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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관에 간 심리학 - 미술관에서 찾은 심리학의 색다른 발견
문주 지음 / 믹스커피 / 2025년 9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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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앤원북스로부터 #도서협찬 을 받아 자유롭게 작성한 리뷰입니다
저자는 알타미라 동굴 벽화를 미술을 전공하지 않은 사람이 보면 잘 그렸다고 말할 거라고 했다. 하지만 내가 알기로는 피카소 마저 "알타미라 이후의 미술은 이제까지 퇴보해왔다"고 말했다고 한다. 아마 알타미라 동굴 벽화에 그려진 들소가 피카소 자신에게 준 충격을 과장하고 미술은 역사 저너머에서도 인간의 창조성을 증거하고 있다는 것을 강조하고 싶었던 게 아닌가 싶다.
알타미라 동굴 벽화에서도 사냥 대상에게 가졌던 인상, 경이와 두려움 그리고 바람을 모두 엿볼 수 있다. 선사시대의 인류와 현대인 사이의 교감이 이어질 수 있는 것이다. 미술은 한 개인의 창조에서 시작되지만 그것은 그 인간 안의 무엇과 집단 안의 무엇 그러니까 인류 전체의 무의식과 창작자의 압도된 감정과 생각을 통해 예술가와 감상가를 아우르며 하나의 우주 속에서 교감하게 한다.
그렇기에 우리는 성찰과 통찰 그리고 경이를 동시에 미술 작품을 통해 느낀다. 그렇다면 우리가 미술 작품을 보며 선과 도형, 초점과 거리, 비율, 색깔과 명암 등을 통해 보는 '기술적 그림 읽기'나 은유된 것이 무엇인지 해석해내는 '상징적 그림 읽기' 그리고 창작자 개인의 서사를 통해 감상하려는 '화가 개인 서사적 그림 읽기' 또 미술사에서의 기법과 분류를 통해 보는 '미술사적 그림 읽기'만으로 만족해서는 안되는 것이 아닐까? 이쯤에서 '심리학적 그림 읽기'가 감상의 중요한 요소로 다가오는 것도 같다. (여기서의 분류는 리뷰어 개인의 정의이고 표현이다.)
본서는 예술과 광기를 동시에 품은 화가들이 적지 않았음을 주지시키며 시작되는 데 예술의 장르와 국가에 구분없이 이중섭, 천상병, 헤밍웨이, 피츠제럴드, 버지니아 울프가 정신과적 이상을 보였으며 또 학문의 영역에서도 니체와 같은 심각한 광기나 쇼펜하우어 같은 준광기를 보이는 광기의 학자들이 있어왔음을 알기에 충분히 수용이 되는 접근이었다. 본서에서 화가들의 자화상들을 통해 그들의 내적 자기 정의와 내적 두려움과 불안을 파헤치기도 하는 데 이건 비단 그림 감상만을 위해서가 아니라 화가의 내면을 그려보는 방식을 자신에게 적용하며 자기를 좀 더 풍부히 이해하는 방향에서 적용될 수도 있다고 생각되었다. 이후 화가들의 내면을 엿보게 해주는 아니마와 아니무스의 장 역시 그랬고 색채를 통해 화가의 내면을 해석해 보는 장과 그들의 자아가 표현된 상징들을 해체해 보는 장도 그랬다.
미술 전공자인 저자가 경력 단절을 겪었다가 미술로 다시 회귀하는 과정에서 미술치료를 공부하게 되었다고 한다. 그 미술치료 상담사로 활동하며 만난 내담자들의 그림을 긴 설명없이, 화가들의 그림들을 소개 하는 마지막 마다 드물게 소개하고 있다. 이러한 시도 자체가 이 책을 통해 화가의 내면을 이해하여 그림에 표현된 그들의 의식과 무의식을 이해함으로써 좀 더 풍부한 감상을 하는 데만 이 책의 집필의도가 있는 게 아니라는 짐작을 하게 했다. 자기를 표현하는 양식들을 이해하고 독자들도 자기를 표현해낼 기회를 가져보며 좀 더 자기 이해와 자기 수용으로 나아가길 바라는 마음이 담겨있는 책이 아닌가 싶다는 감상이 들기도 했다.
창조적 활동은 결국에는 자기 이해이자 자기 수용이며 자기 해석이라고 생각된다. 그리고 이러한 과정을 이해하고 감상함으로써 감상자가 가질 수 있는 카타르시스가 있다고 생각한다. [트라우마, 극복의 심리학]에서 에디스 시로는 타인의 트라우마를 목격하는 것만으로 심리적인 영향을 받을 수 있으며, 그에 더해 타인이 그가 처한 트라우마를 극복해 나가는 과정을 목격함으로 인해서도, 목격자 역시 정신적 성장을 이룬다는 심리학 연구 결과에 대한 언급을 한 바있다. 미술이라는 것이 집단 무의식만이 아니라 개인의 심리가 반영된 것이거나 개인의 정신 그 자체라고 한다면, 화가가 놓인 문제를 이해하고 화가가 자신의 작품을 통해 어떻게 그를 표현하고 그 과정에서 자신의 상처와 아픔, 괴로움을 승화하고 있는지를 목격하는 감상자 누구나도 정신적 성장을 이루는 것이 당연하지 않은가 생각하게 되었다. 물론 저자가 자신의 내담자들의 그림을 보여준 의도처럼 우리가 우리 스스로의 창작 활동을 통해 치유로 다가선다면 그 역시 더없이 좋을 것이다. 물론 창작이란 미술에 한정되지 않는 것이기도 하고 말이다. 본서에서도 정신과에 입원한 상태로 그림과 저술을 함께한 예술가들이 등장하고 있다. 더 나은 감상만이 아니라 더 나은 자신을 위해 살아갈 일이 아닌가? 그런 각도에서 참 유익함을 주는 책이 본서가 아닌가 싶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