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Book] IS 지하디스트 그리고 이슬람
곽영완 지음 / 애플미디어 / 201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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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출간한 책이다. IS를 서두로 이슬람의 역사와 세계관, 정체성 등을 그려내고 있다. 책의 부제와 같이 한국인의 시선에서 이슬람을 분석하고 있어 서구의 IS와 지하드에 대해 불편하고 거북해 하는 묘사와는 다른, 우리 입장에서 나름 편향되지 않은 서술을 하는 책이다. 현재는 IS가 그다지 주목받고 있지 않지만 그렇다고 이슬람 세계의 외부에 대한 태도가 크게 달라진 것도 없고 대중의 이슬람과 이슬람 원리주의자들에 대한 시선도 다르지 않으니 읽어보아 나쁠 건 없을 거다. 다만 이슬람의 역사를 다루고 있는 대목이 다소 역사 요약 같은 느낌이라 건조하게 다가온다. 저자의 시선이랄까 해석이 담기기도 했지만 약술하고 있다. 


본서가 이슬람의 지하드에 대한 관점을 접하는 첫 책이었으나 뉴스 등에서 다룬 내용만으로 추정만 한 것과 크게 결이 다르지는 않았다. 하지만 이슬람이라는 어휘의 뜻이 복종과 평화를 의미한다며 시작하는 이슬람의 관점이 처음으로 와닿는 듯했다. 복종, 그건 타자의 자신들에 대한 복종 이전에 신에 대한 복종일테지만 신에 대한 복종이라는 자체가 자신들의 율법에 복종하라는 것이기에 이슬람의 주의가 화합이나 평화와는 거리가 있어 보였다. 그들에게는 "복종하면 평화가 있다 평화로울 것이다"라는 의미도 되겠지만 이슬람에 복종하지 않는 자에게는 어떤 결과가 있는지 과거 참수 당한 김선일 씨의 사례나 이슬람 무장단체들이 점거하는 지역마다 그곳 거주민들이 겪는 피해로도 충분히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이슬람의 세계관은 삶이 종교와 일체화를 이룬다고 해석해도 다르지 않을 것이다. 그들은 알라에게 복종해야 한다는 근본주의가 있기에 샤리아(율법) 중심으로 세계와 사람들을 통제하려는 것 같다. 다만 그러한 통제에 복종하는 사람들 곧 무슬림으로 개종하는 사람들에게는 같은 민족과 다름 없이 대한다는 기본적인 룰은 있는 것 같다. 그렇기에 코란을 믿고 아랍어를 사용하는 모든 사람들과는 같은 이슬람으로서 민족에 준하는 동질감이랄까를 갖는다고 한다. 


어떤 사람들은 이스라엘-팔레스타인 문제에도 중동 각국의 계산이 다를 것이라 가볍게 말하는 사람들도 있는데 물론 각국 수반이 지닌 계획이 다르다고 해도 팔레스타인이 공격받을 때 그들 중 공적인 발언이거나 공적인 결정으로는 팔레스타인의 입장을 두둔하고 지지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런 기본 원칙이 어긋날 때 그들 각자의 자국국민들에게서 신뢰와 지지를 잃을 수 있기 때문이다. 이건 근본적으로 같은 무슬림(신앙인)이라는 데서 부터 동일시를 시작하고 공동체로서 동일시를 하는 대중의 집단의식이 있기 때문일 것이다. 이게 현재의 이스라엘-하마스 충돌이 중동 전체로 확장되고 세계대전으로 확장될 우려가 있는 현실에서는 부정적일 수도 있는 요소 같기도 하지만 자신의 집단이나 자기 나라가 피해자의 입장이 될 때 두둔하고 지원해줄 다수국가의 대중이 있다는 게 피해자의 입장에 서는 사람들에게는 참으로 힘이 될 거라는 생각도 든다.


