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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기능 우울증 - 겉은 멀쩡하지만 속은 고장 나 버린 사람들
주디스 조셉 지음, 문선진 옮김 / 포레스트북스 / 2025년 11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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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부터 트라우마에 관한 책들을 주목하여 읽어왔다. 그러다가 에디스 시로의 [트라우마, 극복의 심리학]을 통해 ‘외상 후 성장’의 진정한 가치에 눈 뜨게 되었고 알리아 보질로바의 [탄성 인간]을 통해 ‘회복탄력성’에 대해 거듭 생각하게 되었다. 알리아 보질로바의 [탄성 인간]에서 말하는 회복탄력성이란 트라우마 상황에서 빠르게 회복하고 일상과 업무에 복귀하는 수준의 초인간적인 정도의 심리적 회복능력을 말하고 있었다. [탄성 인간]에서 말하는 회복탄력성의 수준은 혼자 집에서 잠을 청하던 여성이 떼강도들의 침입에 윤간을 당하고도 출근 시간이 가까워오면 샤워를 마치고 출근하여 아무일 없었다는 듯 업무를 하는 수준의 회복력을 이른다. 자신의 자녀가 사고로 죽고 장례를 치른 다음 날에도 바로 업무와 일상에 아무런 지장을 받지 않는 수준의 회복력을 말하기도 하고 말이다. 이런 수준의 일상과 업무 복귀가 과연 회복이 되어 가능한 것일까? 당시 나로서는 알리아 보질로바가 말하는 그런 수준의 초인적 회복력은 인간에게 없다는 생각도 들었다. 그런 수준의 인간이라면 사이코패스 외에는 없을 거라고 말이다. 대부분에 경우 빠르게 일상으로 복귀하여 아무런 내색을 하지 않는다고 해도 그들 내면에는 상처가 자라고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본서 [고기능 우울증]은 위에서 든 예와 같이 아무렇지 않게 일상과 업무를 지속하고 그 속에서 열띤 몰입으로 성취를 이루는 사람들에게 나타나는 보이지 않는 상처에 관한 연구를 저술한 책이다.
저자는 트라우마에도 불구하고 일상과 업무에 지장을 받기보다 더 깊이 몰두하는 사람들의 심리를 임상 및 연구적으로 조명해 최초로 ‘고기능 우울증(High-Functioning Depression)’이라 명명한 정신과 의사다.
저자의 연구로는 트라우마가 드러나는 사람도 있지만 ‘트라우마를 숨기는 사람들’도 있다고 한다. 이들은 트라우마 상태인데도 남들이 보기에는 ‘아무렇지 않게 일상과 업무에 몰두하며 성과와 성취 또한 적지 않은 사람들’이다. 이들의 대표적인 특징을 저자는 ‘무쾌감증’과 ‘마조히즘’으로 보고 있다. ‘자신을 돌보지 않고’ ‘인정받지 못하며’ ‘외로운 가운데 미디어에 몰두하여’ ‘뇌와 정신건강의 악순환이 반복되는 상태’에 놓여 있는 게 이들의 ‘무쾌감증’이 보이는 특징이라고 한다. 마조히즘은 전통, 종교, 국적, 가족의 가치관에 따라 보이는 ‘문화적 마조히즘’과 타인을 기쁘게 하려는 데서 비롯된 자기희생적 행동을 이르는 ‘관계적 마조히즘’ 그리고 학업이나 직업 등 경력상의 성취를 위해 자기 자신을 희생하는 ‘커리어 마조히즘’이 있다.
저자의 이런 정의들은 아무 감각 없이, 희생이라는 자각도 없이, 자기 소모를 하고 있는 상태를 설명하기 위한 정의들이 아닌가 싶다. 저자는 이에 대한 각각의 처방들을 내리기도 한다. [삶의 기쁨을 되찾는 5V 원칙]이라는 제목의 2부에서 그를 자세히 논한다. ‘인정, 환기, 가치, 활력, 비전’으로 나누어 제안하는데 비단 상식적이면서도 자존감을 회복하게 하고 자기 긍정에 이르게 하는 심리적 육체적 대응들이 아닌가 싶다. 자신을 존중하는 세 가지 인정, 자신을 되찾게 하는 정서적 환기, 삶에서 부정적 가치와 긍정적 가치의 재정립, 정신적 안정을 위한 육체적 건강을 회복하는 루틴, 그리고 더 안정적이고 건강하게 사는 길을 저자는 대중적인 시선에서 전하고 있다.
저자가 말하는 방법들도 방법들이지만 이렇게 ‘고기능 우울증’이라는 상태에 자신이 놓여 있다는 것을 막연히 느끼다가 본서와 같은 매체로 마주하게 되는 자체가 더 나아지기 위한 인연이자 선택이 아닌가 싶다. 자아초월(초개아) 심리학자인 스타니슬라프 그로프 씨는 때로는 미치는 것도 더 큰 자기를 찾아가는 여정이고 깨달음에 이르는 길일 수 있다는 말씀을 한 적이 있다. ‘외상 후 성장’에 이르는 길 역시 미칠 만큼 깨지는 과정을 거쳐서야 이르는 것이다. 하지만 미치지도 깨지지도 않으려는 사람들이 있다. 그런 사람들은 ‘외상 후 성장’이 영향을 미칠 길이 없다. 오히려 미치고 깨지는 사람들보다 더 오래오래 뭉근한 괴로움이 지속되는 이들에게 저자의 연구와 본서는 자그마한 치료제가 되어 줄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치료를 기대하지 않는다 해도 본서는 자기의 현재를 받아들이고 또 다른 노선의 삶을 살아가야 한다는 일깨움으로 데려다줄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