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크 데이터 - 보이지 않는 데이터가 세상을 지배한다
데이비드 핸드 지음, 노태복 옮김 / 더퀘스트 / 202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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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실 이 시대는 과학과 데이터를 신앙하는 시대가 아닐까 한다. 사람들이 죽어가도 통계적인 범위 내에서 사망할 사람은 소수이니 나는 괜찮을 거라는 생각으로 감염성 질병에 대처하거나 예방 접종에도 그런 판단으로 대응한다. 확진을 받고 나서도 회복한 사람들에게는 맞는 말일 것이다. 그리고 백신 접종을 하고도 이상반응도 없고 사망하지 않은 사람에게 역시 그런 신앙은 나름 괜찮은 판단이었다고 생각될 것이다. 그럼 죽은 사람들과 그 유가족들에게는 어떨까?


데이터는 이렇게 숫자로 가장 귀중한 것을 치환하게도 만드는 무엇보다도 무서운 신앙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그 데이터라는 것이 항상 정직하고 보편타당한 것이리라는 기대 역시 사람들의 무의식에 새겨져 있는 상식이자 편향이 아닌가 싶다. 문재인 정부에서는 급증하는 실업난에도 불구하고 취업자 숫자가 유의미하게 늘었다고 주장했다. 무서운 기세로 상승한 부동산가에도 불구하고 부동산가는 10 여 % 정도 증가했을 뿐이라고 호기롭게 주장하기도 했다. 어떻게 현실을 이토록 왜곡할 수 있었던 걸까? 그것이 바로 데이터의 마력이다. 기준만 재설정한다면 의도된 조작이나 설정치의 재조정만으로도 대중에게 제시할 결과값이 달리 나올 수 있는 것이다. 그들의 입장에서는 그것이 거짓도 아니지 않은가? 자신들이 재설정한 기준에서는 그런 결과가 나올 수밖에 없으니 말이다.


데이터가 이토록 악용되고 진실을 호도할 수 있는 마녀 같은 것이라면 우리는 이 데이터라는 것을 외면하고 부정해야 하는 것인가? 아니 이 시대 상황에서 그런 선택은 상식 밖이고 제정신이랄 수 없는 선택일 것이다. 우리는 데이터에 대한 상식의 폭을 확장함으로써 데이터가 오류이거나 데이터로 거짓말을 하는 경우의 수에 대한 상식을 재정비함으로써 이 데이터가 일으키는 거짓의 난에 대처할 수밖에 없다.


본서 다크데이터는 데이터의 오류와 착오를 일으키는 데이터의 맹점을 다크데이터라 정의한다. 이를 크게 누락한 것을 인지한 데이터와 누락한 것조차 알지 못하는 데이터로 분류하고 이를 다시 데이터를 의도적으로 조작한 경우와 의도하에 오류를 불러오는 방식까지를 두루 분류하여 총 15가지 유형으로 정의하고 있다.


데이터 전문가가 쓴 저작이다 보니 저자의 표현으로는 '수많은 데이터'를 언급하고 있고 체감상 적어도 100 여 개 이상의 데이터를 언급한 듯한 느낌이다. 저작이 전문가가 대중적으로 쓰기 위해 최대한 대중의 호기심과 궁금증을 유도하고 그를 지속할 수 있는 데이터 중심으로 언급하고 있다. 하지만 데이터 정보와 그리 가깝지 않은 사람이자 이공계열 사고 회로를 갖추지 못한 (리뷰를 쓰고 있는) 본인에게는 독서에서 호기심과 몰입도가 지속되다 끊기고 다시 일어나 지속되다 끊기는 상황이 반복되었다. 여러모로 흥미로운 주제임에도 (인문학적 서술이라지만) 숫자가 난무하는 데이터에 관련된 저작이다 보니 처음의 관심과 호기심이 저작의 끝까지 일관되게 유지되는 저작은 아닌 것 같다는 감상이 든다.


표지의 띠지에서도 기록되어 있듯 본서에서 언급되는 데이터 사례로는 의료 통계, 금융 설계, 인구조사, 실험 설계, 금융 사기 감지, 투자 예측, 질병 진단, 개인 정보 보호뿐만이 아니라 그 이상의 헤아리기 쉽지 않은 분량의 데이터 사례가 언급되고 있다. 이 모두를 기억하는 것은 천재적인 지능이 아니라면 쉽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이 모두에서 일관된 흥미와 관심과 집중력을 드러내는 것 또한 천재이거나 데이터 전문가 거나 이공계열적 사고에 익숙한 이들이 아니라면 불가능할 거라고 생각된다.