다만 그들의 이슬람 원리주의는 타자와의 분열, 이성간의 차별, 과격한 행동주의 등으로 표출되고 있기에 긍정적인 면을 보려해도 자연스럽게 부정적인 면이 지적되는 경향을 갖는다. 이슬람 원리주의자들이 보여주는 폭력성과 여성 인권의 궤멸을 보면서 저 종교와 저 민족(?)들과 공존하는 길이 쉽지 않겠다는 생각이 깊이 들 때가 많았기 때문이다. IS가 중동에서 격렬히 활동하던 당시 보여주던 폐해들, 다른 이슬람 무장단체들이 보여주는 폐쇄적이고 폭력적이고 야만적이던 양상들은 상세히 서술하지 않더라도 많은 사람들의 뇌리에 남아있을 것이다.


그들은 왜 그토록 타자를 파괴하고 차별을 일상화 했을까? 그건 이슬람 원리주의 자체가 기독교 원리주의와는 다르게 내재적 문제를 인식하고 타파하려는 방법에서 시작된 것이 아니라 애초부터 외부세력과의 충돌에서 비롯되어 자신들의 것만을 신봉하고 고수하려는 움직임이었기 때문이라고 한다. 애초에 갈등하고 상대를 배격하기 위한 운동이 이슬람 원리주의인 것이다. 몰론 자신들 스스로는 결속하기 위한 방식이겠으나 그 결속한다는 움직임이 어떤 세계상황을 불러오고 그들 자신의 자국민들을 어떻게 대하고 죽여왔는지 알기에 더더구나 수긍이 안되는 주의가 아닌가 싶다. 


이스라엘-팔레스타인 문제를 바라보기 위해서는 보다 다양한 사항들을 고려해야 하겠지만 본서를 통해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오는 사안은 이슬람과 그 세계관이었기에 우선 그에 대해 간략히 옮겨보았다. 본서는 2015년 출간된 책이고 그사이 중동에서의 이슬람 원리주의자들 다시 말해 이슬람 무장단체들의 세력은 변천이 다소 있었고 본서의 타이틀인 IS는 언론에 노출 되는 기세가 한풀 꺽였기에 본서를 읽어볼 생각은 그리 들지 않을 수도 있다. 그럼에도 이 책을 선택한 이유는 분량이 작고 그런데도 불구하고 이슬람의 다채로운 이야기를 담고 있어 보이는 목차 때문이었다. 앞서 말했듯 본서에서는 이슬람의 기원, 세계관, 역사 등 다양한 이야기를 담고 있기는 하지만 분량이 보여주듯 약술하고 있는 경향이 있으며 그 해설이 무척이나 상식적인데서 머무르는 단점이 있다. 그럼에도 빠르게 이슬람에 대한 정보를 얻고 싶은 분들에게는 어느 정도 유익이 있으리라 판단되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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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거벗은 세계사 : 전쟁편 - 벗겼다, 끝나지 않는 전쟁 벌거벗은 세계사
tvN〈벌거벗은 세계사〉제작팀 지음 / 교보문고(단행본) / 202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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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거벗은 세계사를 경제편으로 시작해 사건편, 잔혹사편에 이어 전쟁편까지 4권째 읽었는데 역사 분야에서는 이만한 저작이 없는 것 같다. TV 프로그램으로도 유명세를 떨치고 있지만 방송은 자주 보지는 못했다. 방송은 방송만의 특색이 있을테지만 책도 활자만의 매력이 있는터라 책으로 읽는 재미도 쏠쏠한 편이다.

 

본서는 무엇보다 우크라이나 전쟁에 관한 내용과 이스라엘-팔레스타인 전쟁에 관한 내용, 이 둘에 대한 궁금증이 일어 더욱 관심이 갔던 책이다. 하지만 읽고 보니 그보다 오히려 아편전쟁, 메이지 유신과 소말리아 내전, 아프가니스탄 전쟁, 유고 내전이 인상적이었다.

