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룻밤에 다 읽는 경제 에스프레소 금융 - 29가지 흥미로운 이야기로 풀어낸 돈의 역사
김종승 지음 / 한빛비즈 / 202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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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간 직후부터 관심을 가진 책인데 이제야 기회가 닿아 만나게 되었다. 역사와 금융이 만났다고 해서 깊은 관심을 가지게 되었는데, 기존의 역사 속 경제를 소개하는 책들과 다른 점이라면 경제 전반만이 아니라 제목대로 특히나 금융에 깊이 파고들어 풀어내고 있다는 것이다.

 

다른 역사 경제 대중서들이나 다큐멘터리 등에서 금세공업자들이 금융업의 효시라고 소개하고 있으며 그 이야기가 본서에도 등장은 하지만 본서의 저자분은 금융의 시작을 그리스 신전에서 찾고 있다. 파르테논 신전에서 유입되는 돈으로 대출을 해주고 이자를 받았던 것을 금융업의 첫 장면으로 그리고 있다. 유대인이 기독교인은 죄악시하는 금융업에 먼저 발을 들여놓게 된 것도 신명기 23장의 네 형제에게는 꾸어주고 이자를 받아서는 안 된다는 대목을 적용해 형제가 아닌 다른 민족에게는 대출하고 이자를 받아도 된다며 금융업에 뛰어든 것이라고 한다. 본서는 이후 종교개혁이 일며 금융업에 개신교 창시자이자 주도자인 인물들이 성경 해석에 관대해져서 금융업이 확산된 것으로 전하고 있다.

 

십자군 전쟁 이후 템플기사단이 뚜렷한 종교적 태도로 사회정의를 실현하며 활동하자 각지에서 후원금이 쏟아졌는데 막대한 자본이 쌓여 유럽 각지에 지사를 두고 금융업을 시작했다. 기독교 금융의 시작이라고 볼 수 있다고 한다. 그들이 사라진 이유는 전쟁 자금 등으로 유대 금융과 템플기사단 금융에 막대한 빚이 있던 프랑스 국왕 필리프 4세가 유대인에게 진 빚은 유대인 재산을 빼앗고 국외 추방하는 선에서 끝냈지만 독실한 기독교인들인 템플기사단을 처리할 방법이 없자 템플기사단을 이단이자 악마 숭배자로 몰아 전원 고문하고 죽여 없애는 선택을 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프랑스에서만 3000명의 템플기사단이 체포되었다고 한다. 부분지급준비금에 대한 설명에서는 금세공업자가 금융가로 변신한 예가 등장하고, 뱅크런에 대한 설명에서는 존 로와 프랑스 최초 국립은행 방크루아얄의 예가 등장한다.

 

이렇게 역사와 금융에 관한 내용만 있다면 다른 저작과의 차별성이 없었겠지만 이런 대목은 [1부 은행의 탄생]이란 장에 주로 있고 [2부 금융투자의 시대][3부 위험관리의 기술]에서부터는 이젠 일반상식이기도 한 전문 금융 개념들을 역사와 현재의 실례들을 들어 설명해 준다. 여기서 등장하는 과거와 근대와 현대의 실례들이 금융 개념을 설명하는 과정들이 너무도 자연스러워 저자가 금융법 전문 변호사이자 해당 분야 교육자가 아니라 소설가는 아닌가 의심이 들 정도이다. 스토리텔링이란 말이 자주 언급되던 시절이 있었는데 저자 같은 분들이 빛을 발하는 시대라 그런 말이 생겨난 건 아닐까 싶을 정도였다.