나로서는 사례로든 데이터 중 챌린저호 공중폭발 사고에서 발단이 된 오링에 대한 데이터의 다크데이터가 다크데이터로 야기될 수 있는 문제를 민감한 사안으로 인식하도록 해주어 기억에 남고 영국 경찰들과 범죄예방(?)부서에서의 범법행위에 대한 분류의 오차가 100% 이상이나 오차가 있는 것도 데이터의 기준을 어떻게 설정하느냐에 따라 결과값이 달라질 수 있으며 데이터를 제시하는 주체가 의도적으로 그를 이용(악용)하고 있다는 것을 제삼 확인할 수 있어서 인상 깊었다. 


그 외에는 타이타닉호의 구조자 중 승무원과 승객의 생존 비율과 승무원 중 남성 생존자와 승객의 남성 생존자 비율, 여성 승무원과 여성 승객의 생존자 비율에서 어이없는 숫자 장난 같은 역설적인 결과가 나오는 것도 인상적이었다. 그리고 체중 감소 지수를 산출하는 데이터에서 나이, 성별, 키 몸무게를 기록하는데 여기서 각각이나 교차 누락하는 경우까지도 신뢰도를 높이기 위해 경우의 수를 대입하여 데이터를 산출하려는 저자의 논리 전개에 놀랄 수밖에 없었다. 나이는 체중 감소 효과에서 큰 영향을 미치는 지수이기는 해도 굳이 무시하겠다면 할 수도 있을 것 같았고 성별이야 50:50 의 확률이니 편차가 있다 해도 큰 무리가 없다고 생각되었지만 체중 감소 지수를 산출하는데 키와 몸무게가 누락된 정보를 추정하려 하는 것이 전문가로서 올바른 태도인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과거에 있었다는 미국에서의 남편 나이와 부인 나이 비율을 따져 미국인 아내들의 평균 나이를 산출하려는 데이터에서도 남편의 나이를 누락했거나 아내의 나이를 누락했거나 둘 다 누락한 경우에도 이것을 데이터 상에서 무조건 배제하는 것이 아니라 추정치를 잡으려는 것을 보고 데이터라는 것이 무당 놀음인가 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무엇보다 과학계에 만연했다는 데이터 사기 사례도 상식의 폭이 넓어지는 것 같은 정보였다고 생각한다. 과학자들과 심리학자들이 이전 과학자와 심리학자의 실험을 재현해본 결과 같은 결론에 도달하는 경우가 저자가 이야기하듯 이렇게까지 희소한지 미쳐 알지 못했다. 과학저널《네이처》의 설문조사에서 1,576명의 응답자 중 70% 이상이 다른 과학자의 연구를 재현하려고 시도했지만 실패했다고 대답했다는 것이다. 심리학계 역시 2008년 심리학 문헌에 발표된 100건을 재현하려 했지만 통계적으로 유의미한 결론을 내놓은 97건의 연구 중 오직 37건에서만 똑같은 결과를 얻었다고 한다. 과학계에서 전문 과학저널 중 저명한 몇몇을 제외하고는 검증하려 시도하지 않을 거라는 기대로 많은 실험 사례들이 올라오는데 이 또한 검증을 거치면 사기로 판명되는 수가 많다는 것이다. 물론 이러한 과정을 모두 거친 이후의 객관적인 자료가 훗날 정당한 과학적 발견으로 역사에 남게 되는 것이기는 하나 전두엽 절제술이라는 사이비 의학도 노벨 의학상을 수상한 전적이 있는 만큼 당시대에는 그런 사기 행각에 놀아날 수 있는 것이다. 본서에서 보여주는 과학 분야의 사기행각의 방식을 조목조목 분류한 대목은 그 정의만큼 인상적이지는 않았지만 과학에 대한 맹신을 깨뜨리는 역할을 해주지 않나 생각된다.

  

무엇도 신앙하지 않겠지만 과학이라고 맹신하는 것도 종교적 신앙과 다를 바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데이터 역시 마찬가지이다. 숫자는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고 맹신하기보다는 그 숫자를 착각하고 실수하고 야비하기까지 한 인간이라는 생명체가 다루었다는 것을 잊어선 안될 것 같다. 


본서는 착각하고 실수하고 야비한 인간의 특성이 그대로 드러나는 것이 바로 데이터라는 것을 증거하는 저작이라는 데서도 의의가 있지 않나 싶다. 많은 데이터들이 제시되고 있으므로 독자의 성향에 따라 금융 범죄 데이터가 또는 투자예측 데이터가 의학진단 데이터가 각기 더 기억에 남을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자신의 기호에 맞는 감상을 안겨줄 수 있으니 폭넓은 독자의 사랑을 받을만한 저작이 아닐까 싶다.



YES24 리뷰어클럽 서평단 자격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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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계 고등학교 정문 근처에서 교복을 입은 이령이와 유향이가 이령의 전용차에서 내리고 있다. 마침 등교하던 중인 유향의 친구들이 몰려들었고 그중 한 명이 유향의 어깨를 치며 인사를 건넸다.


-너 이 자식. 요즘 등교를 꼬박꼬박 하는 게 왜 그런가 했더니 쟤 때문이었어.