 

아편전쟁은 영국이 중국의 차를 수입하며 금전적 손해가 막대해지자 인구 대국인 중국과의 무역임에도 불구하고 무역에서의 손실을 회복할 수 없으니 아편이라는 마약을 중국에 수출하여 손실을 수익으로 되돌리려 하고 중국이 이에 저항하며 시작된 전쟁이다. 당시 이 전쟁을 개전하려 할 때 영국 국회에서도 이긴다 해도 이보다 더 불명예스러운 전쟁은 없다며 반대하는 여론도 컸다고 한다. 인류사에 있어 이익과 윤리 사이에 갈등이 있을 때 인류가 과연 윤리를 이유로 이익을 볼 기회를 철회한 적이 있었는지 의심스럽기도 했다. 물론 그런 역사가 있었다고 해도 역사 사료로 남아있지 않다면 후세에서 알 도리는 없겠지만, 남아있는 역사 속에서 보이는 인간의 모습이, 이로움 앞에 도리가 사라지는 인간의 역사가 씁쓸하기도 하다.

 

메이지 유신은 일본의 개화가 우리 역사에 준 파급을 볼 때 주목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일본은 청나라가 유럽 열강들의 요구에 저항하다 본 피해들을 익히 알고 서구의 개방 요구에 저항 없이 개화의 길로 들어섰다. 그들은 너무도 열렬하게 서구의 문화를 수용하고 빠르게 서구화되었다. 무엇보다 일본은 전쟁 이후 전쟁배상금으로 이익을 크게 볼 수 있음을 깨닫고는 전쟁에 연연하게 된다. 그러나 그보다 우리나라 입장에서 주목할 건 일본의 개화 과정에서 대두된 정한론이다. 물론 정한론이 있기 전에도 임진왜란이 있었고 정유재란이 있었지만, 근대 이르러 일본이 정한론에 주목하지 않았다면 그리고 전쟁에 연연하게 되지 않았다면, 우리나라와 동아시아에 이런 참극들은 없었을 것이다. 또 야스쿠니 신사와 신사 참배에 대해서는 전범들이 합사되어 있다는 정도는 알고 있었지만 태평양 전쟁을 일으킨 도조 히데키, 버마 대량 학살을 주도한 기무라 헤이타로, 난징 대학살을 자행한 마쓰이 이와네 등 A급 전범만도 14명이 합사되어 있다는 건 처음 알게 되었다. 일본 정치인들의 신사 참배가 우리나라 입장에서만 논란의 대상인 것이 아니구나 하는 걸 새삼 느꼈다. 일본의 과거와 현재가 주는 국제적인 파급이 큰 것을 보고 시절의 괴로움만이 아니라 시절의 화해를 이끌어내야 할 것도 위정자들의 판단과 행동에 따른 거란 걸 되새기게 되었다.

 

이스라엘-팔레스타인 전쟁은 영국의 팔레스타인 지역에 대한 원거주민들과 유대인들에 대한 부동산 사기가 발단이 되었다. 종교 간의 지역 간의 갈등 국면이 드러난 것이기도 하지만 결국에는 살아남고자 하는 사람들의 바람이 담긴 거란 생각도 들었다. 대다수 기독교도들은 예수 재림이라는 기독교 예언이 완수되기 위해 이스라엘이 중동 각국과 전쟁을 치르고 중동을 장악하기를 바라고 있기도 하다. 하지만 그러기 위한 전제가 무수한 사람들의 죽음이라니 그들이 과연 천국을 바라는 것인지 지옥을 바라는 것인지 의심스럽기도 했다. 천국이 오라고 셀 수 없는 사람들의 죽음을 바란다는 게 말이 되는 건가, 천국을 바래 다수가 죽으라는 게 과연 천국을 불러온다는 사람들의 요구인가 싶다. 지옥도 악마도 인간 세상과 인간인 것은 아닐까?

 

