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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브릴은 자청해서 IZ의 대원이 되었다. 그는 새로운 날을 가져다줄 떠오르는 태양이 IZ라고 확신했다. 자신과 함께 무자히드, 하룬, 딘, 라디 등 마을 청년들 거의 모두가 IZ대원으로 자원했다. 모두가 무슬림의 정신과 무슬림의 시대를 만들 거라는 IZ의 지도자 아부바르크의 연설에 감명을 받은 터였다. 이들은 이슬람의 시대정신을 드높일 기존의 대원들과 함께 군사훈련을 받고 규율을 배우며 내면으로부터 경험해 보지 못한 자긍심이 깨어나는 것만 같았다. 그들은 알라를 통해 거듭나고 있다고 그리 생각했다.
지브릴과 대원들이 언제나처럼 군사훈련을 하고 마을을 돌아보며 시민들을 통제하고 있을 때였다. 대원들은 남자들에게는 코란의 주요 구절을 외우는지 확인했으며 여성들에게는 일상복을 히잡만 쓰는 것이 아니라 얼굴만 내놓고 검은색 천으로 온몸을 감싼 차도르를 확실히 착용했는지 감시하는 역할을 하고 있었다.
“이보세요. 부인 아이에게 왜 히잡만 쓰고 돌아다니게 하는 겁니까?”
“여보게. 이 아이는 이제 그저 11살이야. 이 아이에게 맞는 차도르를 구하기도 힘들다네.”
“그걸 말이라고 합니까? 무함마드께서 아이샤와 결혼하셨을 때 아이샤는 6살이었습니다. 11살이면 이미 여자의 역할을 다하여야 할 나이가 아닌가요? 11살이 어리다고 지금 말씀하시는 겁니까?”
압둘라 씨의 부인 로와다 씨가 그녀의 막내딸 히얌의 손을 잡고 집을 나선지 얼마지않아 이 부대의 장교급이라고 할 수 있는 연륜 있는 대원 나씨르와 실랑이를 하고 있었다.
소총을 들고 있기는 했지만 나씨르는 비교적 온화한 성품의 사람이라 지브릴은 별걱정 없이 듣고 있었다. 하지만 실랑이가 길어지면 좋을 것이 없기에 이내 중재하러 나섰다.
“나씨르, 그만 집으로 가서 차도르로 갈아입으라고 제가 따끔히 말하겠습니다.”
“아니 무슨 말을 더 들어 아이들에게까지 차도르를 강제하는 건 지나친 거 아니야!”
'팍'
갑자기 허공을 가르는 소리와 함께 둔탁한 마찰음이 들렸다. 그들의 실랑이를 듣고 있던 다른 대원 우마르가 로와다 부인의 뺨을 갈기는 소리였다. 그리고는 소총을 그녀를 향해 겨눴다.
“부인! 율법을 지키지 않는다면 배도자일뿐이고 배도자를 위한 건 죽음뿐입니다, 아시겠습니까? 부인은 지금 배도자가 되시겠습니까? 율법을 수호하시겠습니까?”
로와다 부인은 당황했다. 그리고 모멸감을 느낄 새도 없이 두려움이 밀려왔다.
지브릴은 갑자기 상황이 긴박하게 되자 다급하게 외쳤다.
“로와다 부인, 당장 집으로 돌아가 히얌에게 차도르를 입히세요. 알겠습니까?”
놀란 눈으로 그들을 번갈아 쳐다보던 로와다 부인이 겁에 질린 듯 눈을 내리깔고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대답했다.
“네. 네. 암요. 그러고 말고요.”
저녁 기도를 마치고 대원들이 모두 숙소로 돌아가려 할 때 먼발치에서 차도르를 걸친 여인 한 명이 서성이는 것이 보였다. 지브릴은 한눈에 그녀가 자밀라라는 걸 알아챘다.
“나 잠시 일이 있어서 갔다 올게. 금방 돌아올 거야. 먼저들 가.”
그리 말하고 지브릴은 그들 몰래 자밀라를 향해 다가갔다. 자밀라는 몹시 불만 가득하고 내적 혼란을 억지로 내리누르고 있는 듯한 모습이었다.
“지브릴! 너, 나와 사우디로 가기로 한 건 잊은 거야?”
“아니, 그렇지만 네가 말한 새로운 날이 꼭 사우디에만 있으리란 생각이 들지 않아. 여기서도 새로운 날이 시작될 수 있지 않을까?”
“지금 이게 새로운 날의 시작이라고? 너 그걸 말이라고 하고 있니? 이들은 옛 규율들을 되살려 우리를 옥죄고 있어. 네 눈엔 보이지도 않니? 억눌리고 있는 사람들의 한숨과 비명이?”
“억누르지 않아, 자밀라. 이슬람의 시대정신을 직시하게 하고 있는 거라고. 이들은 우리를 무슬림의 원칙 아래서 부활시키고자 하는 거야.”
“넌 마치 네가 죽어있는데 이들이 너를 되살리고 있는 것처럼 말한다.”
“그래? 그런지도 몰라. 나는 다시 살아나고 있어!”
“아니, 지브릴. 넌 한 번도 죽은 적이 없어. 널 죽이고 있는 건 그들이 말하는 원칙이야. 이슬람의 시대정신이 널 죽이고 있는 거라고.”
‘후우!’
지브릴은 자밀라의 말에 한숨을 쉬고는 답변을 이어갔다.
“아니야, 자밀라. 넌 모르고 있어. 난 언제 어떻게 죽었는지 모르게 죽어있었어. 이 시대가 이 마을이 그 관념들이 날 죽이고 있었던 건지도 몰라. 하지만 새로운 희망을 품게 됐어. 난 그 희망을 통해 되살아날 거야.”
“그럼 우리의 희망은 뭔데? 사우디에서 새로이 시작하자던 그 약속은 뭐냐구?”
“우리 조금만 더 기다리자. 조금만 시간이 주어지면 난 이슬람의 시대정신을 통해 새로운 인물로 거듭날 거야. 그럼 아브라힘 어르신도 날 사위로 마다하지 않으실 거야. 자밀라 조금만 더 기다려 주면 안 되겠니?”
“지브릴, 난 16살이야. 이미 혼기가 꽉 찼다구. 네가 아니더라도 아버지는 날 다른 사람이랑 결혼시키실 거야. 이젠 아버지가 원하시는 지참금에 많이 부족하더라도 난 결혼해야 할 상황이야. 넌 변했어! 지브릴. 이젠 내가 어찌 되든 관심도 없는 사람 같아.”
“그렇지 않아. 난 변하지 않아. 널 두고 내가 어떻게 변할 수 있겠니?”
“이미 네 마음은 내게서 떠난 거야. 이슬람의 시대정신! 그게 널 변하게 했어. 넌 다시 예전으로 돌아가지 않을 사람 같아.”
지브릴은 이 긍정적인 변화에 거부감을 갖는 자밀라를 이해할 수 없었다. 그리고 그녀를 향한 자신의 마음이 변했다고 믿는 그녀에게 어떻게 자신의 사랑을 확인시켜줄 수 있을지 미쳐 알 수 없었다.
“안녕! 지브릴.”
자밀라는 마치 마지막 인사처럼 저녁 인사를 남기고 돌아갔다. 왠지 모를 불안감과 알 수 없는 안타까움이 지브릴의 안에서 소용돌이쳤다. 하지만 지브릴은 그 모두를 그저 스쳐 지나가는 짧은 불안일 뿐이라 일축하고 싶었다.
“그래, 내일이면 다를 거야!”
<다음 편에서 이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