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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즈덤하우스 정기서평단 #위뷰 1기로서 #도서제공 을 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
본서의 원제는 [Should We Go Extinct?: A Philosophical Dilemma for Our Unbearable Times]이다. 나로서는 답이 나왔다고 생각하고 그다지 딜레마도 아니라고 생각한다. 이 책의 한국어 부제는 [더 나은 미래를 위한 철학적 사고 실험]인데 부제에서 이미 저자 토드 메이 씨의 입장이 표명되어 있다.
이 책은 인류 멸종을 논하는 무거운 주제의 책이지만 서술은 너무도 대중 친화적이다. 저자가 [굿 플레이스]라는 시트콤의 철학 자문을 맡았었다고 하는데 그 시트콤을 보신 분들은 알겠지만 너무도 쉽게 딜레마를 불러오면서도 대중적이다. 그 시트콤과 같은 분위기의 책이라고 보면 된다.
저자는 본서에서 인류가 멸종해야 하는 이유를 보여주고 바로 이어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류가 존속해도 될 이유를 제시한다. 다시 그럼에도 부정적인 견해의 근거를 제시하고 다시 또 그를 부정하며 이런 순환이 이어진다. 이 리뷰에서는 저자의 입장 전환을 따르기보다 상반되는 입장을 각각 나열해야 할 것 같다. 나에게는 저자와 같은 필력과 위트를 따를 재능이 없으니 어쩔 수 없는 일이다.
인류 멸종을 지지하는 입장에 대해 저자는 공리적 입장에서 논지를 펼친다. 인류 본인이 이미 행복하지 않으며 인류는 공장형 축산과 산림 파괴를 비롯한 환경 파괴로 인류 자신뿐만이 아니라 타 생명체들인 동물들에게 마저 불행과 고통을 전파하고 있다는 이유다.
인류 존속을 주장하는 입장에 대해서는 인류는 이성을 가진 존재이니 무엇보다 존재 가치가 있고 이를 종차별이라는 관점에서 본다고 해도 타 동물군과 자연에 대해서는 적절한 대응으로 이들에게 미치는 해악을 줄이면 된다는 것이다.
저자는 이 단순한 이야기를 철학적 논변으로 거듭 전제를 반박하고 그 반박을 반박하는 과정을 반복하는데 나는 이 책은 하나의 주제를 유의미하게 던지는 자체로서의 의미가 더 큰 저작이 아닌가 싶기도 했다. 너무도 심오한 주제인데 분량이 너무 짧은 것만이 아니라 서술의 관점 또한 동시대에만 한정되어 있는 게 아닌가 싶기도 했다. 이보다는 더 깊은 서술이 가능한 주제의 책이 아닌가 싶었다.
인류가 행복하지 않은 이유만으로도 이 시대의, 서로를 엿보며 열등감에 쩔어가다가 살인도 서슴치 않는 사람들, 타인의 반응 때문에 자신의 감정을 속이고 자기 입장을 드러내지 못하는 것이 극대화된 사람들, 서로 분열하기가 극한이라 남녀까지도 대립하는 시대상, 황금만능주의와 승자독식에 찌들어 타인을 인신매매하고 죽여 장기 적출도 거대 사업이 되는 이 시대상은 인류가 멸종해야만 하는 당위성을 이야기해주는 것이 아닌가 싶다.
인류의 역사를 보아도 중국 진나라 장수 백기는 포로 40만 명인가를 묻어 죽인 것으로 알고 있으며 중국사에서 이런 규모의 인명 살상은 적지 않게 반복되었다. 예수가 사랑을 전파하고 간 서양에서는 그를 믿는다는 사람들이 당시 유럽 인구의 3분의 1을 마녀사냥으로 죽였다. 그리고 대항해시대의 신대륙 원거주민들에 대한 살상과 폭력과 잔혹 행위도 인간의 실상을 말해준다. 세계대전 시기 일본군의 731부대 실험이나 위안부라는 이름의 성노예 행위 그리고 중국에서 그들이 행한 난징 대학살, 일본에서의 관동대지진 당시 조선인들에 대한 학살 그리고 나치가 행한 홀로코스트 등은 인류가 과연 존속되어야 할 정도로 선한 존재인가 의문이 인다.
현대에도 장기 적출을 위한 납치로 경악스럽지만 20세기에 미국 정부가 군인들과 일반인들을 대상으로 살인병기로 사용하려 최면과 마약을 이용해 세뇌했다는 [MK 울트라 프로젝트]에 대한 이야기가 음모론으로 알려졌으나 21세기 되어 사실로 밝혀졌다. 20세기에도 후반에 미국 흑인들을 대상으로 매독을 전파해서 이 극도의 전염병이 전파되는 과정을 추적했다는 것이 음모론으로 돌았으나 이 또한 21세기가 되어 미국 정부 산하 미질병청에서 승인을 받고 행한 실험인 것이 사실로 밝혀졌다. 개인주의적 관점으로 사건을 보는 미국인들은 이것이 한 질병청 관리이자 의료인의 개인적인 도덕성 문제이자 매드사이언티스트의 그릇된 판단에 기인한 범죄로 보며 대중적 담론에서 묻히게 되었다. 하지만 모든 인종의 여성이 흑인 남성에게 성적으로 호의적인 시대 상황에 이 실험이 흑인 사회만을 향한 실험이었다고 생각하고 미국 시민들이 문제의식 없이 넘어가는 자체가 이해가 되지 않는다. 미국 시민 전체에 대한 미국 정부 차원의 질병 전파 과정을 모니터링 하는 실험이었다는 것이 사실일 텐데도 말이다.