현재 하마스가 이스라엘에 테러를 자행해서 이스라엘은 보복 작전 중이다. 하지만 이스라엘이 가자지구를 비롯해 서안지구에 800km에 이르는 장벽을 설치하고 그곳에서 사람들과 물자가 왕래할 수도 없게 만들어 팔레스타인인들이 UN의 구호물품에만 의지해 살아가도록 만든 현실은 인간이 만든 지옥도가 아닌가 싶기만 하다. 이번 하마스의 테러 후 사망자들은 팔레스타인과 이스라엘이 비등했지만, 과거에 그 둘 간의 격돌에서는 대개 이스라엘 사람이 13명 죽을 때 팔레스타인인들은 그 장벽이라는 감옥 안에 갇힌 채 공격받아 이스라엘 사람 13명의 죽음에 대한 댓가로 800명 이상씩 죽어 나갔다. 물론 지옥에서 벗어나자고 다른 이들에게 테러를 행하는 게 정당화될 수는 없겠지만, 우리 선조가 과거에 행한 도시락 폭탄이나 저격도 타자의 입장에서 보면 테러다. 이렇다 보니 테러리스트의 심정이 이해가 가지 않는 바가 아니다. 더군다나 팔레스타인 사람들이 처한 상황을 보면 말이다. 되려 이때를 기회라며 예수님 오시게 확전되고 세계대전 일어나라는 일부 광신도들이 더 심각한 정신병자들로 보인다.

 

소말리아 내전은 여느 갈등 국면과 다르지 않다. 하지만 UN군과 미군의 참여도 무용지물이며 이 사태가 소말리아의 해적이 활동하게 된 계기가 된 것이 놀랍기도 했다. 외국 어선들이 대대적으로 어종을 독점하다시피 어획해 가는 것도 모자라, 부패한 정부가 자기들 바다에 외국의 폐기물들을 버리게 허가했고, 그로 인해 소말리아 어부들이 해적이 된 과정이 너무 소설 같기도 영화 같기도 개그 꽁트 같기도 했다. 이들도 처음에는 외국 대형 어선들을 협박해 소말리아 바다에서 나가도록 한 게 다였다고 한다. 그러다 외국 어선의 승선자들을 납치해 몸값을 요구하니 그게 돈이 된다는 걸 알고부터 전문 해적들이 어지러이 일어났다고 한다. 이제는 이들의 해적질이 국가 GDP에서 마저 절대적인 역할을 차지하기 시작했다. 알고 보면 영국에서도 엘리자베스 1세 여왕 시절 해적을 지원하며 국가의 부를 강화했다는 기록이 있다. 그러나 이 시대에 무슨 해적이냐 싶을 것이다. 하지만 동시대를 살아가고 있다 해도 각 국가의 문명과 문화 상황은 동시대이기만 한 게 아니다. 인간으로서 이해하기 쉽기 위해 그걸 평준화할 수 있다면 좋겠지만 아직은 그러한 차이를 인정하기도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아프가니스탄 전쟁은 생소한 아프가니스탄이 그토록 열강들의 침략에 강한 나라였구나 하는 걸 알 수 있는 계기도 되었고 베트남전과 같이 미국이 이익보다는 손실을 더 남긴 전쟁 중 하나라는 인상을 남겼다. 오사마 빈 라덴을 처형한 건 미국이 역사를 정리하는 기회였겠지만, 아프가니스탄 전쟁 사이 중앙아시아 상황은 무엇 하나 달라진 게 없지 않나 싶었다. 모자헤딘, 탈레반 등에 대한 대중적 인식만 강화해주었을 뿐인 전쟁이었다. 무엇보다 의문스럽고 부러운 건 열강과 패권자의 영향을 받지 않거나 쉽게 떨쳐내는 아프가니스탄의 역사이다.

 

유고 내전은 사실 홀로코스트보다 더 잔인하고 참혹하게 다가왔다. 홀로코스트에 대한 인식은 있는데 왜 유고 내전에 대한 인상은 그만 못했는지 모르겠다. 현대사에서 민족 간의 갈등이 이렇게까지 얽혀 파국적으로 흘러간 나라와 민족도 더는 없을 것 같다. 갈등하는 국가들과 민족들은 이 역사에서 교훈을 얻어야 하지 않나 싶기도 하다. 그리고 인류에 대한 정의와 사유를 더 깊이 고민하고 더 나은 역사를 만들기 위해 우리가 간과하고 있는 건 없는 건지 다시 생각하게 하는 역사이다. 우리 모두가 역사를 통해 교훈을 얻을 수 있어야 할 일이다.