-그런 거 아니야.


-아니긴 뭐가 아니야. 매번 아침부터 같이 등교하는데 그럼 밤부터 같이 있은 거 아니야? 


영현이 말에 유향이 미심쩍게 대답하자 정찬이가 딱 초딩 수준 질문을 했다. 


그 말을 들은 이령이는 어린애처럼 수준 떨어지는 이딴 애들이 주위에 다가온 것 자체가 기분 나빴다. 


-그게 니들 수준에 맞는 상상인지는 모르겠지만 나와 얘는 고용인과 피고용인 사이일 뿐이야!


-뭐? 고용, 피고용? 노예팅 같은 거라도 한 거야, 니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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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령이 교실에서 자기 책상에 앉아 창밖을 내다보고 있다. 2층 창밖으로 구름이 듬성듬성한 하늘을 올려다봤다. 


담임 선생님이 출석을 부르다 수이가 또 결석 한 걸 확인하고는 아이들에게 물었다.


-수이는 오늘도 결석이야. 집에 전화를 해도 할머니께서도 애가 가출했다고 하던데. 니들 중에 수이랑 연락 닿는 애 없어?


-원래 아이돌 숙소에 있어야 하는 건데 멤버인 애들도 소식을 모른대요. 


-데뷔가 6개월 남았는데 메인보컬이 없어졌다고 애들이 난리도 아니에요.


아이들 몇몇이 수이 소식에 대해 모른다며 이런저런 대답을 하자 선생님도 걱정스런 한마디를 했다.


-걔 그러다 데뷔도 못할 것 같은데..


창밖을 보던 이령이가 무언가 재밌는 일이라도 있다는 듯 미소를 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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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령이가 유향의 교실로 찾아왔다. 교실 밖 창가에서 두리번거리는 이령이를 보고는 정찬이가 한창 휴대용 게임기로 게임에 넋 나가 있던 영현이 뒤통수를 쳤다.


-뭐야! 한창 끝짱내고 있는 중인데.


-유향이 여친 왔다. 


-어라. 유향인 어디 갔냐?


-매점 간다던데.


-야! 그럼 날 불렀어야지.


정찬이와 영현이가 티격태격하고 있을 때 복도에서 유향이가 오다가 이령일 발견했다. 유향이 살며시 웃으며 다가서다가 아직도 두리번거리는 이령이 볼을 찔렀다.


-뭐야! 이 짝퉁이.


-내가 왜 짝퉁이야. 조금만 있어봐. 대한민국이 내 이름을 다 알게 될 테니까.


-훗. 넌 가만히 있을 땐 유로 오빠랑 비슷한데 자세히 보면 유로 오빠랑 달라도 너무 달라.


-형은 형 나는 나야. 다를 수밖에.


이령인 유로와 유향의 겉모습만 비슷하다고 생각했지만 그건 깊이 보지 않아서다. 유향인 유로처럼 한가지 밖에 모르는 집념이 있는 아이였다. 가끔씩 농담을 하고 가벼운 말투를 보일 때도 있지만 유향도 유로 못지않게 진지한 아이였다. 이령이가 보는 이상으로 더 깊이 보면 그랬다. 그보다 더 깊이 보면 또 각자의 개성이 다르기도 했을 테니 이령이가 꼭 잘못 본 것 만은 아닐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분명한 건 이령인 지금 유향일 너무 겉모습만 보고 있다는 거다.


-너 나랑 어디 좀 가야 돼.


-뭐야 무단 조퇴하려고?


-왜? 안 돼?


-너는 결석일 수가 없어서 모르겠지만 난 좀만 더 결석하면 유급이야.


-유급 받으려면 두 달이 넘게 결석해야 해. 너 결석한 게 두 달이나 돼?


-아니, 대략 한 달 정도.. 그래도 자꾸 결석할 수는 없는데. 니네 어머니께서 널 경호하라고 하신 건 너 착실하게 지내게 지키라고 그러신 걸 거야. 근데 결석하게 두면 안 될 것 같다.


-무슨 선비냐? 우리 엄마가 널 내 곁에 두게 하신 건 날 감시하고 통제하라고 그러신 게 아니야. 어쨌든 난 지금 학교 밖으로 나갈 거야. 니가 안 따라온다고 해도 나갈 거라고. 하지만 넌 나 안 따라오면 직무태만이야 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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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령이 아까부터 계속 손바닥만 보면서 택시기사 아저씨께 목적지도 불분명하게 말하고는 운전을 지시하고 있었다.


-여기서 왼쪽으로 가주세요.


-학생 진작 말하지 여기선 비보호라 돌아서 다시 와서 좌회전해야 해.


-네, 그렇게 해주세요.


