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명인간 원전으로 읽는 움라우트 세계문학
허버트 조지 웰스 지음, 이정서 옮김 / 새움 / 202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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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누군가가 [즐거운 크리켓터스]에서 시트 하나를 가져와서 그를 덮었고, 사람들은 가게 안으로 그를 옮겼다. 그리고 거기엔 모든 인간 중 처음으로 자신을 눈에 보이지 않게 만들었던 그리핀이, 불도 켜지 않은 침실의 지저분하고 허름한 침대 위에, 무지하고 흥분한 사람들 무리에 둘러싸여, 깨어지고 상처 입고, 배신당하고 동정받지 못한 채로 놓여 있었다. 세상에 둘도 없는 가장 재능 있는 물리학자 그리핀은 자신의 이상하고 가공할 생애를 끝없는 참사로 끝마쳤던 것이다. :

 

후기를 제외하고 그리핀의 잔혹사가 끝나는 대미는 위와 같다. 기존의 [투명인간]에 대한 번역서들은 원작인 영국판을 번역한 것이 아니라 미국판을 번역한 것으로 이 대목의 대미가 이정서 번역가님의 번역과는 다르다. 본서의 말미에 짧게 대조해 보여주는데 H.G. 웰스 작가가 주인공 그리핀의 생애에 대해 안타까움을 표하는 것과는 다르게 미국판은 삭막하게 마무리하고 있다. 하지만 원작의 대미가 이런데도 불구하고 그리핀의 정서와 행동에는 공감이나 안타까움이 일지 않기도 한다.

 

본서의 줄거리를 모르는 분들을 위해 간략히 후반부를 제외하고 스포일러 하자면,

 

: 한 방문객이 아이핑이라는 영국의 시골 마을에 방문하며 이야기가 시작된다. 그는 숙박업체 주인에게 자신을 실험 연구자라고 하기는 했지만 이름조차 밝히지 않았다. 그의 뒤늦게 도착하는 화물들은 실험관들로 사람들은 아마도 그는 진짜 실험 연구가일 거라고 판단하지만 두문불출하는 그의 신상에 대한 억측들이 쏟아진다. 그러다가 마치 보이지 않는 도둑이 든 것 같은 기이한 도둑질을 당하는 목사 부부의 일을 시작으로 그를 추적하며 방문객이 투명인간인 것이 드러난다. 투명인간은 [역마차]라는 숙박업체에 연구일지를 두고 나왔기에 그걸 회수하고 생존경비를 마련하기 위해 부랑자를 협박해 부하처럼 쓰려고 한다. 하지만 연구일지는 부랑자의 손으로 들어가고 투명인간은 우연히 과거 인연이 있던 과학자 캠프를 만나게 되어 그에게 투명인간이 되고 아이핑으로 오기까지의 과정과 그 이후의 사건과 앞으로의 계획에 대해 털어놓는다. :

 

여기까지도 주인공 그리핀의 폭주가 시작되었지만 이 이후부터 그리핀은 저지할 수 없을 지경으로 폭주한다. 그는 자신이 공포 정치’(라고 역자는 번역하였지만 공포의 통치라고 해도 될 것 같다)를 하겠다고 공표하였다지만 나로서는 그의 폭주가 뜬끔없이 느껴지기에 과거를 발언할 때 그의 아버지의 죽음과 그리핀 자신이 관계는 없는 건지 의혹을 갖고 읽기도 했다. 하지만 그렇다라고 확언할 수는 없을 것 같다. 그리핀은 원래부터 난폭하고 잔인한 자였을까 아니면 투명인간이 되는 과정에서 심리적 격변을 겪게 된 것일까? 그런 의문이 들기도 했다. 원래 대중에게는 자신의 과오에는 이유와 원인을 찾지만 타인의 과오는 당사자의 내재적 문제에 기인했을 거라고 보는 편향이 있다고 한다. 그런 까닭에 더욱 그런 편향적인 판단을 하지 않기 위해 그리핀의 내면에 주의하며 읽게 되었다. 하지만 그리핀이 원래부터 백색증을 앓고 있는 사람으로 묘사된 것으로 보아도 작가는 자신의 피조물에 내재적 문제를 안겨줄 마음이 있었지 않나 짐작된다.

 

: “나는 실수를 했소, 캠프, 정말이지 큰 실수, 이 일을 혼자 해내려는. 나는 힘과 시간, 기회를 낭비한 거요. 혼자... 한 사람이 혼자 할 수 있는게 얼마나 하찮은가 알면 놀랄 정도요! 조금 훔치고 조금 상처 입히고, 그게 다였소. ... ...” :

 

사실 한 사람의 마음에서 시작된다고 해도 세상을 바꾸는 규모의 일은 결코 한 사람만으로 이루어지지 않는다. 예수에게는 사도들이 있었기에 기독교가 성립할 수 있었고 히틀러에게는 지지기반과 추종자들과 침묵하는 이들이 함께였기에 대살육이 있을 수 있었다. 그리핀에게도 그런 무리가 있었다면 이 이야기는 보다 방대한 규모의 서사를 갖게 되었을 것이다. 공포 정치의 확장은 아마도 더 기괴하고 훨씬 끔찍했을 것이다. 하지만 그는 말 그대로 혼자였고 그래서 작가가 그려낸 대미가 있었던 것 같다.

 

본서는 사실 다소 따분하고 서사도 그리 규모 있거나 다채로운 흥미꺼리가 등장하는 이야기가 아니라 나로서는 큰 즐거움을 느낀 독서는 아니었다. 작가가 그리는 그리핀의 말로에 문장에는 공감할 구석이 있었지만 그리핀의 생애까지 보면 공감이 되지 않았다. 동명의 서양 영화들에서 큰 흥미를 못 느꼈기에 본서가 그만 못하다고 할 수는 없겠지만 주인공이나 주변 인물들의 심리 묘사에 치밀했거나 규모가 더 확장되었거나 다채로운 역동에 힘을 주었거나 했다면 더 재밌는 이야기였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았다. 하지만 중학시절 읽었던 [타임머신] 이후로 오랜만에 즐기는 웰스님의 작품이라 그 자체로 의의가 있지 않을까 싶다.

 

조지 오웰은 웰스가 존재하지 않았다면 우리의 세계와 사상은 달라졌을 것이다라고 말했다고 한다. 과연 그의 작품에 어떤 면이 있기에 이런 말이 있는 건지 그리고 그 웰스의 영향은 과연 인류에게 긍정적이라고 할 수 있는 건지 생각하며 웰스의 작품들에 들어서거나 다시 보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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