 

[벌거벗은 세계사] 시리즈는 역사를 다루다 보니 누구라도 가볍게 읽으며 깊은 교훈을 얻을 수 있는 책이기도 하다. 읽어본 모든 편이 그랬지만 전쟁편도 여러 감정과 함께 배움을 가져다주었다. [벌거벗은 세계사] 시리즈 전체가 시간을 아깝게 만드는 책은 아니니 어느 편이라도 권해드리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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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화경과 신약성서
민희식 지음 / 블루리본 / 2007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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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이전 [성서의 뿌리 신약편]이 신약성서 내용의 원전을 중동지역과 중앙아시아에 뿌리를 둔 신화들에서 근거를 찾았던 것에 연장선상에 있는 책이다. 이번에는 신약성서가 불교 경전들을 표절했다는 것을 하나하나 불교 경전들에서 근거들을 제시하고 있다. 다만 중반 이후부터는 [법화경]이라는 불경에 대해 학술적이며 신앙적 차원에서 해설해주는 내용이다.

 

본서는 [성서의 뿌리]시리즈를 집필하고 나서 [예수와 붓다]라는 책을 집필한 이후 그 둘을 정리하는 차원에서 출간한 책 같은데 [예수와 붓다]는 아직 읽어보지 못했지만 본서 내용을 근거해 생각을 정리해본 것이다. 본서에서도 기존의 미트라 신앙, 조로아스터교의 교리가 구약과 신약에 특히 신약의 성립과 카톨릭 성립에 끼친 영향을 재삼 언급하고는 있다. 전작들(성서의 뿌리 시리즈)에서 구체화해 설명한 내용이 그것이었다.

 

다만 본서는 알렉산드로스 대왕 즈음부터인 기원전 400~300년 즈음부터 불교가 그리스를 비롯해 유럽 전체에 성행했으며 당시 유럽의 영향으로 중앙아시아와 인도의 미술이 영향을 받으며 조성된 불상들을 이후 기독교에서 그대로 차용해 예수상과 성모상, 성모자상 등이 불상의 영향을 받다 못해 그대로 표절한 사례들을 전하고 있기도 하다. 그리고 무엇보다 예수 이전 시기의 유럽 불상들이 유물로 출토되는 현상은 무엇보다 놀랍고 예수가 당시 성행했던 불교의 영향을 받지 않을 수 없었으리라 생각되기도 했다.

 

다만 본서에서는 예수의 마지막 말인, 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 ‘Eli, Eli, lama sa-bach-thani'가 불교 진언인 Arya, Arya, Lama samyak sam bodhi를 예수의 제자들이 곡해하고 자기들 들린대로 옮긴 것이라고 주장하기도 하고, 갑작스럽게 예수의 불제자 시절의 스승이라며 스님 이름이 등장하기도 한다. 하지만 이런 수위의 주장을 하려면 전거를 제시하고 그 전거가 명백히 믿을만한 사료인지부터 검증했어야 하는 게 아니었나 생각되기도 했다.

 

본서를 좀더 신뢰하거나 부정하기 위해서는 저자의 전작인 [성서의 뿌리] 시리즈와 [예수와 붓다] 그리고 다른 저자분의 [예수의 마지막 오딧세이]라는 책을 읽어봐야 할 것 같다. 그러기에 문제가 있다면 [예수와 붓다]는 도서관에서라도 찾을 수 있지만 [예수의 마지막 오딧세이]는 도서관에서도 찾기 쉽지 않을 지경으로 절판되었다는 게 난점 같다. 예수의 불교 수행설이랄까 불제자설이 근거가 있다면 어떤 사료에 의해서인지 어떤 고고학적 근거들이 있는지 알 수 있는 자료가 절실하지 않나 싶다. 그 책의 저자분은 목영일 님으로 서울대 출신이자 뉴욕대 공학박사 출신이며 국방연구소를 거쳐 UC버클리 초빙교수이자, 유네스코 아태지역 에너지 사무총장을 역임하고 전국과학기술인협회 이사장이기도 한 분으로 대툥령표창, 국무총리상, 국방과학상을 수상하기도 한 공학자인 분이다. 그분이 쓰신 책이라 문과적인 창의성보다는 이과적인 사실 근거한 사고를 담은 책이리라는 믿음이 다소 간다. 그래서 구하기 다소 어렵겠지만 나중엔 꼭 읽어봐야겠다고 생각 중이다.