유향인 이령이가 어디를 가는지 모르기에 그저 묵묵히 이령이의 행동을 보고 있었다. 하는 것마다 의문스러운 아이였지만 분명한 건 이 이쁜 아이가 자기가 갈 곳을 모르고 헤매는 건 아닌 것 같다는 거였다. 작고 여린 이 아이는 뭔가 명확한 목적과 의지를 갖고 있는 것만 같았다. 유향이 자신과는 다르게 말이다. 


택시에서 내린 이령이는 마법 깃털을 만들어 그것이 날아가는 대로 따라갔다. 유향이 보기에는 허공을 보고 자꾸만 외진 곳으로 가는 이령이가 뭔가 이상하게만 여겨졌다.


-야! 너 진짜 목적지가 있기는 있는 거야?


-잔말 말고 따라만 와. 나도 이러는 건 처음이라 확신은 못하지만... 분명한 건 이론이 완벽하면 실현된다는 거니까.



29 


수이는 병원에서 나온 후 집에서 무릎만 껴안고서 혼잣말을 하고 반쯤 의식을 잃은 아이처럼 지냈었다. 그러다 장마가 끝나자 폭주족들과 어울리기 시작했다. 한 번도 마셔본 적 없던 소주까지 마셨고 매일을 오토바이 뒤에 타고 질주하면서 모든 순간을 잊으려 하며 보냈다. 유로가 없는 모든 순간을 말이다.


그러다 오늘 폭주족 아이들이 수이를 태우고 이 외진 공사장으로 와 자신을 쓰러 뜨리고 강간하려는 순간을 겪고 있었다.


남자아이 하나가 수이의 두 팔을 수이 머리 맡에서 잡고 있었고 두 녀석이 수이의 다리를 각자 붙잡았다. 그리고는 짱인 것 같은 아이가 수이 곁으로 다가왔다.


-놔! 이거 놓으란 말이야. 이 자식들아!


수이가 발버둥을 치려 안간힘을 쓰며 소리쳤다.


유로는 이 모든 날들과 지금의 이 순간을 지켜보면서도 수이에게 "이러지 말아, 수이야" "정신 차려야 해"라는 말 밖에는 할 수 없는 자신이 답답했었다. 그러다 오늘 이런 순간을 맞이하자 격분했지만 그 녀석들에게 발길질을 하고 일권을 날려도 허공을 스치듯 다 지나쳐 버릴 뿐이었다.


-지도령님 제발... 제발 방법을 알려주세요.


-이런 경우엔 빙의하는 수밖에 없다. 


유로는 폭주족 아이들 중 아무 아이 몸에나 들어가 보려고 마구 시도했다. 하지만 빙의란 게 어떻게 하는 건지 도통 되지가 않았다.


-빙의를 하려 해도 너와 기운이 맞는 사람을 찾아야 가능한 거란다. 


마침 그때 멀리서 어두운 기운을 내뿜는 여자아이와 유향이가... 유향이가 보였다.


유로는 반가운 마음만큼이나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유로는 유향에게 달려가 몸을 던졌다. 유로와 유향이 일체가 되었다. 



<다음 편에서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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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


유향은 유로의 장례식이 끝나고 채 일주일이 되지 않아 예전에 머물던 파이트클럽 임시 숙소에 왔다. 파이트클럽 운영자 한 명과 마주 서서 유향은 다짜고짜 재가입을 시켜달라고 요구했지만 왠지 운영자는 절대라는 말까지 써가며 반대했다.


-왜요. 왜 안 받아주는 건데요.


-니 형과 약속을 했다.


-네. 형이랑요... 형은 죽었어요. 저희 엄마 때문에라도 더 여기가 필요하다구요. 


유향은 나름 절실했다. 형이 살아있을 때는 자기가 잠시 잠깐 엇나가도 의지할 데가 있는 것 같았지만 지금은 생계를 이어나갈, 어머니를 모실 대책이 절실했다.


-죽어? 그 녀석이 어쩌다 죽어?


-사고였어요. 철로에 떨어진 아이를 구하다 그만.. 그렇게 됐어요.


-그렇구나. 녀석 남자다운 삶을 살다 갔구나.


-......


그래 형은 유순해 보이지만 정말 상남자였다. 부드럽지만 강한 그 모습이 유향은 배울 수도 없는 진정한 상남자의 모습이라고 유향은 생각했다.


-니 형이 널 빼내기 위해 너 대신 칠전을 벌였다. 여기 다 한 실력 하는 놈들만 모인 거 너도 알 거야. 내 보기엔 니 형은 입식 타격기 하나뿐인데도 불구하고 일곱 명을 모두 쓰러 뜨렸어. 피투성이가 된 채 너 하나 구하겠다고. 


-형이 일곱 명 모두를요.


-널 데려가겠다는 집념 하나가 그런 혈전 속에서도 의지를 꺾지 않은 거라고 생각한다. 그 녀석은 그러고 죽은 거야. 걔가 구한 건 철로에 떨어진 아이만이 아니라 방황하는 동생까지란 거다. 그런 녀석과의 약속은 난 깰 수 없다.