 

재밌고 지적 만족감도 들게 하는 반짝이는 책이 아닌가 싶다. 경제와 금융 책은 읽고 싶은데 손이 쉽게 가지 않는 분들이 들어서는 책으로 이만한 책은 다시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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혈통과 민족으로 보는 세계사 - 일본인은 조선인의 피를 얼마나 이어 받았는가
우야마 다쿠에이 지음, 전경아 옮김 / 센시오 / 201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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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의 흐름에서 민족 간의 내분과 전쟁과 참상이라는 갈등이 차지하는 영역은 심대하고 아직까지도 현재 진행형인 지역들도 다수이니 이런 시각과 관점으로 역사를 해석하는 저작도 접해 볼만하다고 본다. 한국사 부분이 미흡하다 보니 다른 국가 역사도 그렇지 않을까 싶긴 한데 나쁜 접근은 아닌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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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과 마음의 치유 - 니체, 심층심리학, 철학상담치료
김정현 지음 / 책세상 / 2013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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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대체 나 이전의 어떤 철학자가 심리학자였던가? 오히려 그들은 심리학자의 반대인 고등사기꾼’, ‘이상주의자이지 않았던가? 나 이전에는 심리학도 전혀 존재하지 않았었다. 이런 때에 최초의 심리학자라는 것은 하나의 저주일 수 있다.-

 

위에 문장은 니체의 자평으로 그는 스스로를 심리학자로 생각했으며 심리학이란 용어가 생긴 이래 최초의 심리학자는 그인 것도 분명하다고 한다. 프로이트와 동시대를 살았으며 프로이트보다 앞서 심리학적 관점과 체계로 자신의 철학을 세운 것이 니체였다고 한다.

 

그러나 심리학이나 심리치료로서 철학의 역할과 기능을 정의한 것은 생각보다 깊은 역사를 지니며 이어져 왔다. “피타고라스는 음악이 영혼에 미치는 영향을 논의했고, 플라톤은 신체와 영혼의 연관성 위에서 의학적 철학적 교육적 관계를 논의하며 철학자가 영혼의 의사가 되어야 한다고 말했다. 키케로는 영혼의 훈련혹은 영혼의 의학이 되어야 한다고 보았다. 아우구스티누스 역시 인간의 정서적 내면적 능력과 방법으로 하느님의 교육학 혹은 종교적 의학에 대해 논의했고, 아퀴나스 역시 의학이 신체의 치유와 관계하듯이 철학은 영혼의 치유와 관계해야 한다고 보았다고 한다.

 

본서는 이러한 철학의 심리학적 심리치료적 기능과 역할에 대해 알려주는 책으로 그 기능과 역할의 부분들을 배움으로써 얼마간 마음이 단단해지는 것 같은 영향을 주기도 한다고 감상을 갖게 되었다. 본서에서는 니체 철학을 근간으로 철학의 마음 치료의 기능을 돌아보고 있다.

 

니체는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에서 의식과 충동의 관계를 문제시 했으며, ‘의식이란 무의식적 세계에 대한 하나의 주석적 체계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철학적으로 분명히 제시했다고 저자는 말하고 있는데, 그리 보면 프로이트보다도 앞서서 무의식을 논한 최초의 심리학자였지 않은가 싶다.

 

이쯤에서 니체가 다른 심리학자들에게 미친 영향이나 다른 심리학자와의 차이점을 들어야 할 것 같은데 몇몇 심리학자와 연결지어 보자.

 

프로이트는 오이디푸스 콤플렉스 등의 개념을 들어 이를 질병을 설명하는 중심으로 가져갔으나 니체는 허무주의의 문제를 주된 관심사로 보았고, 프로이트는 인간의 심리적 발달 과정에서 과거(과거에 일어난 사건)나 오이디푸스 콤플렉스 혹은 트라우마를 중시했으나 니체는 현재의 삶이나 미래를 향한 의지, 삶의 의미의 발견을 중시했다고 한다.

 

칼 융은 니체의 열렬한 탐독자였고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를 통해 분석심리학 이론의 근간인 개성화, 자기화, 자기실현이라는 개념을 이끌어냈다고 한다. 니체의 상징주의적 예시들에서 융이 이끌어낸 개념들은 그 외에도 적지 않았다.

 

아들러는 니체의 극복인이라는 개념과는 달리 인간 행위의 동인을 열등감으로 보았으며, 니체가 개인 스스로의 완성을 중시한데 비해 아들러는 사회에 소속되는 것을 중시했다.