 

본서에서는 삼위일체설, 천사와 악마, 천지창조, 종말, (삼일 만에) 부활, 구세주 탄생과 사명(동정녀에서 태어나, 12세에 집을 떠나 30세에 강에서 신의 계시를 받고, 12제자를 이끌고 기적을 일으키며 새로운 메시지를 전한다는 미트라교의 신화를 기독교가 차용하고 있다), 선한 목자라는 표현까지 조로아스터교(미트라교) 교리를 기독교와 유대교가 그대로 표절하였다는 내용을 간략히 언급한 후 본격적으로 기독교가 불교 내용을 표절한 것을 나열하는데 이 책에서 각략히 축약한 도표로만도 28가지의 내용 표절이 있다.

 

-수태고지, 아기예수 경배, 신전에서의 12살 예수, 예수 세례, 광야에서 시험에든 예수, 물 위를 걷는 예수, 우물가의 사마리아 여인, 빵과 물고기의 기적, 돌아온 탕아, 가난한 과부의 헌금, 간음한 여인, 산상수훈, 유다와 예수를 저버린 제자들, 고향에서의 푸대접, 평등한 사랑, 좋은 열매 나쁜 열매, 세례자 요한, 말세, 거짓 선지자 출현, 유아학살과 도피, 가난한 사람을 돕는 것이 나를 돕는 것, 내가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라, 하나님의 나라는 너희 안에 있느니라, 진정한 보물, 하나님과 재물은 동시에 섬길 수 없다, 의식주를 걱정말라, 예수의 변용, 내가 세상 끝날 때까지 너희와 항상 깨어있으리라-

 

이렇게 예수의 일화들과 예수의 가르침, 예수가 든 비유 중 대표적으로 28가지에서 각 불교 경전들이 근거가 되었다며 근거가 되는 불경들을 나열하고 그 이야기를 소개하고 있다. 물론 이에 대해 칼 융이나 분석 심리학자들은 모든 신화에는 원형이 있기 때문이라고 단정하겠지만 이미 이전 이야기의 원작자과 이후의 이야기들의 작자 사이에 서로 만날 기회가 있었다는 현실을 부정한 채 원형에서만 원인을 찾을 수는 없지 않은가 싶다.

 

이미 예수 시대 이전에 유럽 전역에 불교는 성행했다는 게 유적과 유물로도 밝혀지고 있으며 예수 당시에는 불교가 상식인 유럽과 중동이었는데 이스라엘의 예수가 영향을 받지 않을 수는 없는 것이다. 예수가 불제자였다는 것은 명백한 증거를 제시하지 않는다면 억측이라고 할 수 있는 문제지만 신약성서의 내용들이 불교경전들을 표절했다는 건 합리적인 의심을 품을 만한 지적이지 않은가 싶다.


(그리고 제가 간과하고 넘어간 대목을 다른 님께서 언급해주셔서 첨가하는 내용이다. 기독교의 장로, 집사, 마귀, 천사라는 표현도 불경에서 표절해간 내용이란 것도 본서의 내용 중 하나이다. 기존의 한문 불경이 빨리어 불경의 내용을 한문으로 번역하는 과정에서 차용한 용어들이기는 하겠지만, 그리스도교 역사 보다도 오래된 불교의 용어들을 아무 꺼리낌없이 표절한 그리스도교의 행태가 어이없기도 하다. 이제는 장로와 집사도 마귀와 천사라는 한자 표현도 천주교와 특히 개신교의 원래 용어인줄 아는 사람들이 대다수일 거라 생각하니 이미 언급한 불경을 표절한 내용들까지 보면 이 종교는 표절이 아니고는 성립될 수 없었던 종교인가 하는 생각마저 든다.)