길거리 싸움꾼들의 모임인 파이트클럽에서 탈퇴하려면 쉬지 않고 일곱 명의 고수와 상대해야 했다. 그래서 다들 탈퇴 의사를 밝히지 못했고 칠전을 모두 이기고 탈퇴한 사람이 있다는 이야기도 듣지 못했다. 유향은 그제서야 파이트 클럽에서 자신을 순순히 강퇴시킨 것이 납득이 갔다. 그리고 형이 돌아가신 아버지 보다 더 무겁게 느껴졌다.



22 


-그래 잘 생각했어. 그리 어렵지 않은 일일 거야. 개학할 때까진 아직 시간도 있잖아? 그때까지 이령일 보살피다가 다시 결정할 수도 있는 거니까. 


카페에서 유향과 이령이의 어머니가 마주 앉아 있다. 유향은 처음엔 이령이 어머니가 농담을 하시는 줄 알았다. 고작 고2 여고생을 경호해주는 대가로 그것도 자신처럼 그저 이령이와 같은 동급생인 무경험자에게 그런 고액을 제시한다는 게 선뜻 이해는 가지 않았다. 하지만 그 돈이 얼마간이라도 엄마와 자신의 생계에 보탬이 되리라는 것은 분명했다.


-싸움 밖엔 해본게 없지만 누군가를 지키는 건 처음이지만 최선을 다해 보겠습니다. 


-아니 막 누구랑 싸우고 그럴 일은 없을 거야. 그냥 옆에서 지켜주기만 하면 돼. 어렵게 생각하지 말아. 유향 군.



23


-왜 자꾸 따라와. 성가시게. 


-어쩔 수 없어. 이게 내 일이니까.


이령이는 처음엔 무척이나 성가시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유향이의 행동 하나하나 표정 하나하나를 보며 왜 엄마가 이 어쭙잖은 녀석을 보디가드로 고용했는지 알 것 같았다. 유향의 모습에서 모든 순간 유로가 겹쳐 보였기 때문이다.


-어머!


-괜찮아.


인도에서 유향을 피해 돌아가려다 이령이 인도 아래로 넘어질뻔 했다. 유향이 이령이의 허리를 감싸 안으며 받쳐 들었다. 


이령은 유로의 얼굴을 한 유향이 자신을 안다시피하자 문득 아니 한결같이 떠오르는 유로가 더 생각났다. 


-조심해야지. 어린애냐?


-뭐?... 꺼져! 이 짝퉁아!


이령은 유향이 유로보다도 더 자신을 어린애 취급하자 빈정이 상했다.


-근데 어디 가는 거야. 우리.


-우리? 우리가 어디를 가는 게 아니잖아. 내가 가는 데 니가 따라오고 있는 거지.



24


-여기서 세워 주세요.


이령은 기사가 딸린 자기 전용차를 타는 대신 택시를 타고 이곳까지 이동을 했다. 사실 이곳에 다니고 있던 걸 엄마에게도 아빠에게도 누구에게도 알리고 싶지 않았다. 유향이 따라와 처음엔 당황스러웠다. 하지만 유향에겐 그냥 친구 집이라고 둘러대면 엄마에게 딱히 이곳이 주의해야 할 대상이라고 인식되게 전해지진 않을 것 같았다.


이령이 주택가 대로에서 유향과 같이 내렸다. 몇 걸음 옮기자 마침 얼마 떨어지지 않은 곳에 있는 고풍스런 목조 건축물이 보였다. 마침 그 집에서 검은 투피스를 입은 여성이 나오는 길이었다. 여성은 이령을 보고는 무거운 표정으로 다가왔다. 이령이 인사도 잊고 다짜고짜 질문부터 하려했다.


-자매님.. 저 꼭 여쭤볼 말이 있어요.


-아니요, 자매님. 자매님은 더 이상 이곳에 오지 말아주세요.


-네? 


-자매님에겐 어둠 깊이 드리웠습니다. 더는 우리 모임에서 자매님을 감당할 분이 안계신 것 같아요.


-제가.. 제가 위험한가요?


이령은 자매님의 영적 수준과 실력을 알기에 그 말에 긴장이 되는 것 같았다.


-그렇지는 않아요. 자매님의 행위들은 자매님이 더 잘 알겠죠. 자매님은 세상을 위험하게 할 사람이에요. 우리는 자매님을 우리 자매단의 일원으로 더 이상 인정할 수 없습니다.


-저는 세상을 위험하게 할 생각조차 한 적이 없어요. 저는 그저 행복을 추구하려 했을 뿐이에요.


행복을 추구하려 했다는 이령의 말에 검은 의상의 그 여성이 잠시 미간을 찡그리더니 더는 할 말이 없다는 듯 돌아서려 했다.


-자매님.. 마지막으로 한 가지만 답변해 주시면 안 되나요?