 

오토 랑크 또한 니체의 극복인을 통해 예술적 치료의 효과를 깨우쳤고, 니체의 힘에의 의지를 통해 의지 심리학과 의지 치료의 개념을 발전시켰다고 한다. 랑크의 심리학은 이후 로저스와 굿맨을 통해 인본주의 심리치료와 게슈탈트 치료로, 페촐트를 통해 게슈탈트 치료와 인본주의 통합치료로 발전해 갔다.

 

빅터 프랭클의 로고테라피 역시 니체의 의지와 극복인 그리고 내가 보기에는 아모르파티의 개념까지도 깃들어 있는 심리치료 체계로 생각된다.

   

니체 철학이 근간으로 소개되고 있지만 앞서 말했듯 철학을 치료의 여정으로 본 것은 고대 철학자들부터 이제까지 이어져 온 과정으로, 칸트 역시 철학은 (치료적으로) 치료제로 작용해야만 한다고 주장했다고 한다. 철학의 치유 효과를 직시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철학 치료의 최초의 실제 사례를 보면 분석심리학자인 칼 융이 자신의 내담자인 중년의 심각한 정신분열 여성 환자에게 쇼펜하우어의 [의지와 표상으로서의 세계]을 철저히 파고들라고 해서 그 여성이 그 처방을 따르자 거의 완치되었다는 실화가 있다. 이상심리의 치료 방식은 케이스 바이 케이스라 각자에 따른 처방이 다르겠지만 이 책은 나도 한 번 읽어봐야겠다는 생각이다. 쇼펜하우어의 철학은 니체의 사상에도 깊은 영향을 주었다고 한다. 니체에게 의식의 일깨움을 가져다주고 쇼펜하우어 사상에 대한 전환이 필요하다는 인식까지 일게 해 니체 철학이 성립되기 시작하는 효시로 작용했다고 한다.

   

나로서는 철학이 치료 효과를 갖는 이유는 심리학이든 철학이든 삶과 대상을 어떻게 수용하고 어떻게 이해하며 어떻게 살아가면서 반응할지를 깨우쳐주기 때문이라고 생각되었다. 감각하고 이해하고 반응하는 수용과 태도에 변화를 가져다 준다는 자체가 이미 치유를 불러오기 때문이 아닌가 하는 것이 나의 생각이다.

 

이 책을 읽으며 빅토르 위고의 웃는 남자에서 우르소스의 말이 떠올랐다. 다만 상처 입지 않는다는 것도 분명 나아가기에 가능할 일이니 말이다.

 

"철인이 되어라. 지혜롭다는 것은. 그 무엇으로부터도 상처를 입지 않는다는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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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흔에 읽는 니체 - 지금 이 순간을 살기 위한 철학 수업 마흔에 읽는 서양 고전
장재형 지음 / 유노북스 / 2022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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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만 읽고 니체 사상은 다소 유치하다고 생각했는데 다른 니체 철학과 심리치유를 함께 다룬 책을 읽으면서 니체의 철학이 심리학의 효시이며 인간 이해와 치유의 깊이가 남다른 철학이란 사실을 깨달아 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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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흔에 읽는 니체 - 지금 이 순간을 살기 위한 철학 수업 마흔에 읽는 서양 고전
장재형 지음 / 유노북스 / 2022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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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흔에 읽는 책이라지만 마흔인 사람이 읽기에는 상당히 유치한 철학이 니체의 철학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보기에는 제목이 [열여섯에 읽는 니체] 정도가 적합하지 않은가 싶었다.

 

이 책을 읽고 보니 니체는 근본적으로 서양 백인 문화에서는 뛰어난 인물일지 모르겠지만 고타마 싯다르타 붓다나 선불교 가르침 또 장자에 비해 상당히 유치한 사상을 가진 인물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는 서양 사상가답게 이분법적 사고를 골조로 자신의 사유를 이어갔으며 인간을 귀족적인 자와 천한 자로 양등분하듯 단정하기도 서슴치 않는 사람이었다. 물론 이 시대에는 그가 귀족적이라고 구분 지은 사유하고 성찰하며 혁신하려는 인물들이 많아진 세상이지만 이 시대의 사유하는 사람들이라면 니체와 같은 유치한 이분법은 우선 접어두지 않을까 싶었다.