 

전반(신약의 근거는 무엇인가)과 후반(법화경 해설)이 명확히 나눠지는 책이니 전반부의 내용은 무신론자든 타종교인이던 비신앙인이던 기독교 신앙인이던 읽어볼 가치가 있는 책이라고 말씀드려도 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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탄허록 - 미래사회를 이끌어 갈 주인공들에게 남긴 100년을 내다본 지혜 모음
탄허 지음 / 휴(休) / 2012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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탄허스님의 미래예언을 기대했는데 불교철학과 그분 사상이 담긴 책이다. 탄허스님의 미래예언은 다른 책을 찾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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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곤의 연대기 - 제국주의, 세계화 그리고 불평등한 세계
박선미.김희순 지음 / 갈라파고스 / 201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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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곤 지역의 가난이 빈곤이 어떻게 지속되고 있는지뿐만이 아니라 언제부터 어떻게 빈곤이 시작되었는지를 역사적으로 깊이 들어서며 파헤치고 있다. 아프리카와 신대륙 개척이란 이름의 침략에서부터 산업혁명과 식민지들의 독립까지도 연계된 침탈과 불공정 무역이 어떻게 각국 간의 불평등을 야기하고 지속시키게 되었는지 기술하고 있다.

 

현재까지 이어져 오는 불평등과 빈곤이 드러내는 세계상은 역사와 함께 인류가 발전해 왔다는 관점이 얼마나 허무맹랑한 시각인지를 적나라하게 보여주고 있다. 노예시장부터 삼각무역과 산업혁명까지 대부분의 사람들이 경제개척의 시대로 인식할 그 시대는 철저한 착취와 불평등이 확장되는 시대였고 이후의 빈곤이 자리 잡는 시작이기도 했다. 브레턴우즈 협의 이전에 이미 케인즈는 각국의 불균등한 무역에서의 문제를 해결해줄 대안을 제시하기도 했다고 한다. 어쩌면 공정무역이라는 현대의 시도보다도 더욱 적절한 대응이었을지도 모를 대안은 미국 정부의 거절로 폐기되었다.

 

자원의 저주라는 걸 해석하려는 시도도 우스웠다. 원자재를 수출하는 나라는 가공품을 수출하는 나라와 달리 생산 시기에 내년도 생산량을 예상해야 하기에 해당 시기가 되면 수요의 양상이 바뀔 수 있는 것이라 수입에 악영향을 받을 수 있다고 설명하는데, 가공품이던 원자재건 농작물이 아닌 다음에야 해당 시기의 수요에 생산량을 조절하면 될 일이다. 원유 생산의 경우 그 산출량을 생산국가들이 통제함으로써 손해를 볼 이유가 없다는 것으로도 앞서 논리를 반박할 수 있을 것이다. 더욱이 사다리 걷어차기라는 것을 보면 보호무역으로 자국 산업을 육성한 이후에 자유무역을 통해 다른 나라를 압박해서 불공정 교역으로 이익을 본 열강들을 보아도, 기준을 만드는 자들이 이익을 독점하고 있는 것이 세계상이라 판단되었다.

 

임금이 싼 나라에 가서 값싼 노동력으로 생산을 하다가 해당 나라의 임금이 다소라도 오르면 더 싼 임금을 주고 노동력을 착취할 수 있는 나라로 이동하던 바도, 이제는 AI와 로봇 기술의 발달로 반영구적 노동력인 AI와 로봇이 거의 모든 노동력의 근간이 될 것이기에 갈등의 요소도 되지 않을 시절이 오고 있다.

 

빈곤국의 환경을 파괴함으로써 환경 비용을 빈곤 국가에 전가하고, 국제경제기구들의 지원으로 불균등한 자원과 노동력의 착취를 하며, 민영화를 통해 빈곤 인구가 복지와 의료와 교육의 기회를 박탈당하는 시대를 만들어낸 것이 개척시대, 산업화시대를 거친 현재의 양상이다. 본서의 1장부터 15장에 이르기까지 이어지는 빈곤이 양산된 역사와 지속되고 있는 현재까지의 연대기가 인류의 진면목을 이야기하는 것 같아 숙연했다.

 

하지만 앞으로의 시대는 다를 것이라 믿기에는 이 시절까지 인류사와 이 시절의 지배층이 보여주는 미래상이 암담하기만 하다. 인류가 만들어온 암흑의 끝에 이르러 인류는 자성하고 참회하지만 다른 미래를 가져오기엔 인류의 내일이 암담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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