-더는 할 말이 없습니다. 자매님도 이젠 더 이상 질문할 필요도 없지 않나요? 


그리 말하고 검은 옷의 여성은 차갑게 돌아섰다. 하지만 이령은 이미 대답을 들은 것만 같이 환한 표정으로 유향을 쳐다봤다.




<다음 편에서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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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


수이 할머니는 수이 걱정을 하며 뜬 눈으로 뒤척이다 선잠이 드셨다. 그때 꿈속에서 유로가 나타났다.


-할머니. 할머니. 큰일이에요. 수이가 다쳤어요. 빨리 수이 방에 가보세요. 어서요.


-뭐라구. 우리 수이가?


수이 할머니는 유로의 말에 놀라 잠에서 깨었다. 불길한 꿈이다 싶으셔서 대수롭지 않게 여겨서는 안되겠다 생각했다. 수이 방으로 가 방문을 열자 방바닥에 흥건하게 피가 흘러 있었고 수이가 팔에 상처를 낸 채 쓰러져 있었다.


-아이고. 수이야. 수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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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이는 병원 침대에 뉘여 응급실로 실려갈 때쯤 깨었다. 몽롱한 의식으로 힘없이 가늘게 눈을 뜨자 하얀 천정이 보였다. 고개를 옆으로 돌리자 유로가 자신이 누운 침대가 가는 방향을 따라 침대 옆에서 달리고 있는 것만 같았다.


-유로 오빠?


-수이야 괜찮아. 괜찮을 거야. 내가 널 지켜줄게. 무슨 일이 있어도 내가 반드시 널 지켜낼 거야.


수이는 유로의 말에 안심이 돼 다시 스르륵 눈이 감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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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이 소식을 듣고 아침 일찍 멤버들과 고정도 대표가 문병을 왔다가 고 대표가 수이 할머니께 인사를 하고는 심각한 표정으로 떠났다.


-언니 기운 내. 


이연이가 병상에 누워 천정만 바라보고 있는 수이를 보고 무슨 말이든 해 주고 싶었다. 하지만 태어나 처음 겪는 일들에 이연이 역시 당황스러웠다. 도무지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모르겠어서 기운 내라는 한마디를 하고는 수이를 바라봤다. 


효윤이가 무표정하게 천정만 바라보는 수이를 보다가 다급한 마음에 입을 열었다.


-수이 언니, 언니가 리더고 메인보컬인데 이러면 우린 어떡해. 언니가 기운 내고 앞날을 생각해야지.


-지금은 그런 말할 때가 아니야. 효윤아 언니 곧 기운 차리면 다 제자리를 찾을 거야.


-맞아 효윤아. 시간이 지나면 괜찮아질 거라고 우리 아빠도 그랬어.


소미가 효윤을 나무라고 다독이자 선희도 거들었다. 하지만 선희의 마지막 말에 수이는 생각했다. 


=시간이 지나면 괜찮아질 수 있을까? 유로 오빠가 시간이 지난다고 살아 돌아올 수 있다고?


도무지 어떻게 시간이 지난다고 괜찮아질 수 있다는 건지 수이는 도대체 알 수가 없었다.


-얘들아 미안한데 나 눈 좀 붙일게. 너네들도 이제 그만 돌아가야지.


-어. 그래. 언니 좀 쉬어야지. 


-언니 그럼 나중에 또 올게.


-언니, 우린 언니 믿어. 힘내.


이연이와 소미, 효윤이와 선희는 불안한 표정을 애써 감추며 돌아섰다.


M.G.I 데뷔를 기껏 6~7개월 앞둔 시점이라 아이들 모두가 이번 일로 불안해했다. 그래도 평소 수이의 태도가 데뷔에도 가수로서의 삶을 맞이하기 위함에도 얼마나 진지한지를 아는 아이들이었기에 수이에 대한 믿음으로 그 불안을 떨치려 했다. 앨범 재킷 사진까지 찍어두었는데 수이가 자살기도를 하다니 아이들로서는 믿기도 힘들고 받아들이기도 힘들었다. 고정도 대표도 아이들 모두의 부모님도... 어른들은 모두 시간이 지나면 괜찮다고 하니까 소녀들은 그 말을 믿어보기로 했다. 


멤버들이 돌아가자 수이는 눈을 떴다. 밤을 지새운 수이 할머니가 침대 발치에서 의자에 앉아 졸고 계셨다. 


=오빠 내 곁에 있어? 있으면 대답 좀 해 봐. 오빠가 날 구한 거야... 왜 그랬어? 그냥 오빠 곁으로 가고 싶은데. 이젠 모든 게 의미가 없어졌어. 오빠와 함께 일 때는 모든 게 다 살아있는 것만 같았는데 오빠가 떠나면서 모두 죽어버린 것만 같아. 죽음 속에서 나만 살아있는 게 너무 벅차.