 

니체 철학에서 비교적 긍정적으로 보인 면은 그가 신은 죽었다고 선언하며 신본주의적 자기 의지를 상실하고 맹목적인 추종과 자기 스스로를 죄인으로 격하하는 사고방식을 혁파한 데 있을 것이다. 신은 죽었다며 제시한 초인 사상과 인간 의식의 성장 과정을 낙타(자기의 짐을 거듭 지며 생에 순응하기만 하는 단계)와 사자(문제를 인식하고 문제 제기를 하며 사고의 전환을 이룬 단계), 아이(세상과 자신을 새로이 재정의하며 의미와 가치를 재정의하고 창조하는 단계)로 나눈 관점은 무언가 뚜렷이 보여주는 시각적 충격은 있을지언정 아이처럼 유치한 분류라고 생각되었다. 있는 그대로의 삶을 밀어내지 않고 받아들이면서도 이 순간순간의 마주침을 만끽하며 지금 이 순간을 사는 해탈자도 있을 수 있지 않은가? 문제를 인식하는 것도 문제 제기를 하고 새로운 기준과 가치를 재정의하는 것도 이상적일 수도 있겠지만 세상의 문제 그 자체를 통해 인간은 성장하고 성숙하며 문제를 해결하는 이들 속에서 새로운 의미가 창조되기도 하기에 있는 그대로가 진리라고 받아들이는 사람의 관점과 태도도 잘못되지 않았다고 생각된다.

 

니체는 귀족적이고 고상한 인간과 천박한 인간 말종으로 인간을 구분짓기도 하는데 깨달은 이와 중생을 구분짓는 속제의 단계에 의식의 수준이 멈춰있는 인물 같았다. 지금의 환경과 처지로 인해 의식의 단계가 한정적인 시각으로 세상과 자신의 한계를 긋는 인물도 결국에는 시절과 시절을 거쳐 보다 나은 관점을 무르익어가며 지니게 되는 것이 인생이다. 현생에서 그 한계에 갇혀 보내는 인물이 있다 해도 그건 시절 인연의 문제이지 천박하다거나 인간 말종으로 보아서는 안 되지 않는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같은 인물의 의식도 이타성을 지닐 때와 이기성에 매몰될 때가 있지 않은가?

 

그리고 이상적이던 인물도 자신에 대한 타인의 경배에 자존감이 과도해지고 자만에 빠져 그릇된 선택을 하게 되거나 사랑과 배려가 넘치던 인물이 한 대상에 대한 집착이 일면 가스라이팅이나 스토킹 등으로 이상적인 상태를 벗어나 범죄자로 전락하게 될 수도 있는 게 세상 이치다. 모든 게 시절 인연으로 일어나는 현상적 경계이지 니체처럼 단언하고 확정하고 선을 그어 버리는 것도 그가 말하는 이상적인 인간의 사유 방식은 아니리라고 본다. 아모르파티나 디오니소스적 긍정도 이상적이기는 한데 인간은 문제 속에서 성숙하며 문제를 양산하거나 문제를 해결하는 속에서도 길을 찾아가는 존재이다. 번뇌가 즉 보리이고 중생이 곧 부처인 까닭은 그래서일 것이다. 괴로움을 괴로움이라고 인식하며 벗어나려 발버둥치는 과정에서도 인간은 성숙한다는 말이다. 니체는 아마도 불교 공부가 필요한 인물이 아니었나 싶다. 내가 보기에 니체 철학은 초등학교와 중학교 정도에서 공부해도 충분한 사상이 아닌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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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크pek0501 2024-04-27 18: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마흔에 읽는~ 과 오십에 읽는 시리즈가 좋더라고요.

이하라 2024-04-27 19:11   좋아요 0 | URL
저는 마흔과 오십 시리즈 중에 읽어봤던 게 더 있었나 기억은 안나는 데 니체편은 대실망이었습니다. 다음 기회에 좋은 책과 만나 보고 싶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