한국도 선감학원(서울 경기 지역)과 형제복지원(부산 경상도 지역)이라는 어린이를 아무나 잡아다가 성적으로 유린하고 폭력으로 노동력을 착취한 역사가 있다. 21세기의 한국 전라도 신안이라는 곳에서는 염전 노예라고 다른 지역 사람들을 잡아다 노예로 만들어 십수 년을 무임금으로 노동력을 착취하기도 했다. 그걸 전라도의 법원에서 관행이라며 집행유예를 판결한 판례도 있다. 전라도에서는 전국에서 시신으로 발견되는 숫자보다 더 많은 숫자의 시신이 매해 발견되고 있고 한국의 전국 곳곳에서 머리 없는 시신과 상반신 없는 시신들이 발견되고 있는 것이 현재의 대한민국 현실이다.
한국 한해 실종자 수는 7만 명 이상이고 중국은 한해 100만 명이 실종되고 있다. 미국에서는 밀입국자들 자녀 수만 명이 실종되었다. 한국에서 길거리를 가는 여고생을 마구 폭행해 차에 태우는 남자들의 모습이 감시카메라에 찍히기도 하고 중국에서는 아이를 안고 가는 엄마에게서 순식간에 아이를 빼앗아 차에 싣고 사라지는 남자들의 모습이 감시카메라에 찍히기도 하는 세상이다.
21세기 초에는 한 중학생이 게임을 하다가 사람을 죽여보고 싶다며 자기 초등학생 동생을 난자해서 죽인 사건이 있었고 자기 아이를 고층 아파트에서 창밖으로 던진 엄마도 있었다. 사회생활이 여의치 않던 20대가 사회와 타인에게 적의를 품고 서울 번화가 한복판에서 스포츠 경기를 즐기듯 마라톤을 하며 아주 먼 거리 동안에 지나가는 자기 또래의 남자들을 마구 찔러 죽인 사건이 있었던 건 지금으로부터 몇 해 되지도 않았다. 돈이 이유인 사건들은 모두 배제하고 언뜻 기억나는 충격적인 사건들만도 이렇다.
정치가의 범죄나 특정 정치인이 타국 조직범죄자들과 연루되었을 수도 있을 사건들은 현재 법들이 말할 수 없는 시대를 만들어 말하지 않는다. 직위나 계층을 막론하고 모든 인류가 문제이다.
인류 문명은 실패한 문명이다. 개선의 가능성도 없다. 인류는 멸종하는 것이 낫고 이것만이 지구가 개선되는 길이다. 누군가는 말할 것이다. ‘네가 뭔데 그런 판단을 하느냐’고 하지만 그건 누구나가 판단할 수 있는 일이다.
과거에 한국에서는 친아버지와 계모에게 맞아 늑골이 부러지고 온몸이 멍투성이로 죽은 아이가 있었다. 그 아이는 아직 미취학 아동이었고 온몸에는 다리미로 지진 자국과 담뱃불로 지진 자국이 있었다. 동급생들에게 폭행당하고 강간당한 채 음부가 지져진 채 죽은 여학생도 있었다. 그 여학생이 중학생인지 고등학생인지도 기억나지 않지만.
한 해 중국에서는 27만 명에서 34만 명 정도의 어린이가 실종되는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그런데 세계기구 산하 기관의 중국 장기매매에 대한 조사에 의하면 전 세계 어린이 간의 이식 사례는 모두 합해야 한해 1000명인데 중국은 한해 3000명이다. 중국의 장기 적출 사례를 조사한 기록을 보면 중국에서 망명해온 군인과 의료인들이 보고하기를 태어난 그날 아기 부모에게 사망했다고 거짓으로 통보하고 바로 아기를 죽여서 장기를 적출한 사례도 있다고 한다. 아기던 어린이던 장기를 적출해 성인에게 이식하면 두세 달 사이에 성인의 장기 크기가 된다는 것이 의료진들 증언이다. 이런 실정이라 러시아의 푸틴 대통령이 중국에 방문해 시진핑 중국 주석을 만나 장기만 새걸로 바꾸면 영생할 수 있다고 말해 세계적 논란이 되고 러시아 대통령실 대변인이 이에 대해 해명까지 했던 것이다.
상상해 보라. 부모에게 학대당하던 아이가 집을 나서서 힘없이 걷고 있을 때 한 아주머니가 다가와 손을 잡아주는 모습을. 그 아이는 따듯한 손길에 이끌려 자신이 처한 현실에서 벗어날 수 있기를 바라며 따라나설 수 있다. 그 아이는 아줌마가 건네는 따듯한 음료수를 마시고 스르르 잠이 들었다가 눈을 뜨면 차가운 철제 침대에 묶여있는 현실에 처할 것이다. 아이를 보호해주어야 할 어른들이 분주히 움직이며 그 아이의 눈과 장기를 적출하는 것이 이 세상이다. 그 아이가 “이 세상은 지옥이구나! 사람이 악마구나! 이딴 세상 멸망해 버려라!”라고 소리없이 절규하며 죽어간다고 그 아이에게 누가 “네가 뭔데 그런 판단을 해!”라고 감히 말할 수 있단 말인가! 그리고 그런 아이가 있는 세상을 멸망하는 게 낫다고 생각도 못 해야 한다는 것인가! 이 세상은 아무리 생각해도 멸망하는 것이 절대적으로 나은 세상이다.
본서는 앞서 말했지만 저자의 긍정적인 답이 와닿기보다는 생각해 볼 주제를 주었다는 자체로서 의의가 있는 책이다. 시대를 보고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류는 존속할 가치가 있다’라는 생각이 드는 사람들이 과연 있을지 모르지만 어쨌건 생각할 기회를 주는 자체로 의미가 큰 책이 아닌가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