수이가 누운 침대 머리맡에 서서 수이의 생각을 듣고 있던 유로는 심장이 깨어지는 것만 같았다. 


-수이야. 난 니 곁에 있어. 그러니까 넌 니 삶을 니 목표를 버릴 필요 없어. 내가 언제까지나 널 지켜 줄 거야. 그리고 넌 너의 삶을 살아야 해. 만질 수는 없어도 나 항상 널 바라보고 있어. 이것만으로도 난 행복해, 힘이나. 그러니까 너도 힘을 내. 죽었어도 난 살아있으니까. 어쩌면 죽음이란 건 마음속에만 있는 건지도 몰라. 모두 죽어버린 것 같다는 그 심정을 이겨내야 해. 내가 널 꼭 다시 살아있는 게 행복하다는 심정으로 만들어 줄게.



20 


금발의 수호천사를 유로가 다시 나타나 달라고 불렀다. 물어보고 싶은 것이 너무 많았기 때문이다. 유로는 한편으론 두렵고 한편으론 분노했고 한편으론 서글펐다.


-그 마법써클이 자연적으로 생기는 게 아니라 누군가의 의례마법으로 만들어지는 거라셨는데. 그렇다면 누군가가 수이를 죽이려고 하고 있다는 말씀이세요.


-그렇다기엔 계속 생겼다 없어지고 생겼다 없어지는 게 좀 의아하긴 해. 단정적으로 말해야 한다면 누군가 악의를 품고 행하는 흑마술이라고 보는 게 맞겠지만 말이야.


-흑마술을 걸고 있는 게 누군지 알 수 있는 방법은 없을까요? 


-우리 권한으로는 없다고 봐야지. 너나 나나 수호해야 하는 대상의 어느 반경 이상은 벗어나지 못하는 게 원칙이니까.


-원칙을 깬다면요?


금발의 수호천사는 부정적인 답변을 했지만 그 대답에서 유로는 오히려 일말의 희망이 보이는 듯했다. 




<다음 편에서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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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


-밤늦게 죄송해요. 이제 그만 가볼게요. 안녕히 계세요.


-고마워, 학생. 조심해서 가. 


유향은 수이를 숙소가 아닌 수이네 집에 바래다주고 수이 할머니께 인사를 드리고 나오는 중이다. 수이 할머니는 늦은 시간이라 여자만 있는 집에서 간다는 걸 만류할 수도 없고 해서 문 밖까지만 마중을 했다.


수이는 유향이 앉힌 소파에서 옆으로 쓰러져 있다가 나가는 유향과 눈이 마주치자 고개를 돌렸다. 


유향은 수이가 걱정됐지만 수이 본인 집에서 수이가 안정을 찾으리라 생각했다. 


-그래도 산 사람은 살아야 돼.


수이 할머니가 수이를 보고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난감해 하다가 꺼낸 말씀이다.


수이는 대답 없이 자기 방으로 들어갔다. 


할머니는 수이가 방문을 닫자 한참을 '쟤는 이제 어쩌나' 하는 눈빛으로 바라보다가 어떤 말로도 위로할 길이 없으리라 생각했다.


-푹 자고 나면 조금은 낫겠지. 


할머니는 혼잣말을 하고 방으로 들어가셨다.


그렇게 빈 공간에 멍한 수이의 심정을 바라보는 듯 유로가 서있었다.



16 


수이는 방의 불을 끄고 침대 위에 비스듬히 앉아 작은 무드 등 조명 옆에서 멍하니 화장대의 거울을 보고 있었다. 그러다 말없이 주르륵 눈물을 흐렸다. 그러다 소리내 웃었다.


=왜 난 오빠와 헤어지려고 했을까? 내가 그날 헤어지려고 하지 않았다면... 내가 그날 만나자는 말을 하지 않았다면.. 유로 오빠도 죽지 않았을 거야. 이령이 말이 맞아. 내가 오빨 죽인 거야. 내가 그런 거야. 


수이의 뒤에서 거울에 비친 수이의 얼굴을 보고 있던 유로는 수이가 그렇게 생각하자 소리쳤다.


-아니야. 수이야. 니 탓이 아니야. 언제나처럼 널 만나러 가는 동안 난 행복했어. 니가 헤어지려 말하려 했다지만 그렇게 됐다 해도 우린 언제나처럼 금방 다시 만났을 거야. 니 탓이 아니야. 니 탓이 아니라고. 


-시끄러우니까 소리 좀 낮춰!


유로 옆에 하얀 슈트 차림의 금발 외국인이 나타났다.


-누구야! 


놀란 유로가 다시 소리쳤다. 


-시끄럽다니까. 누구 귀먹은 줄 알아. 소리 좀 낮추라고. 온 차원이 다 니 외침뿐인 것 같잖아! 도대체 어떻게 한 영혼의 목소리가 이렇게 큰 거야.


