 기술하고 있다. 그 사안에 대한 전면 반박과도 같은 사실을 서술하며 본서는 시작된다.
본서는 통계가 기준점을 다시 잡거나 교묘하게 호도되며 빈곤 문제를 호도하고 있다고 지적하며 시작되기 때문이다. 물가 상승률과 달러 절하를 무시하고 빈곤의 기준을 하루 1.25 달러의 수입으로 책정한데 대하여 저자는 이 선으로는 기대 수명이 5세 미만일 때나 가능하며 하루를 겨우 연명하기도 힘든 비용이라고 지적한다. 기대 수명과 최저 생계를 보장하는 적절한 비용은 적어도 1.25 달러의 4배에 해당하는 5달러라고 한다. 1.25 달러를 빈곤 기준으로 삼을 때 세계의 빈곤 인구는 10억 명이 넘는 정도인데 이것 역시 1980년대와 지금의 차이가 없는 인구이다. 그런데도 세계은행이라던가 국제기구들은 비율적으로 빈곤에서 벗어난 인구가 많은 것으로 광고한다고 한다. 게다가 중국처럼 개도국이 빈곤에서 탈출한 경우가 많은 1980년부터 1990년을 기준점으로 다시 잡거나 빈곤을 탈출한 개도국 빈곤 인구만을 기준 삼는 통계 꼼수를 부려 통계를 산출하고 있다고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절대수로는 그대로이지 않은가 하는 것이 저자의 말이며 실제 빈곤 기준일 수 있는 5달러를 기준으로 다시 책정하면 세계의 빈곤 인구는 43억 명이 된다.
그렇다면 세계기구들은 왜 빈곤 인구를 축소하는 왜곡과 호도를 하는 것일까? 저자는 이 문제를 세계화와 자유시장에서 답을 찾고 있다. 애초에 빈곤 인구를 평가할 때 1.25 달러는 기준선이 될 수 없었기에 빈곤 인구를 계산할 때 많은 학자들이 빈곤 인구가 10억 명보다 거대한 통계를 기준으로 삼았다고 한다. 하지만 글로벌 남부 지역에 구제 비용을 대출해 주는 서구로서는 서구의 대중들에게 내세울 만한 새로운 기준이 필요했던 것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구제 비용이 글로벌 남부 지역으로 이동해야만 했던 가장 중요한 이유는 이것이 절대적으로 글로벌 북부 지역의 큰손들에게 남는 장사였기 때문이다.
구제금융의 조건은 글로벌 남부 지역에서의 규제 완화, 공기업의 민영화, 서구세력의 투자의 자유 보장, 노동시장의 유연성이라는 이름의 값싸고 해고가 쉬운 노동자들을 보장해 주어야 했다. 이러한 조건들은 글로벌 남부 민중의 생존을 위협함으로써 서구세력의 부를 약속하는 시스템이다. 이 구제금융으로 글로벌 남부로 가는 돈의 흐름이 1000억 달러라면 그와 함께 글로벌 남부에서 글로벌 북부로 가는 보상은 4800억 달러라고 한다. 이것은 구제가 아니다. 원조나 수혜가 아닌 투자일 뿐이고 다시 보면 투자라는 명분의 탈취인 것이다. 가난한 이의 집에 들어가 그들의 모든 것을 빼앗으며 발가벗겨 밖으로 쫓아내는 행태가 구제금융의 본 모습이었다.
이런 행태의 기원을 저자는 식민화와 산업화 이전의 인클로저에서 찾고 있다. 식민지를 구축하던 과거부터 인클로저까지의 당시 상황을 저자는 신랄히 비판하기도 한다. 인클로저의 경우 방직기가 만들어져 모직물 생산이 가열차게 진행되며 공유지였던 대부분의 땅에 영주들은 양을 목축하기 위한 울타리를 치며 농사짓던 농부들을 내쫓았다. 농부들은 살길이 없어 방직 공장에 저임금을 받으며 노동자가 되거나 영주들의 농노로 전락하게 되었다고 한다. 국왕이 이 문제를 직시하고 금지시키자 영주들은 반란을 일으키고 무력화된 왕은 어쩔 수 없이 인클로저를 승인하게 되었다. 현재의 세계화와 자유시장 그리고 구제금융은 이러한 공유지의 탈취와 다르지 않다고 저자는 소리 높인다. 세계의 불평등과 격차는 서구 세력의 이익을 보장하기 위한 작업들의 결과라는 것이 본서의 주제이다.
글로벌 남부가 주축이 되어 이에 대해 저항했던 역사도 있다. 중동지역에서 석유를 무기화하여 권리를 강화하는 과정과 같이 글로벌 남부에서도 자신들이 보유한 자원을 무기로 권리를 강화하려 한 것이다. 중동은 석유를 무기로 성공했으나 원자재를 무기화하려던 글로벌 남부는 쿠테타를 지원하거나 암살을 시행하는 등 모략을 꾸민 글로벌 북부에 의해 와해되고 말았다. 보다 나은 상황을 자국 국민에게 가져다주었거나 제시했던 글로벌 남부의 정치가들은 모두 죽거나 강제 해임된 것이다.
그리고 환경 문제를 근거로 탄소비용을 타국에 비해 더욱 부과당하는 국가들도 개발이 정체된 국가들이 다수란 것도 새삼 돌아보게 되었다. 일반적인 상식으로는 탄소배출은 당연히 중국이 문제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1인당 이산화탄소 배출량은 미국이 중국의 5배 독일도 중국의 거의 2배라고 한다. 인도의 경우는 이산화탄소 배출에 1.4 톤의 책임이 있는데 세계평균은 4.5 톤이라고 한다. 아프리카의 1인당 배출량은 0.5 톤에 불과하다. 기후변화에 대한 비용은 인도와 아프리카에서 더욱 지고 있는데 각각 GDP의 4%와 5%에 해당한다. 이는 물질 소비가 감소하기보다는 점점 더 확대되고 있는 선진국들과 개도국이나 모든 것에 대한 부족함이 일상인 저개발국가들을 볼 때 격차를 유지하고 지속하는 원인이 무엇인지 알 수 있는 요소들 중 하나로 인식되었다. 애초에 불가능한 탄소제로는 격차의 유지와 지속이 가능하게 하는 원칙이 되어버리는 것이구나 하는 생각을 과거 기후운동이 조명되는 시기부터 갖고 있었는데 그에 대해 더욱 편향에 가까운 인식을 하게 되는 시간이었다.
격차에서 말하는 내용들은 과거 동아일보사에서 출간한 [위대한 전환]에서 인지한 것들이기도 했는데 2001년 출간한 그 책에서 다각도로 여러 저자의 시각으로 접했던 것을 20년이 넘어서 다시 돌아보는 것만 같았다. 세계는 변한 것이 없다. 변화의 가능성과 변화를 위해 필요한 것들을 저자는 본서의 후반부에서 언급하기도 한다. 하지만 새로운 변화의 시점인 현재에, 미래를 향하고 있는 대중의 시선을 지금까지의 문제들로 돌려, 미래의 문제를 막자는 시도가 때늦지 않았나 싶기도 했다. 초극부층이 인클로저 시대에 영주들이라면 대중은 문제를 직시하지도 못한 왕과 다르지 않다. 인클로저 당시의 왕은 문제를 직시하고도 무력화되었지만 우리는 직시하지도 못하면서 무력하다. 시절은 확연히 뻔한 결과로 향하고 있지 않나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