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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독을 파는 의사들 - 의료시스템은 어떻게 우리를 약물 의존으로 내모는가
애나 렘키 지음, 중독성 처방약물에 신중을 촉구하는 의사들 옮김 / 오월의봄 / 2025년 11월
평점 :
#중독을파는의사들 #애나렘키 #오월의봄 @maybooks_05
출판사로부터 #도서협찬 을 받아 자유롭게 작성한 리뷰입니다
본서의 원문 제목은 [Drug Dealer, MD]라고 한다. 직역하면 “마약상 의사”라는 뜻이다. ‘추천의 글’에서 미국의 중독 정신과 전문의이자 예일대학교 의과대학 정신의학과 나종호 교수는 이 책에 대해 이렇게 평한다.
“부패한 시스템 속에서, 환자의 통증을 덜어주려는 의사들의 마음과 중독에 대한 무지가 결합할 때, 얼마나 파괴적인 결과가 나타나는지를 의사들은 이 책을 통해 뼈저리게 배웠다.”
이 책은 영어와 한글 제목 모두에서 ‘의사가 중독을 판다’고 말하고 있다. 그렇다면 이 책이 말하고자 하는 건 모든 중독의 원인이 의사의 잘못된 처방이라는 말일까? 그렇다기보다는 나종호 교수의 [추천의 글]에서 보이듯 현재 대부분의 중독 사례는 시스템적인 문제로 야기된다는 것이 본서 저자의 설명이다.
본서를 읽으며 저자의 서술을 따라가다 보면 이건 중독된 환자가 이 책에서는 ‘물질사용장애’라고 번역된 마약성 약물에 중독되기를 추구했기 때문만도 아니고, 의사의 부주의한 처방 때문만도 아니라고 생각되었다. 정책적인 문제가 더 깊어 보였다.
의사의 처방이 부주의한 이유나 환자가 쉽게 중독에 빠지는 이유를 저자는 이 시대의 통증에 대한 정의와 관련지었다. 과거에는 ‘통증이 말해주는 질병에 대한 경고’를 중시하거나 ‘통증으로 정신적 성장을 한다’는 서사를 중시한다거나 하며 “통증을 두려워하지 않았다”고 한다. 하지만 이 시대에는 “통증이 영구적인 손상을 일으키고 이후 또 다른 통증을 유발하는 원인이 된다”고 믿는다고 한다. 이러한 통증에 대한 믿음이 “중독성 처방약물의 대유행을 초래한 한 가지 주요한 원인이 되었다”는 것이다.
“심리적 트라우마도 정신적 상처를 남기고 결국 미래의 고통을 초래한다”는 정의 역시 정신과 약물의 중독을 불러오는 원인이 되었다.
의사도 이렇게 배우고 환자에게 역시 이러한 관점은 상식이 되었기에 서로가 서로에게 중독성 약물을 처방하고 처방받는 것이 당연한 일상이 된 것이다. 하지만 이 관계에서 의사의 좋은 의사이고자 하는 마음이 중독성 약물 처방을 남용하는 원인이 되고 이렇게 처방받은 약물에 중독된 환자의 약물의존성이 약물 처방을 유도하는 계기가 되어 악순환이 이어지게 되는 것이다.
본서에서는 현재 중독이 대부분에 경우 의사의 처방으로 인한 것이라고 말한다. 의사가 좋은 의사이고자 하는 경우 외에, 환자가 중독성 약물을 처방받으려 다채로운 수단을 이용하는 경우를 13가지 유형으로 유형화해 제시하고 있기도 하다. 게다가 책의 후반부 즈음에서는 저자가 처방을 단호히 거절하자 병원과 의사 평점에 별점 테러를 가한 환자 사례를 서술하기도 했다.
하지만 무엇보다 이 책의 백미는 의사와 환자 사이에서의 “처방” 문제만이 아니라 정부의 “정책”과 “의료 산업의 부조리” 등 “시스템에 관한 문제 제기”이다. 정부의 정책으로는 군대에서 병사들의 성취도를 높이기 위해 중독성 약물을 사용하거나 참전용사들을 위한 치료에 너무도 쉽게 약물을 처방하도록 한 문제를 들고 있기도 하다. 그리고 우리나라 표현으로는 ‘의료수급자’나 미국에서도 ‘장애’급여를 받는 환자들에게는 ‘중독성 약물이 더 쉽게 처방’하는 경향이 있다고 한다. 본서를 한국어로 번역한 분들도 [중독성 처방약물에 신중을 촉구하는 의사들]이니 비단 이런 정책적인 처방 남용이 미국만의 문제가 아니기 때문일 것이다.
본서는 “정책과 의료 산업의 문제점이 중독을 양산하고 있다”는 걸 지적하여 대중이 이 사안에 대한 “경각심과 관심을 가지고 더 나은 대안을 찾아가길” 기대하고 집필한 저작이 아닌가 싶다.
과거 세계대전 시기부터 국가와 기관이 병사와 민간에게 중독성 약물을 처방하고 상용하게 하던 악습이 아직까지 이어지는 것 같기도 했다. 또 이제는 인식이 달라졌다고는 하지만 자아 초월심리학과 같은 학문 분야에서 아직도 비일상적 경험을 위해 향정신성 약물을 사용하고 있기도 하다.
어느 경우나 문제는 검토와 제재보다는 정부의 허용과 권유가 앞섰기 때문이 아닌가 싶다. 확실한 검토와 검증이 뒷받침된 적절한 제재와 처방이 동반되지 않는다면 이런 문제는 앞으로도 양산될 것이다.
국가가 안정된 상황에서는 정부를 움직이는 것은 국민의 의식이다. 우리가 의식을 제대로 가지려면 사회적 사안들에 관심을 갖기 시작해야 할 것이다. 작은 관심이 보다 깊이 주목하게 하고 그런 관심과 주목이 행동으로 이어지면 사회는 결국 바뀔 것이다. 그런 까닭에 저자가 펜을 든 것이 아닌가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