파란 눈동자의 금발 외국인이 그렇게 말하자 유로는 진정하고 다시 조용히 물었다.


-도대체 누구세요.


-나도 너처럼 수이를 수호하는 수호천사야!


-네? 그럼 여태까지 어디 계신 건데요.


-너처럼 수이 곁에 있지만 너와 나는 서로 조금 다른 차원의 공간에 있어. 천국과 너희 천당측의 규약으로 너랑 나는 자주 접촉할 수 없어. 하지만 니가 인식하지 못한다고 해도 늘 나 역시 수이 곁에 있어.


-이제까지 계속 수호령이셨나요?


-난 수 세기 동안 많은 사람들을 수호해 왔지. 하지만 수호령이 아니라 수호천사야. 너희와는 급이 다르지.


금발의 수호천사가 턱을 약간 치켜들며 다소 거만한 태도로 말했다. 유로는 그의 거만함이 오히려 다행스러운 심정을 가져다주는 듯했다. 믿을만한 수호천사일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서 말이다.


-그럼 말씀해 보세요. 수이를 이제 어떻게 해야 할까요?


-수이는 지금 평소와 달라. 어떻게의 문제가 전혀 다른 차원에서 이뤄져야 해. 그렇지 않으면 수이가 아주 위험할 거야.


-지금 평소 심정이랑 다른 건 저도 알지만 이주 위험하다는 말씀은.. 도대체 뭐죠? 미래를 보시나요.


-미래의 여러 경로들을 보지만 그것도 모든 미래는 아니야. 하지만 내가 본 미래를 가져오는 건 비단 수이의 현재 심리만이 아니야.


그때 침대에서 일어난 수이가 조금 어두운 무드 등 불빛에 의지해 거울을 바라보며 조금씩 화장대 앞으로 다가갔다. 그 순간 수이의 머리 위에서 원 안에 역삼각형 위 두각을 자르는 듯한 X표가 그려진 마법써클이 생겨났다. 


-저거. 저게 문제야.


유로가 그의 말에 다시 수이를 돌아봤다. 수이 머리 위의 마법써클을 발견한 유로는 다급해졌다. 


-저게 도대체 뭐죠? 저게 수이를 위험에 빠뜨리는 건가요?


-오랜 내 경험으로 봐서 저건 유사 이래 존재해온 마법하고는 조금 다른 방식의 마법써클 같아. 이제까지 매번 저거보다는 덜 위험해 보이는 그저 내적 혼란이나 이별을 불러오는 힘이 느껴지는 마법써클만이 수이 머리 위로 떠오르다가 사라지고 떠오르다가 사라졌었어. 그러다 며칠 전 죽음을 부르는 파멸적인 힘이 보이는 마법써클이 나타나더니 이상하게 그것도 금세 사라지더라구. 근데 오늘만 해도 벌써 저 문양의 마법써클이 두 번째 나타나는 거야.


-나타났다 사라지면 문제가 없는 건가요? 


-그렇지도 않아. 금세 그 힘이 사라지지는 않거든. 마법써클만 사라지면 그 이후 안정 시키는 건 수호천사의 몫이니까. 그리고 니 몫의 일이기도 하구.


수호천사가 말을 마치기도 전에 수이는 화장대 앞에 무릎을 꿇고서 엉성하게 주먹을 쥐고는 손날 부분으로 거울을 쳤다. 거울이 조금 깨지기는 했지만 거울에서 떨어져 나오지는 않자 옆의 화장품을 들고 거울을 쳤다. 


-안돼. 수이야. 뭐 하는 짓이야. 그만둬. 제발 그만 좀 해.


유로가 다급히 소리치고 있을 때 금발의 수호천사가 마법써클을 향해 손가락을 튕겼다. 그의 손가락으로부터 마법써클에 빛덩어리가 던져지더니 붉게 타오르던 마법써클이 한 바퀴 회전하며 파란색으로 바꼈다. 하지만 수이는 행동을 멈추지 않았다. 조각난 거울 조각 하나를 움켜쥐더니 자신의 손목으로 가져갔다. 


유로가 '이제서야 떠오르다니' 하면서 둔한 자신을 탓하며 마법써클을 향해 손바닥을 내밀었다. 그러자 유로의 손바닥으로부터 푸른빛이 외곽을 감돌고 있는 새하얀 빛의 줄기가 터져 나오며 마법써클을 깼다. 그런데도 수이는 눈물을 흘리며 자신의 손목을 그었다. 하얀 팔목에서 붉은 피가 터져 나왔다. 


-오빠, 나도 오빠 곁으로 갈래. 내가 미안하다고.. 이러려고 그런 게 아니라고 오빠한테 꼭 말하고 싶어... 사랑해 유로 오빠.


피가 뿜어져 나오는 팔목을 멍한 채 바라보던 수이는 가만히 그 자리에 누웠다. 그리고 유로와 만날 시간을 기다리기로 했다.





<다음 편에서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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